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비토르 마르콜리누 다실바 (Vítor Marcolino da Silva) |
생년월일 | 1909년 2월 20일 |
사망년월일 | 1982년 7월 21일 (향년 73세) |
국적 | 포르투갈 |
출신지 | 리스본 |
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불명 |
소속팀 | 카르카벨리뉴스 (1926-1927) SL 벤피카 (1927-1936) |
국가대표 | 19경기 / 8골 (1928-1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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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리스본에서 태어난 실바는 클루브 인테르나시오날 데풋볼(Club Internacional de Foot-ball)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배웠지만 1924년에 축구팀이 문을 닫으면서 오케이 CP(Hóquei CP)를 거쳐 카르카벨리뉴스(Carcavelinhos)에서 뛰게 되었다.1927년, 실바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생겼는데 바로 포르투갈의 명문팀 벤피카의 관심이었다. 벤피카는 카르카벨리뉴에 이적료를 주면서 실바를 합류시켰고 1928년 4월 8일, 스포르팅을 상대로 아웃사이드 포워드 포지션에서 벤피카 데뷔전을 가졌지만 팀은 패배했다.
실바는 곧 포지션을 중앙 공격수로 옮겼고 벤피카는 실바의 선수 생활동안 리스본 지역 리그 우승 1회, 캄페오나투 드 포르투갈 우승 3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1회의 우승 기록을 남겼다. 실바는 1931년부터 3년간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7세의 나이에 혈전성 정맥염으로 이른 은퇴를 겪어야 했다. 벤피카 구단은 그를 위해 1937년 9월 13일, 스포르팅과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열어주었다.
2.1.2. 국가대표
1928년 1월 8일. 실바는 18세의 나이로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2대2로 비겼다.실바의 국가대표 커리어 하이라이트는 1928년 올림픽이었다. 실바는 3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포르투갈의 8강 진출을 이끌었지만 포르투갈은 8강전에서 복병 이집트에게 일격을 얻어맞으며 1대2로 패배, 탈락하고 말았다. 실바는 0대2로 뒤지던 후반 31분에 추격의 불씨를 당기는 골을 기록했지만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포르투갈은 193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이웃 스페인과 홈 앤드 어웨이로 맞붙었게 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실바가 빠진 차마르틴 원정 1차전에서 0대9로 완전히 박살이 났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마저 1대2로 패배하며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술했듯 실바는 1936년에 은퇴하게 되어 그의 선수로서의 월드컵 출전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실바의 마지막 대표팀 출전은 1936년 2월 27일의 독일전이었고 포르투갈은 1대3으로 패했다.
실바는 국가대표팀에서 총 19경기, 8득점의 기록을 남겼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득점력으로 명성을 얻은 포워드. 특히 공중볼 다툼에 뛰어났다. 실바는 2차 대전 이전 벤피카를 대표하는 선수였다.4. 수상
4.1. 클럽
-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1회: 1935-36(SL 벤피카)
- 캄페오나투 드 포르투갈 우승 3회: 1929-30, 1930-31, 1934-35(SL 벤피카)
- 리스본 지역 리그 우승 1회: 1932-33(SL 벤피카)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