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손경헌(孫庚憲) |
이명 | 손장옥(孫章玉), 손병헌(孫昺憲), 손곡장(孫谷長) |
호 | 성하(成河) |
본관 | 일직 손씨[1]# |
생몰 | 1870년 4월 6일 ~ 1931년 8월 2일 |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안법리[2] |
사망지 | 만주 환인현 육도하자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손경헌은 1870년 4월 6일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안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대한협회 밀양군 책임자로서 민족사상 고취운동을 일으켰지만 한일병합 후 국내에서 활동이 어려워지자 1913년 11월 가족과 함께 만주 환인현 육도하자로 이주하여 농장을 개척하는 한편 국내에서 이주해오는 한인들에게 농지를 나눠줘서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줬다. 또한 1919년 4월에 환인현 한인회의 교민회장에 선출되어 동포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조국 광복을 위한 동지 규합에 전념했다.그는 흥업단과 밀접한 유대 관계를 맺으며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1920년 11월에는 흥업단원 이만준(李萬俊)이 찾아오자 부하 최인제(崔仁濟)·최성기(崔聖基)·황문익 등과 함께 국내로 파견하여 군자금 6만여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부하들은 약 300에서 4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손경헌은 밀양에 있는 친척인 손종헌에게 사람을 보내 군자금을 모금하게 하는 등 밀양의 독립운동가들과 연계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조국의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31년 8월 2일 만주 환인현 육도하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손경헌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