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85858><colcolor=#fff> 시부야 류타 [ruby(,渋谷龍太 ruby=)] [ruby(渋谷龍太, ruby=しぶやりゅうた)] | |
출생 | 1987년 5월 27일 ([age(1987-05-27)]세) |
도쿄도 신주쿠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8~9cm | O형 |
별자리 | 쌍둥이자리 |
학력 | 東京都立目黒高等学校(졸업) 服部栄養専門学校 (수료) |
직업 | 싱어송라이터, 보컬리스트 |
가족 | 부모님 |
소속 | SUPER BEAVER |
포지션 | 보컬, 작곡&작사 |
별명 | 부얀(ぶーやん)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4인조 록밴드 SUPER BEAVER의 보컬이자 작곡가.[1]그 외에도 작가로서 매 달 에세이를 쓰고 있고 이 에세이를 모은 에세이집 '불면 날아갈 듯한 남자지만'과 자서전 '도시의 낙타'를 출판했다.
2. 생애
도쿄 신주쿠구 가부키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드 록을 좋아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 여러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고등학생때부터는 라이브 하우스에 관람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음악에 상당히 관심은 많았던 듯, 그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애용했다고. 여담이지만 이 당시에는 핑크색으로 머리를 염색했었다고 한다.고등학교 재학 중 같은 반 친구이지만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던 우에스기 켄타에게 보컬로 제안을 받고, 맥락 상 알겠다고 대답한다.[2]
밴드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던 초창기에 야나기사와를 미워했던 적이 있다. 시부야 류타가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말을 걸 기회를 야나기사와때문에 놓쳐서 방해자라고 여겼다.
첫 라이브의 날, 추도 공연인 줄 모르고 공연한 공연에서 거의 무반응을 받고, 상처를 받아서 꽤 오랜기간 기죽은 채로 유동식만 먹으며 생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원래는 친구들을 만나느라 스튜디오에 늦는 등 그렇게 진지하게 임하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후 제법 진지해졌다.
시부야와 우에스기가 조리전문학교에 진학하고, 야나기와 후지와라가 3학년으로 올라가며 Teen's music festival 이라고 하는 청소년 음악 페스티벌에 나가기로 결정한다.[3] 예선의 공연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안나고, 지역 예선을 할 때 가볍게 웃었다가, 눈초리를 받고 화장실에서 울었다고한다.
본 대회에서 남대문을 열고 공연을 해서 다른 참가자에게 조롱받게된다. 공연이 끝나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들이 행복해보였다고한다. 시부야는 급하게 사진기사를 찾아가서 영상이 수정이 되냐고 물어보았고, 사진사가 상반신만 찍었다고 하자. 자신의 기억 속 가장 멋있는 어른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페스티벌에서 우승을 하게되고, 소니뮤직의 에픽레코드라는 레이블과 메이저 계약을 맺게된다. 당시에 우선 인디즈에 음반을 먼저 내보고, 메이저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1집의 완성.
이후에는 투어를 시작한다. 즐거워보이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시부야는 집에서 떨어진다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한다.[4] 여담이지만, 시부야는 멀미가 굉장히 심해서 무언가를 타기만하면 토할 정도였는데. 매니저 억양이 굉장히 특이해서 그 말을 알아듣기 위해 집중하느라 구토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메이저 시기에 관한 묘사는 그렇게 밝진 않은 이야기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메이저 데뷔를 하다보니 어른들의 조언과 간섭을 받았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보다는 눈 앞에 있는 어른들을 만족 시켜야했고, 처음엔 '권유'였지만 나중엔 '강요'가 되어있었다고 한다. 스튜디오에 가는 게 정말 싫었다고 한다.
상을 엎거나, 의자를 던지거나 2시간 넘게 매도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인간은 3시간만 자고 살 수 있다고 스케쥴도 상당히 힘들게 잡았다고. 정규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는데 굳이 언급은 하지 않았다. [5]결국 시부야는 레코딩중에 구급차에 실려간다.[6]
구급차로 실려간 이후, 시부야는 마음을 정하고 매니저에게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매니저는 시부야에게 4명이서 시작한 밴드니까, 4명이서 이야기를 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메이저에서 자신들 스스로 인디즈로 내려가기로 한다. 새로 온 디렉터는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라고 하고, 그렇게 메이저 계약이 종료된다. 이 마지막 앨범이 3집 'SUPER BEAVER'이다.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밴드 활동을 이어나간다. 4명이서 돈을 모아 차를 사고, 그 차로 정말 많은 곳에 갔다고. 시부야는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덕분에 술을 굉장히 잘 섞는다고 한다.
인디즈로 내려온 후 했던 첫 공연에서 관객이 3명 왔다고한다. 레이블에서 쫓겨난 애들이니, 문제가 있다는 등에 반을 받았다고한다. 그래서 공연 후에 뒷풀이에 참가하고 음반 가게에 직접 음반을 돌리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그게 어느 정도 통했다고 한다.
한 라이브 하우스 사장은 회사가 정해진대로만 하는 너희를 안좋게 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직접 이야기 해볼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후 회장전용 음원인 '喜びの明日に'를 발매한다. 이 때 처음 음반을 발매하는 법, 유통하는 법등을 배웠지만 이 부분은 작곡을 담당하는 야나기가 잘 알고 자신은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앨범 낼 때 포장같은 부분은 전 멤버가 함께 했다고한다.
