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초 동로마의 반란자에 대한 내용은 플라비우스 비탈리아누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이름 |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비탈리아누스 (Publius Aelius Vitalianus) |
출생 | 미상 |
사망 | 238년 |
직위 | 근위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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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근위대장.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근위대장으로서 로마에서 황제의 정적들을 숙청하고 연락책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가 고르디아누스 1세가 파견한 암살자에게 살해되었다.2. 생애
당대 역사가 헤로디아누스에 따르면, 235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황제를 살해하고 황위에 오른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와 출신 성분이 비슷했고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그는 막시미누스의 근위대장이 된 뒤 황제가 게르만족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로마를 담당했다. 황제의 지시에 따라 수많은 인사를 반역죄로 처형하고, 원정에 쓰일 자금 마련을 위해 세금을 악착같이 뜯어냈기에, 원로원과 민중의 증오를 동시에 받았다.그러던 238년 초, 아프리카 속주 총독 고르디아누스 1세가 아들 고르디아누스 2세와 함께 황제를 자칭했다. 그들은 원로원에 자신들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서신을 보내는 한편, 비탈리아누스를 제거해야 로마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해 암살자를 보냈다. 비탈리아누스는 고르디아누스가 보낸 사람으로부터 교섭을 요청받고 서신에 찍힌 인장이 고르디아누스의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때, 암살자가 준비된 단검으로 무참히 찔러 죽였다.
고르디아누스 부자가 보낸 사람들과 고르디아누스 가문 사람들은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비탈리아누스가 야만족 황제에게 살해된 양 소문을 퍼뜨렸다. 막시미누스는 재위 기간 내내 제 부하라도 마음에 안들거나 수틀리면 총독이나 원로원 인사들 이름을 도용해 암살했기 때문에, 근위대와 비탈리아누스 유족들은 소문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이리하여 여론은 고르디아누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원로원은 막시미누스를 로마의 적으로 규정하고 두 황제를 추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