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바 이스마일리아 일대
프랑스령 모로코 시기에 조성된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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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سطات베르베르어 ⵥⴻⵟⵟⴰⵜ
영어 Settat
모로코 중부의 도시. 카사블랑카와 쿠리브가에서 각각 남쪽과 서쪽으로 60km, 엘자디다에서 동쪽으로 70km, 마라케쉬에서 북쪽으로 130km, 사피에서 동북쪽으로 150km 떨어진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15만명으로, 모로코에서 22번째로 큰 도시이다. 모로코의 주요 도시들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로, 18세기 들어 크게 발전하였다. 주민들은 대부분 산하자계 하와라 부족에 속한 베르베르 인이다. 잘 정돈된 시가지의 도심부에는 카스바 이스마일리야와 근대 건축물들이 있다. 출신 인물로 유대인 거부로서 모로코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한 다비드 아마르, 하산 2세 시기의 내부무 장관을 지낸 드리스 바스리, 축구 선수 야히아 자브란 등이 있다.
2. 역사
18세기 초엽 알라위 왕조의 술탄 물라이 이스마일이 카스바 (성채)를 세운 것에서 점차 도시가 형성되었다. 카스바 이스마일리야 덕에 안전이 확보되자 인근 지역민들이 이주해오며 도시는 확대되었고, 술탄 이스마일은 카이드 (지휘관) 두칼리를 파견하여 세타트를 일대의 주도로 삼았다. 18-19세기 세타트는 비옥한 토양과 남북 교통의 요지에 입지한 덕에 농산물 거래의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상업에 능한 유대인들이 대거 정착하였다. 그들은 카스바 옆에 멜라 구역을 형성하였다.2.1. 근현대
프랑스 시기에 세워진 시청사
20세기 초엽 일대의 샤위아 부족들이 프랑스령 모로코에 맞서 술탄 물라이 하피드의 근왕 운동을 벌이며 세타트는 전장이 되기도 했지만 20세기 중반에는 안정과 함께 크게 발전하였다. 다만 1950년대 들어 카사블랑카에 물류와 교통 역량이 집중되며 세타트는 소외기를 겪었다. 그러다 70년대에 시가지가 재정비되었고, 카사블랑카-마라케쉬를 잇는 고속도로가 지나게 되었다.
3. 볼거리
- 카스바 이스마일리야
물라이 이스마일이 세운 카스바와 모스크. 도심 중심부에 있어 쉽게 눈에 띈다 .
- 근대 시가지
프랑스 지배기에 네오 아랍 양식으로 조성된 시가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