3. 渋谷逆太郎
시부야 류타의 솔로 활동의 일환으로, 밴드 활동과는 다른 솔로 활동이다.밴드 보컬과는 다른 느낌으로 주로 어쿠스틱한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4. 여담
- 가끔 통기타로 어쿠스틱 라이브를 할 때가 있는데, 그 때엔 渋谷逆太郎(시부야 갸쿠타로)라는 명의로 활동.
- THE ORAL CIGARETTES의 보컬, 야마나타 타쿠야와 친분이 있는 듯하다 인스타 라이브[7]
- 2021년에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로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상담을 해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말리기도 했고, 인터뷰이인 야마나타 타쿠야도 만류하기도 했고, 무대에서 멋있어 보인다고 한다.
- 겉 모습만 보고 불량하다고 생각되거나, 무서운 인물로 생각되는 일이 적지 않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다정한 사람이라고 한다.[8]
- 머리를 기르고 화장하는 이유로, 무대에서 잘 보였으면 좋겠어서 라고 응답했다.[9]
- 쉬는 날에는 다음 날도 비어있다면 주로 술을 마시는 편이고, 아니면 책을 읽는다고 한다. 책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도 하고, 직접 집필하여 출간한 책들도 있다.
- 타투를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다.
- 상당히 마른 편으로, 3끼 중 1끼만 먹는다고 한다.[10]
- 작곡을 담당 중이지만, 악기 레코딩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치도 못한 좋은 느낌을 받을 때의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지적할만한 위치가 아니라고 하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이 레코딩 할 때는 로비에서 책을 읽는다고 한다.
- 외동이나 형이 있다는 오해를 받는다. 트위터에 '형'이라고 지칭한 트윗때문에 발생한 오해인데, 외동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고 종종 친한 형들을 그냥 형이라고 올려 오해를 받는 듯하다. 잘못 적힌 정보가 많아서 오해가 더 커지는 듯.
- 후지와라에게 몇 번이나 나이를 되물어서 울린 적이 있다.[11]
- 인스타 라이브방송을 시작했다. 계기는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서라고한다. [12]
- 성격이 꽤 느긋한 편으로, 화 내는 일이 많이 없다고 한다.
- 술 만드는 솜씨는 어디가서 지지 않는다고하며, 이 것은 다년간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 했던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일이 주어진만큼만 하고 필요 이상으로 일 하는 편은 아니라서 아르바이트 매니저 직책은 맡지 못했다.
- 책에 대해 관심이 많고, 글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 용돈과 책 값을 따로 받았는데 용돈을 다 쓰고도 책 이라는 장난감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많이 읽었다고 한다.
- 야나기사와가 작사할 때 시부야의 mc에서 영향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自慢になりたい'가 있다.
- 부모님이 시부야의 고향 가부기초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류타의 이름도 가게의 이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 타투는 자신과 관련 있는 것들로만 하는 편이고, 오른 쪽에만 타투를 새긴 것은 몸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이라고 언급했다.
-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몸에 균형을 맞추는 것에 상당히 몰두해서,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 버릇을 고쳤다고 한다.[13]
[1] 많은 곡은 아니나 솔로곡이나, 슈퍼비버의 수록곡 몇 곡의 작곡작사를 했다.[2] 이 당시에는 이 밴드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줄도, 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해봤다고 한다.내심 우에스기가 멋있어서 요청했다고 말하길 기대했다고...[3] 그 전년에도 참가는 하였으나, 본 대회에서 탈락했다고 한다.[4] 후지와라가 자신과 같이 곤란한 표정이라 좋았으나, 생각보니 후지와라는 항상 그런 표정이었다고 묘사한다.[5]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른'들에게 어른이 되기로 했다는 언급으로 미루어보아 파장을 고려하여 하지 않은 듯하다.[6] 검사 때문에 3일정도 입원한 시부야에게 퇴원 날 많이 쉬었으니 스튜디오에 나오라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7] 야마나타 타쿠야가 슈퍼 비버의 팬이라고 한다. 오사카에 공연오면 꼭 오는 왕팬이었다고. 메이저 데뷔 이후엔 슈퍼비버가 THE ORAL CIGARETTES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https://youtu.be/f5eTyse6ZSk?si=d58UwUCB4DTFcQl-[8] 인터뷰 할때도 오레도 쓰지만, 와타시를 쓰기도하고 관객들에겐 꼬박꼬박 존대하며 아나타라고 부른다.[9] https://www.kkbox.com/jp/ja/column/interviews-0-282-1.html[10] 예전에 돈이 없었을 시절에 그렇게 하던 습관이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11] 첫 공연을 언급할 때, 우에스기는 열심히하는 치는 손패드만, 야나기는 긴장해서 60cm처럼 보였다고 묘사했지만 후지와라는 아저씨라고 묘사했다.[12] 달에 한 번정도 할 예정이라고 응답했으며, 아카이브는 남기지 않는다. 당일에 고지하는 경우가 많으니 챙겨보기 위해선 트위터나 인스타 알림을 켜두는 편이 좋다.[13] 예를 들어 오른쪽이 어딘가에 부딪힌다면 왼쪽도 똑같이 부딪혀야하는 균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