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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894년 5월 18일 |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 (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 | |
| 사망 | 1957년 4월 5일 (향년 62세) |
| 사망지 미상 | |
| 이명 | 심우제(沈宇濟), 청송춘복(靑松春福) |
| 묘소 | 산골 |
| 상훈 | 대통령표창 (2024년 추서)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2. 생애
1894년 5월 18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에서 태어났다.1919년 3.1 운동 당시 예산 지역에서는 3월 3일 윤칠영 등이 독립만세를 외친 것을 시작으로, 3월 31일부터 4월 5일까지 예산면·고덕면·광시면·대술면 등지에서 만세시위와 봉화시위가 잇달아 전개되었다.
1919년 4월 4일 장날 오후 1시 덕산면 덕산시장에서 약 700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헌병이 시위 주도자 3명을 체포하자 군중은 덕산헌병주재소 앞에서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갔고, 헌병은 발포와 함께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며 다수를 체포하였다.
심춘복은 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1919년 4월 20일 예산헌병분대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대의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202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3. 참고 문헌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30권, 2025.
- 「범죄인명부」.
- 『매일신보』, 1919. 4. 10.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3권,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