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0C420><colcolor=#ffffff> 소예 邵銳 | |
이름 | 소예(邵銳) |
시호 | 강희(康僖) |
출생 | 생년 미상 |
대명 절강성 항주부 인화현 | |
사망 | 1537년 |
대명 절강성 항주부 인화현[1] | |
자 | 사억(思抑) |
호 | 단봉(端峰)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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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나라의 문학가이자 관리2. 생애
정덕(正德) 3년(1510), 진사(進士)가 되고 서길사(庶吉士)가 되었다가 편수(編修)에 올랐다. 얼마 뒤 부친상을 당해 돌아왔고 복상이 끝나자 영국추관(寧國推官)이 되었다. 거듭 승진하여 복건제학부사(福建提學副使)가 되었는데 부화한 것은 억누르고 신실한 것을 숭상해 사습(士習)이 일시에 바뀌었다. 태복경(太僕卿)까지 올랐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인 항주로 돌아왔다.3. 문학
소예는 명대 문학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이다. 청렴한 관리로 알려졌던 만큼 사회 현실과 민생을 반영한 작품을 썼다. 그의 문집인 단봉존고(端峰存稿)에는 그의 주요 시문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명대 문학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4. 사상
유학가로서 관직은 백성을 기본으로 하고 도덕 수양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고향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