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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17:29

서재수

성명 서재수(徐在守)
생몰 1898년 1월 29일 ~ 1964년 10월 8일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
사망지 경상북도 안동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재수는 1898년 1월 29일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유연성, 유동수, 박재식, 유교희, 박보선(朴普先) 등과 함께 임동면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윽고 1919년 3월 21일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해 500명의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외치며 임동 주재소로 몰려갔다.

그는 군중을 인솔해 주재소 건물과 사택, 서류, 집기 등을 파괴하고 일본 경찰을 구타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결국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죄, 건조물 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안동시에서 조용히 살다가 1964년 10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서재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