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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06:50:19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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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efd88f>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Սերգեյ Փարաջանով | Сергей Параджанов
Sergei Parajanov
파일:external/img.atb.am/Sergey_Parajynov_13.jpg
본명 사르키스 호프세피 파라자냔
(Սարգիս Հովսեփի Փարաջանյան)[1]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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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24년 1월 9일
소련 그루지야 SSR 트빌리시
사망 1990년 7월 20일 (향년 66세)
소련 아르메니아 SSR 예레반
학력 전러시아국립영화학교(ВГИК)
직업 각본가, 감독
영화 데뷔 1951년, '몰도바 이야기'

1. 개요2. 생애3. 주요 작품4.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5. 석류의 빛깔6. 수람 요새의 전설7. 아시크케리브8.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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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화의 신전에는 이미지, 조명, 리얼리티가 있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는 그 신전의 주인이었다.
장뤽 고다르
아르메니아소련인 영화감독. 위대한 아르메니아인 음악가로 아람 하차투리안을 꼽는다면 영화계에서는 세르게이 파라자노프가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관과 아르메니아의 문화를 결합시켜 걸작들을 만들어냈지만 그 예술관 때문에 소련 공산당의 탄압을 받아 제대로 된 영화 활동을 하지 못했으며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인한 해빙 분위기 속에서 재기할 기회를 노렸지만 병마로 인해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타계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1924년 태어났으며 하차투리안과 마찬가지로 파라자노프도 출생지 자체는 조지아 트빌리시였으나 민족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인이었다. 1945년 모스크바에 소재한 영화학교인 VGIK에 입학했다.[2] 영화 학교에 재학중이던 1948년 파라자노프는 동성애 혐의로 투옥을 당했으나 3달만에 풀려나게 된다. 이후 그는 1950년 타타르족 무슬림 출신의 아내와 결혼하기도 하였다.[3] 1951년 졸업 작품으로 단편 영화 '몰도바 이야기'(Молдавская сказка)를 발표하고 3년 뒤인 1954년 데뷔작 '안드리예시'(Андриеш)를 발표하여 파라자노프는 소련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시기까지 파라자노프는 일반적인 소련 영화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가까운 양식을 구사했었다.

이후 다큐멘터리와 단편 영화들을 계속 제작하던 그는 1965년 우크라이나 지방의 설화를 소재로 한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Тіні забутих предків)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1968년 마침내 그의 최고 걸작이자 문제작인 '석류의 빛깔' (Цвет граната, 아르메니아어: Նռան գույնը)를 발표한다. 18세기에 활동한 아르메니아의 시인 사야트 노바(Սայաթ-Նովա, 1712–1795)의 생애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대사보다 영상미 자체에 대한 집중, 기존 영화의 전개 방식의 탈피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1인 다역, 아르메니아적 전통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평범한 양식으로 제작된 다수의 소련 영화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집권 이래 보수주의로 회귀하던 소련 공산당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게 만들었고 더군다나 민족주의적 요소를 탄압하던 공산당 입장에서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이 작품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이미 제작 단계에서부터 소련 정부의 간섭이 들어갔고 압력에 굴복하여 장면 일부를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1977년 이전까지 이 영화는 해외에 공개되지 못했다.

'석류의 빛깔' 제작 이후 파라자노프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었고 결국 1973년 12월 당국에서 동성애, 음화 반포 등의 혐의를 적용해 파라자노프를 체포하고 그에게 5년 형을 선고한다.[4]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등 동료 영화 감독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파라자노프는 4년 동안 수감되었어야 했고 출소[5] 이후에도 매수 혐의로 투옥당하는 등 고초를 겪어 10년 넘게 사실상 영화 활동을 할 수 없었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그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지면서 파라자노프는 무려 17년 만에 새로운 작품 '수람 요새의 전설' (Легенда о Сурамской крепости, 조지아어: ამბავი სურამის ციხისა)를 조지아인 감독 도도 아바시제(დოდო აბაშიძე)와 함께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단독으로 영화 제작에 매진하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던 파라자노프는 소련이 해체되기 1년 전인 1990년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은 영화 '고백' (Խոստովանանք)를 끝내 마무리짓지 못하고 예레반에서 폐암으로 타계한다.

3. 주요 작품

4.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eni_predkov_poster.jpg

5. 석류의 빛깔

파일:external/25.media.tumblr.com/tumblr_m6jpt6FALV1r3owlzo1_500.jpg

6. 수람 요새의 전설

7. 아시크케리브

8. 고백


[1] Sargis Hovsepʿi Pʿaraǰanyan. 러시아어 표기는 세르게이 이오시포비치 파라자노프(Серге́й Ио́сифович Параджа́нов).[2] 재학 중 파라자노프의 스승 가운데는 최고의 소련 감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알렉산드르 도브젠코가 포함되어 있었다.[3] 이후 그녀는 개종했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살해당했다.[4] 다만, 파라자노프는 실제로 동성애자 내지는 양성애자였다는 의혹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련 당국의 행위가 정당화되기는 힘들다.[5] 일설에 따르면,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루이 아라공(아라공 또한 사회주의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브레즈네프와의 만남에서 파라자노프의 석방을 제안했고, 브레즈네프가 이를 받아들여 성사된 일이라고 한다.[6] 촬영감독 출신이며, 아르메니아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르타바즈드 펠레샨(Արտավազդ Փելեշյան)과 작업한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