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ron | |
언어별 표기 | |
헝가리어 | Sopron |
독일어 | Ödenburg(외덴부르크) |
슬로베니아어 | Šopron(쇼프론) |
1. 개요
헝가리 죄르모숀쇼프론 주의 도시. 오스트리아에 인접한 국경도시이다.2. 역사
로마 제국 시대에 세워진 스카르반티아(Scarbantia)라는 도시가 전신이나, 마자르족이 푸스타 평원에 진주했을 때는 이미 폐허상태였다. 9~11세기에 헝가리인들이 성을 세우면서 당시 관리였던 슈프룬(Suprun)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 쇼프론으로 도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1153년에 이미 헝가리 왕국의 중요 도시로 언급되며, 1273년 보헤미아 국왕 오타카르 2세가 침공해 주요 귀족들의 자녀들을 인질로 잡아 위협을 가했으나 항복하지 않고 버텼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대 독일왕 루돌프 1세와 손잡은 헝가리 국왕 라슬로 4세가 도시를 구원하였고, 이때 항복하지 않고 버틴 공로를 사서 왕실 도시로 승격되었다.
1526년 모하치 전투로 헝가리 왕국이 붕괴되고 1529년 오스만 제국이 제1차 빈 공방전을 비롯해 헝가리 왕국을 유린하는 와중에도 함락되지 않고 버텼다. 잦은 전란과 수탈로 황폐화된 오스만 헝가리에서 많은 헝가리인들이 피난오면서 중요성이 점차 커졌고,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 산하 헝가리 왕국의 주요 도시로 급부상했다. 1848년 헝가리 혁명 진압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실시한 5개의 군구[1] 중 하나였으며, 대타협으로 헝가리가 주권을 되찾은 후에는 쇼프론 주(Sopron vármegye)에 속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자 독일인(오스트리아인)이 많이 거주하던 포조니, 쇼프론,[2] 모숀머저로바르(Mosonmagyaróvár)는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으로 귀속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쇼프론 시민들은 신생 헝가리에 남기 위해 격렬한 항쟁을 벌였고, 결국 1921년 12월 14일 치러진 국민투표 끝에 헝가리에 귀속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3] 덕분에 쇼프론은 가장 충성스러운 도시(Civitas Fidelissima)[4]라는 별칭을 얻었다.
냉전시대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국경지대에 위치하여 공산주의 진영의 최전선에 섰지만, 1989년 동유럽 혁명 당시 쇼프론에서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이 개방되어 수많은 헝가리인들이 오스트리아로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600여 명의 동독인들도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것을 헝가리군이 묵인하면서 동독 정권 붕괴의 기폭제가 되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냉전 종식에 큰 영향을 미친 곳이기도 하다.
3. 사회
인구는 2022년 기준 62,116명. 2011년 인구조사 결과에서는 헝가리인 88%, 독일인 5.7%[5]를 기록해 대부분이 헝가리어를 사용하고 가톨릭을 믿는 헝가리인이나, 독일인을 비롯한 소수민족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관광
-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 헝가리 왕국, 오스만 제국 등 다양한 국가에 편입되면서 고풍스러운 중세 성과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있어서 유럽에서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와인 생산 지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프란츠 리스트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유명함을 증명하듯이 2016년 미국의 여행 웹사이트 럭셔리 트레블 어드바이저가 선정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30'에 선정되기도 했다. #
- 이 마을은 문화적으로도 볼거리가 많지만 또 하나의 관광 테마가 있는데 바로 '임플란트 관광'이다. 6만여 명이 사는 마을에 거주하는 치과의사가 1,400명에 달하며 치과병원도 300개나 된다. 헝가리 전체 치과의사가 4천명인데 그 중 35%가 이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유럽 국가들은 아무리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어도 임플란트 시술을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드는데,[6] 쇼프론에서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임플란트를 받을 수 있고, 병원마다 피부 관리실, 마사지 휴게실 등 부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문화 관광을 겸하여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매우 가깝다. 당일치기도 가능하나, 오스트리아는 유로를 쓰고 헝가리는 포린트를 쓰기 때문에 포린트를 미리 준비해야 관광에 수월하다.[7]
[1] 오펜, 프레스부르크(현재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카샤우(현재 슬로바키아 코시체), 그로스바르다인(현재 루마니아 오라데아).[2] 191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인구조사 당시에는 33,931명의 시민 중 51%가 독일인, 44.3%가 헝가리인이었으며 64.1%가 가톨릭을, 27.8%가 루터파를 믿었다.[3] 대신 헝가리 왕국 내 독일인 비중이 높던 지역은 최종적으로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는데 그 지역이 현재의 부르겐란트다. 원래 오스트리아로 넘어갔어야 할 지역들이 헝가리에 잔류하면서 부르겐란트의 경계가 세로로 길쭉하고 가로는 극단적으로 좁은 기형적인 모양새가 되었다.[4] 헝가리어로는 A Leghűségesebb Város[5] 그 외에도 크로아티아인 0.7%, 루마니아인 0.6% 등이 있다.[6]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7] 쇼프론은 카드를 받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포린트 현금이 없으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