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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4 14:06:45

서삼종

출생 1896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군
사망 1972년 2월 28일
충청남도 부여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상훈 대통령표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유공자.

2. 생애

사립 창영학교 교사인 엄창섭은 1919년 3월 5일 군산 영명학교 학생인 강금옥으로부터 만세운동을 주도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에 찬동한 엄창섭은 3월 6·7일경 자신이 거주하는 창영학교 안에서 고상준, 추병갑 등과 만나 3월 10일 충남 논산군 강경의 장날을 이용해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시위군중에게 배부해 줄 태극기를 제작하기로 하고, 3월 8일 강경읍에서 한지 60매와 물감 등을 구입하여 학교에 모였다. 그러나 제작이 여의치 않자 이튿날 김종갑추성배를 학교로 불러 만세운동 동참과 태극기 제작 협조를 요청하여 10일 아침까지 200여 매의 태극기를 제작했다.

3월 10일, 그는 엄창섭에게 부탁을 받아 가마니에 넣어 둔 태극기를 옥녀봉으로 운반했다. 이날 오후 3시경 시위군중이 옥녀봉으로 집결하자, 그는 태극기를 꺼내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고 군중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어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강경 장터로 행진하였다. 이곳에서도 그는 군중들과 ‘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들고 태극기를 흔들며 읍내로 행진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