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물 제1804호 | |
<colbgcolor=#315288><colcolor=#fff>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 太宗 獻陵 神道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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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太宗 獻陵 神道碑. 조선의 제3대 왕 태종의 능인 헌릉(獻陵)에 세워진 신도비.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1804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재질 대리석, 높이 520cm, 귀부이수(龜趺螭首) 양식 제작.조선의 3대왕 태종의 생애와 업적 등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만든 비석이다. 1424년에 완성되었으며, 비문은 변계량(卞季良)[1]이 썼다.
이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는 조선 태종 시기에 처음 한국에 대대적으로 도입되어 이후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중국 명나라 전통 석비의 양식을 갖춘 최초의 작품이다. 따라서 태종무열왕릉비와 같이 기존에 제작되었던 한국 고유의 비석 양식 작품들과 대비되며, 중화 숭명사상을 통해 전해진 대륙지방 이수양식 작품의 기준작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선 초 이후부터 중국 명나라 양식의 비석들을 유행시킨 중요한 작품이란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1804호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서울 太宗獻陵神道碑)’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조선 왕조의 왕권을 다졌던 태종 이방원(太宗 李芳遠, 재세 1367~1422, 재위 1400~1418)의 생애와 업적 등을 기리기 위해 일대기를 새겨 넣은 비석이다. 1424년(세종 6)에 세운 것으로 조선 초기의 서예 문화 연구 자료로써 손색이 없는 금석문이다.
비문은 변계량(卞季良, 1369~1430)이 짓고, 글씨는 성개(成槪, ?~1440)가 썼으며, 전액(篆額, 전서체로 쓴 머리글자)은 권홍(權弘, 1360~1446)이 썼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귀부(龜趺)는 손상되었지만 이수(螭首)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조선 초기 새롭게 명나라의 석비 전통을 받아들이는 비석의 이수양식을 연구하는데 기준작이 된다.
비문은 변계량(卞季良, 1369~1430)이 짓고, 글씨는 성개(成槪, ?~1440)가 썼으며, 전액(篆額, 전서체로 쓴 머리글자)은 권홍(權弘, 1360~1446)이 썼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귀부(龜趺)는 손상되었지만 이수(螭首)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조선 초기 새롭게 명나라의 석비 전통을 받아들이는 비석의 이수양식을 연구하는데 기준작이 된다.
[1] 당대 최고의 학자로, 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고려 말의 폐단을 개혁하고 글도 잘 써 외교를 거의 20년 동안 맡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