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시기인 1702년 10월 23일 스페인 갈리시아의 비고 만에서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가 프랑스-스페인 동맹 함대와 격돌한 해전.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가 대승을 거두고 이베리아 반도의 제해권을 장악한다.2. 배경
1702년 7월, 조지 루크 경이 지휘하는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는 멕시코의 베라크루즈에서 스페인으로 귀환하는 보물선 함대를 요격하고 지브롤터 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스페인의 주요 항구인 카디스를 공략하기 위해 출발했다. 8월 23일 카디스 인근 해안에 도착한 조지 루크경은 육군 14,000명을 지휘하는 오몽드 공작과 함께 작전을 개시했다. 그러나 한달에 걸친 카디스 전투는 스페인 병사들의 결연한 저항과 연합군의 무분별한 약탈에 분노한 주민들의 비협조 및 봉기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연합함대는 카디스 공략을 포기하고 9월 30일에 철수했다. 조지 루크 경은 쓸데없이 약탈을 일삼은 육군과 오몽드 공작을 비난하며 본국으로의 귀환길에 올랐다.그러던 중 물을 구하기 위해 라구스 항에 정박한 전열함 HMS 펨브로크에 소속된 보부아르라는 이름의 군종장교는 마침 그곳에 있던 프랑스 영사와 만났다. 채널 제도 출신이었던 보부아르는 완벽한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는 영사의 호감을 샀다. 그렇게 두 사람이 편히 대화를 나누던 중, 이 프랑스 영사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중요한 보물선 함대가 비밀리에 프랑스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대서양을 횡단해 스페인 북부의 비고 만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무심결에 발설하고 만 것이다.
보부아르는 서둘러 이 사실을 자신의 선장에게 보고했고, HMR 펨브로크는 본 함대에 다시 합류하기 위해 라구스 항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얼마 후 펨브로크 선장으로부터 스페인 보물선들이 프랑스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비고 만에 정박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조지 루크 경은 이번 참에 카디스의 불명예를 씻기로 결심하고 10월 22일 휘하 함대를 이끌고 비고 만으로 진격했다. 이리하여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첫번째 해전인 비고 만 해전의 막이 올랐다.
3. 양측의 전력
3.1. 프랑스-스페인 동맹군
- 프랑스 함대 지휘관: 상트 르노 백작 프랑수아
- 스페인 함대 지휘관: 마누엘 데 벨라스코
- 병력: 프랑스 전열함 15척, 스페인 겔리온 3척, 프리깃, 화선, 수송선 10여 척.
3.2. 영국-네덜란드 연합군
- 영국 함대 지휘관: 조지 루크 경
- 네덜란드 함대 지휘관: 필립 반 알몬드
- 병력: 전열함 25척, 프리깃 및 화선 10여 척.
4. 전투 경과
10월 22일 저녁 비고 만 인근에 도착한 잉글랜드-네덜란드 연합 함대는 그들을 향해 포격을 퍼붓는 비고 시 인근의 두 요새들을 무시하고 보물선들이 있는 레돈델라 항구로 진격했다. 당시 스페인 보물선 호위를 맡은 프랑스 함대 사령관 상트 르노 백작 프랑수아는 진작부터 적 함대가 쳐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방비를 나름대로 철저히 해뒀다. 그는 배의 마스트와 야드들을 쇠사슬로 함께 묶고 닻을 내린 상태로 비고 만의 입구를 틀어막는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게 했다. 또한 7척의 전열함이 그 뒤에 배치되어 입구로 진군하는 적을 향해 포격을 가하게 했고, 바리케이드의 양쪽 끝에 위치한 육지에 15문 또는 16문의 대포로 임시 포대를 설치했으며, 남쪽 끝의 랑데 요새에 대포 30문을 배치했다. 그리고 상트 르노 백작은 적이 바리케이드를 뚫고 만으로 진입할 경우를 대비해 화선을 후방에 배치했다.조지 루크 경은 적의 방어 상태를 살펴본 후 일반적인 전술로는 막대한 손실을 볼 것임을 직감했다. 이에 루크는 HMR 로얄 소버린 호에서 전쟁 평의회를 소집한 후 장교들에게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전 함대가 일제히 만으로 진입하지 않고 각 함선들이 별개의 임무를 수행할 것임을 밝혔다. 다음날인 8월 23일 아침, 대포 90문을 갖춘 버플러 호와 어소시에이션 호가 바리케이드의 양쪽 끝 육지에 설치된 포대를 향해 포격을 가해 적 포대를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이후 오몽드 공작이 이끄는 육군이 상륙하여 적의 미약한 저항을 물리치고 포대를 장악했다. 한편 토르베이 호는 바리케이드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그 과정에서 토르베히 호는 적의 거센 반격으로 많은 손상을 입었지만 끝내 바리케이드에 구멍을 뚫는데 성공했고, 뒤이어 루크 경이 이끄는 함선 30척이 토르베이 호가 뚫은 곳을 통과해 만으로 진입했다.
적선들이 바리케이드를 뚫고 비고 만으로 진입하자, 상트 르노 백작은 화선들을 투입시켰다. 그러나 영국 선원들은 오랫동안 바다 생활을 하면서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 화선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를 신속하게 진압했다. 뒤이어 네덜란드 함대가 비고 만으로 들어와 영국 함대와 합세해 프랑스 함대를 공격하자, 상트 르노 백작은 패배를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선장들에게 그들의 배에 불을 지르고 육지로 탈출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프랑스 해군 병사들은 배를 파괴한 후 달아났고, 영국-네덜란드 연합함대는 비고 만을 장악한 뒤 남겨진 배들을 확보했다. 이리하여 비고 만 해전은 영국-네덜란드 연합함대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