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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유자(孺子).
양주 예장군 남창현 사람으로 사람됨이 정묘하고 고매해 세속을 초탈했으며, 집이 가난해 항상 스스로 농사를 지어 자기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또한 공손하고 검소하면서 의리가 있고 사양해 그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그의 덕에 모두 복종했으며, 진번, 호광, 태위 황경 등이 그를 추천해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고 태원태수에도 임명되었지만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황경이 죽자 그 소식을 듣고 예장군에서 강하군까지 3000여리를 걸어가서 조문하러 갔는데, 갈 때마다 항상 닭을 싸가지고 가서 가야 할 무덤의 길 밖에 이르러 물로 베를 적시고 쌀밥 한 말에 흰 띠풀로 자리를 삼아 닭을 앞에 놓고 술 따르는 것을 끝내면 명함만 남겨놓고 곧 떠나 상주를 만나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 모였던 자들 중에 서치인가 의심해 모용을 보내어 따라가게 했는데, 모용과 농사에 대한 말을 하다가 작별할 때가 되어 곽태에게 “나 대신 곽임종에게 전해주시오. 큰 나무가 장차 쓰러지려고 할 때는 하나의 노끈으로 버틸 수가 없는 법이오. 어찌 금해서 한가로이 편안하게 있지 못하는 거요 전해 주구려.”라고 했다. 곽태가 모친상을 당하자 가서 조상해 날꼴 한 묶음을 집앞에 놓고 갔으며, 여러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겼으나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곽태는 남주의 고사 서유자일 것이다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곽태가 시경에서 날꼴 한 묶음은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옥과 같다고 했다면서 내 결백을 칭찬해준 것이지만 자신은 덕이 없어 이 말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수레로 3번이나 그를 불렀지만 나아가지 않았고 천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세설신어에는 9살 때의 일화와 진번에 관한 일화가 있다.
- 9살 때의 일화
9살 때 달빛 아래에서 놀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만약 달 속에 다른 다른 물건이 없다면 틀림없이 더욱 밝아지겠지?"라고 하자 "그렇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사람 눈 속에 동자가 있어서 이것이 없으면 절대로 밝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 진번과의 일화
진번이 예장태수일 때 진번이 서치를 위해 평상 하나를 마련해놓고 그가 돌아가면 매달아놨는데, 서치가 진번에 예우받음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