| <colbgcolor=#000> 아냐냐 Anyanya | |||
| | | ||
| 엠블럼 | 깃발 | ||
| <colcolor=#fff> 활동 기간 | 1963년 6월 19일 ~ 1972년[1] | ||
| 이념 | 남수단 독립 | ||
| 본부 | 중부주 캄팔라 | ||
| 병력 | 5,000 ~ 10,000명 추정 | ||
1. 개요
아냐냐는 남수단 독립을 목표로 활동했던 수단 공화국의 반군이다.북수단 아랍 정권이 이슬람 국가들과 연합해 제국주의적 태도로 남수단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동시에 정부의 요직이란 요직은 전부 수단 아랍인들이 차지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분노한 남수단의 흑인들이 아랍인들에 맞서 무장 봉기를 일으키며 조직되었다.
1972년,수단 아랍인들이 아디스아바바 협정을 체결하며 남수단의 자치권을 보장할 것이라 주장하자 아냐냐는 해산되었다.그러나 수단 공화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샤리아를 남수단에 강요하자 아냐냐 II가 새로 조직되어 제2차 수단 내전에서 활동했다.
남수단 역사상 가장 중요한 단체라고 볼 수 있다.
2. 역사
2.1. 활동
아냐냐는 1963년에 창설되었다. 이는 남수단의 포줄루, 모르, 누에르, 로투코, 마디, 바리, 아촐리, 잔데, 딩카 등 여러 부족이 수단 공화국 정부의 아랍인들에 맞서 전쟁을 벌이면서 형성된 무장 조직이었다. 창설은 8월 19일 Kampala에서 남부 정치인들과 군 인사들이 Joseph Oduho의 자택에서 회의를 가진 뒤 이루어졌다. 이 회의에는 Joseph Lagu, George Akumbek, Julius Moroga, Severino Fuli 등이 참석했다.아냐냐는 1963년 9월 19일 에콰토리아 동부에서 수단군을 상대로 첫 공세를 감행했다.
아냐냐 운동은 남수단 독립군들 중 강력한 세력이었지만, 해방 운동 지도부 정치인들 사이의 내부 권력 다툼으로 약화되었다. 1969년 아그레이 제이든은 운동 내부의 결속 부족과 끊임없는 갈등에 대한 불만으로 아냐냐를 떠났다.
이후 고든 무오르타트 마옌이 남수단 운동의 새 대통령으로 만장일치로 선출되었고, 기존 SSPG는 나일 임시정부로 개명되었다. 무오르타트의 지도 아래 운동은 북부와의 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참모총장 조제프 라구는 자신의 전속부관 올리버 바탈리 알비노를 통해 이스라엘과 협상하여, 운동에 제공되던 무기를 대통령 고든 무오르타트 마옌이 아니라 자신에게 전달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라구는 공개적으로 무오르타트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냐냐의 각 대대에게 무기를 받으려면 무오르타트가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이 쿠데타는 결국 군대를 라구의 지휘 아래 통합하는 데 성공했고, 권력 이양도 비교적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라구는 정치적·군사적 지도자가 되었으며 북부와의 전쟁을 계속했다. 이때 조직의 이름은 남수단 해방운동[2]으로 변경되었다.
1972년 조제프 라구는 수단 공화국과 아디스아바바 협정을 체결하여 17년간 이어진 내전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에마누엘 아부와 존 가랑 등 일부 군 지도자들은 이 협정을 처음에는 거부했다.[3] 평화 협정에 반대하는 반란 계획을 담은 편지가 모든 아냐냐 부대에 배포되었으나, 이 문서는 가로채졌다.
유산
내전이 공식적으로 끝나기 전부터 많은 아냐냐 병사들은 우간다로 넘어갔다. 그곳에서는 동맹 관계였던 이디 아민이 군을 장악하고 있었다. 우간다 대통령 밀턴 오보테[4]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민은 이 전투원들을 우간다군에 편입시켰다.
1971년 아민이 오보테를 축출하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더 많은 전 아냐냐 전투원들을 우간다군에 모집했는데, 그는 이들이 자신의 정권에 충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수단 출신 전 반군은 사실상 용병으로 활동했다.
알리 토웨리와 고드윈 술은 우간다 군대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전 아냐냐 인물이었다. 아민의 인기가 없는 정권과 연관되면서, 우간다에서는 결국 아냐냐라는 말이 경멸적 표현이 되었고 북부 우간다 사람들뿐 아니라 외국인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일반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1975년 수단에 남아 있던 많은 불만 세력의 전 아냐냐 병사들이 동부 상나일과 에콰토리아 지역에서 다시 무기를 들었고, 이들은 아냐냐 II[5]라고 불렸다.
1983년 아디스아바바 협정이 붕괴되면서 제2차 수단 내전이 시작되었고, 이때 수단 인민해방운동/군대[6]가 창설되었다.
아냐냐 II와 SPLM/A 사이의 경쟁은 결국 아냐냐 II의 패배로 이어졌다. 일부 구성원들은 SPLM/A에 편입되었고, 다른 일부는 수단 정부가 지원하는 민병대인 남수단 방위군으로 재편되었다.
[1] 아디스아바바 협정으로 수단 공화국이 남수단의 자치권을 보장하기로 한 조건으로 해산했다.[2] South Sudan Liberation Movement[3] 나일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고든 무오르타트 마옌 역시 협정에 반대했다.[4] 훗날 아민의 쿠데타로 쫓겨나 탄자니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탄자니아군의 어민에 대한 반격 작전 이후 다시 우간다로 돌아온다.다만 우간다인들에게는 오보테 역시 아민만큼이나 악랄한 자라는 평가도 받는다고 한다.[5] Anyanya II[6] Sudan People's Liberation Movement/Army,약칭 SP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