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2-08 22:47:02

신포시(申包翅)

1. 개요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는 수덕(樹德). 는 호촌(壺村). 본관은 고령(高靈). 보한재 신숙주의 조부.

2. 생애

신포시(申包翅)는 1361년(공민왕 10)에 태어나 아버지 신덕린의 친구였던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383년(우왕 9) 4월 문과에 급제했으나, 훗날 이성계가 왕좌를 찬탈하여 고려가 망하자 아버지 신덕린과 장인 김충한(金冲漢)을 모시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했다가 전라도 남원으로 내려갔다.

세월이 흘러 조선 세종이 신포시에게 벼슬을 권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남원에서 제자 양성에 힘썼는데 세종이 계속 관직에 나오라고 재촉하고 장남 신장이 진언하여 결국 1427년(세종 9) 관직에 진출했다.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판전농을 거쳐 봉상시정에 제수되고, 1428년(세종 10) 12월 20일 우사간에 제수되었다.

1430년(세종 12) 1월 23일 좌사간에 제수되어 언관의 직임을 수행하면서 불교배척, 양천의 분별에 관한 주장을 펼치는 등 개국 초창기 문물제도의 설행에 유교이념적인 언론활동을 하였다. 7월 3일 공조참의에 제수되고, 9월 17일 내자윤으로 체직(遞職)되었다.

1432년(세종 14) 세상을 떠났으며, 훗날 손자 신숙주의 귀(貴)로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