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EFEFEF 0%, #FFF 20%, #FFF 80%, #EFEFEF); color:#00008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여로보암 왕조 | 바아사 왕조 | 시므리 왕조 |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
| 여로보암 1세 | 나답 | 바아사 | 엘라 | 지므리 | |
| 비정통 | 오므리 왕조 | ||||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9대 | ||
| 디브니 | 오므리 | 아합 | 아하시야 | 여호람 | |
| 예후 왕조 | |||||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
| 예후 | 여호아하즈 | 여호아스 | 여로보암 2세 | 즈가리야 | |
| 살룸 왕조 | 므나헴 왕조 | 베가 왕조 | 호세아 왕조 | ||
| 제15대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
| 살룸 | 므나헴 | 브가히야 | 베가 | 호세아 | |
| }}}}}}}}}}}} | |||||
| 북이스라엘 왕국 제5대 국왕 지므리 זִמְרִי | Zimri | |||
| | |||
| <colbgcolor=#00008B,#00008B><colcolor=#fff> 출생 | 미상 | ||
| 미상 | |||
| 사망 | 기원전 885년경 | ||
| 북이스라엘 왕국 디르사 | |||
| 재위 기간 | 제5대 북이스라엘 왕국 국왕 | ||
| 기원전 885년 (약 7일)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08B,#00008B><colcolor=#fff> 지파 | 미상[1] | |
| 전임자 | 엘라 | ||
| 후임자 | 디브니 (비정통)[2] / 오므리 | }}}}}}}}} | |
1. 개요
유다 왕 아사 제이십칠년에 지므리는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는데 그의 통치는 칠 일 만에 끝났다 (중략) 그가 이러한 최후를 마친 것은 그가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고 여로보암이 걸었던 길을 따라 같은 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열왕기 상권 16장 15절.19절 (공동번역)
열왕기 상권 16장 15절.19절 (공동번역)
북이스라엘 왕국의 5대 국왕이자 지므리 왕조의 시조이자 마지막 왕.
2. 생애
북이스라엘에서 병거대의 절반을 지휘하는 장군이었으나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 올라 바아사 왕실을 몰살시켰다. 당시 강력한 라이벌 오므리는 블레셋과 국경 요충지인 기브돈에서 전투 중이었으므로 시므리의 군대는 손쉽게 북이스라엘을 장악할 수 있었고, 왕위를 찬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한 데다가 그 과정에서 잔악한 행동을 해 민심을 얻지 못했다.[3] 시므리의 찬탈 소식을 접한 오므리는 기브돈 현지에서 군의 지지를 얻었고 회군해 수도 디르사에서 시므리군과 내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오므리의 군대가 승기를 잡았으며 대세가 기운 것을 알게 된 시므리는 왕위에 오른지 겨우 7일 만에 궁성에 불을 질러 자살한다.훗날 예후가 반란에 성공하여 입궁할 때, 이제벨은 죽기 직전에 예후를 시므리라고 빗대어 비꼬았다.[4] 이는 “니가 오래 가겠냐?”라는 의미지만 정작 예후는 자기 포함 5대까지 왕조가 이어지며 오므리 왕조보다도 장수했다.
여담으로 성경 기록이 사실이면 시므리 왕조는 1대 1주일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단명 왕조가 된다.
[1] 시므온 지파나 유다 지파 또는 에브라임 지파 소속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보수파 유대교 랍비인 루이 긴즈버그는 지므리가 시므온 지파였을 것으로 추정했고 미국의 감리교 목사인 J. H. 앨런은 그가 유다 지파 선조들 중 동명이인인 '지므리'의 후손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토모 이시다(Tomoo Ishida)는 오므리 가문이 이싸갈 지파 영토인 이스르엘 출신인 것에서 착안하여 오므리와 이싸갈 지파가 지므리를 반대했으므로 지므리는 이싸갈 지파 출신이 아니었다는 추측을 도출했고 지므리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다고 추정했다. 족보학자 휴즈(David Hughes)는 지므리와 디브니가 에브라임 지파 소속으로 친형제였을 것으로 추정했다.[2] 4년 동안 왕위계승을 주장하며 오므리와 대립했으나 세력이 오므리 세력에게 패하고 사망했다.[3] 왕위에 꼴랑 7일밖에 있지 않았음에도 악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잔악한 왕을 야훼를 잘 섬겼다는 이유만으로 선하다 평가할 순 없을테니까... 다만 시므리의 악행으로 기록된 것은 두 가지 뿐으로 하나는 여로보암의 길을 걸은 것(금송아지 숭배)이고 다른 하나는 바아사 왕실을 몰살할 때 친족 뿐 아니라 친구들까지 몰살시켰다는 것 뿐이다.[4] 열왕기하 9장 3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