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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6-18 10:47:01

송담

1. 개요2. 생애3. 여담4. 법맥

1. 개요

송담 스님(松潭, 1927~ ), 인천 용화선원 원장으로, 90대 후반까지 참선을 지도한 한국 근현대의 대표적 선사이다. 한국전쟁와중에도 묵언을 유지하며 치열하게 수행하였으며 전강스님에게 전법계를 받았다.[1]

2. 생애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려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가운 기러기는 저 장천을 울며 북을 향하여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간 헛되이 힘을 낭비하였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10년간의 묵언수행 끝에 견성하고 남긴 오도송
한국 근현대 불교의 대표적 참선 지도자로, 특히 인천 용화선원의 선풍(禪風)을 일으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용하고 은둔적인 성격으로 대중적 노출은 피했으나, 그의 문하에는 수많은 참선 수행자들이 있었으며, 대표적으로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환산 스님(테오도르 준 박)이 있다. 송담 스님은 평생 동안 화두 참선을 중심으로 한 정진을 강조하며, 출가 수행자는 물론 재가 불자들에게도 정진의 끈을 놓지 말 것을 가르쳤다.

그는 용화선원을 중심으로 납자들을 이끌며, 선문(禪門)의 정통을 계승하는 데 집중하였다. 특히 “언제나 화두를 놓지 말고 지금 여기서 의심하라”는 가르침으로, 화두를 일상의 중심에 두는 수행법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철저히 참선 중심의 수행을 실천하고 지도하였기에 제자들은 그를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진정한 ‘깨달은 스승’으로 받아들였다.

송담 스님은 언론과의 접촉도 거의 없고, 법문을 활자로 남기지도 않은 채 묵묵히 선원에서 수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행자의 삶을 실천하였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참선을 이어가며,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조용히 한국불교의 등불을 지켜온 존재였다. 송담 스님의 생애는 “설법 없는 설법”, 즉 몸으로 보여주는 정진의 삶 그 자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계종이 이런 참선의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에서 제자들과 함께 탈종하였다.[2]

3. 여담

4. 법맥

세대 이름
1세 경허 스님 (鏡虛, 1849~1912)
2세 만공 스님 (滿空, 1871~1946)
3세 전강 스님 (田岡, 1898~1975)
4세 송담 스님 (松潭, 1927~ )

[1] 법보신문 – 송담 스님의 가르침 체화해 풀어쓴 참선 에세이[2] ‘마지막 선승’의 결별 선언…세속화에 대한 경고인가[3] Theodore Jun Park, The Sociology of Zen Meditation: The Power of Silent Sitting (Seoul: Omelas,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