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color=#fff><colbgcolor=#0047a0> 호 | 경천(擎天) |
| 본관 | 평산 신씨[1] |
| 출생 | 1881년 11월 15일 |
| 경상도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 (현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 | |
| 사망 | 1943년 4월 18일 (향년 61세) |
| 경상북도 예천군 |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124호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신욱은 1881년 11월 15일 경상도 예천군(현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에서 태어났다.그는 한일병합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군기지 개척을 위해 활동하다가 1915년 군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귀국하여 예천군 지보면 호명리에 소재한 임야 및 전답을 매각하여 수년간 안동군에 거주하는 김시현에게 전달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체포된 그는 1921년 5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역 2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옥중에서 항일결사 의혈단(義血團)에 관련한 사실이 발각되어, 징역 2년형이 추가됨으로써 4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5년 출옥후 수백 년 동안 물려 내려오던 종중재산(宗中財産)인 위토(位土)·임야 수천 정보를 매각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으로 전달하여 임정의 활동을 도왔다. 1943년 4월 18일 예천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신욱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 8월 10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했다.
[1] 사간공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