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송태호 宋泰浩 | |
출생 | 1930년 11월 24일 |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 | |
사망 | 1953년 6월 12일 |
서부전선 무명고지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최종계급 | 육군 하사 |
복무 기간 | 1951~1953 |
[clearfix]
1. 개요
송태호(宋泰浩, 1930년 11월 24일 ~ 1953년 6월 12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2. 생애 및 군 경력
송태호는 1930년 11월 24일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에서 출생하였다.1951년 6월 1일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였으며, 이후 6·25전쟁에서 제1사단 제15연대 수색중대 제1소대 소총수로 복무하였다.1952년 10월 1일, 송태호 하사는 연천 북쪽 임진강 북안 고양대 일대에 투입되었다. 당시 이 지역은 중공군과 국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은 추계공세의 개시와 함께 제15연대 방어선을 향해 대규모 포격을 가한 후, 니키고지 점령을 위해 1개 대대 규모로 공격을 감행하였다. 송태호 하사가 속한 제1소대는 적의 인해전술 공격을 받으며 필사의 방어전을 전개하였다.소대원들은 집중 화력을 이용해 적의 돌파를 저지하였고, 동굴호에 집결하여 적을 진지 내부로 유인한 후 진내사격으로 섬멸하는 전술을 계획했다. 그러나 무선 통신이 끊겨 진내사격 요청이 불가능해지자, 송태호 하사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직접 적과 맞서 싸울 것을 결심했다.
송태호 하사를 포함한 4명의 결사대는 수류탄을 던지며 동굴 입구로 돌진하던 중, 중공군이 설치한 TNT 폭약이 폭발하면서 흙더미에 매몰되었다. 그러나 그는 대검으로 흙더미를 파헤쳐 탈출한 후 신호탄을 발사하였고, 이를 신호로 아군 중대가 역습을 감행하여 중공군을 격퇴, 진지를 성공적으로 사수할 수 있었다.
니키고지 전투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1952년 11월 5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1953년 6월 12일, 정전협정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서부전선의 무명고지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용맹과 희생정신은 대한민국 국군의 귀감이 되었으며, 그가 보여준 충성과 헌신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값진 희생으로 기억되고 있다. 2022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3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화랑무공훈장(1952년 11월 5일 수여)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22년 3월)
4. 참고 자료
육군본부, 『한국의 전쟁영웅들』, 1992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송태호 육군 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