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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1-21 03:10:17

붉은청년근위대

붉은청년근위대(붉은青年近衛隊)1970년 김일성의 지시로 창설된 조선인민군 준군사조직이며 14~16세의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생군사조직이다.

1. 개요

붉은청년근위대는 반혁명 요소의 적발, 로농적위대 및 사회단체들의 사상적 선도 역할을 수행하는 인민군의 후비대이다. 학교 단위별로 중대 또는 대대급으로 조직이 편성되며, 총인원은 100여만 명이다.

북한은 이 조직에 대해 “인민군대입대년령이하의 고급중학교학생청년들로 조직된 반군사조직”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보아 북한에서는 이를 명목과 선전상 “조선인민군 준군사조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반군사조직(半軍事組織)”로 여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북한이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근거지를 지켜싸운 소년선봉대원들과 조국해방전쟁시기 학교와 고향마을을 지켜 용감히 싸운 소년빨찌산대원들처럼 원쑤들이 덤벼들면 아버지, 어머니들을 도와 손에 들었던 펜대를 무장으로 바꾸어 들고 고향과 마을을 지켜 싸우는것을 영예로운 임무로 하고 있으며 고급중학교 교육과정안에 따라 대렬훈련, 사격훈련, 전술훈련 등 비교적 높은 수준의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라고 선전매체에 선전하는 것을 보아 확인할 수 있다.[1]

북한은 “붉은청년근위대는 정규군이 신뢰할 수 있을만한 예비대로서 준비되어 있다.”며 그 성장모습을 평가하고 있 는데, 북한은 이들을 언제라도 대량 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시 키고 있다.

또한 북한은 붉은청년근위대를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청년의용군과 소년선봉대의 영광스런 계승자’라고 선전하고 있다.그리고 이들은 중국의 홍위병처럼 젊을 때부터 사상을 개조하여 ‘반혁명적 요소’를 제거시켜 주체사상의 첨병으로 매어두려고 하는 전위부대이자, 동시에 김정일의 친위대인 3대혁명소조의 예비대로서의 사명, 그리고 유사시에는 정규군의 하급간부(하 사관) 보충요원으로서의 사명을 띠고 있다.

2. 역사

군사동원이 본격적으로 강화된 과정을 살펴보면, “인민이 혁명적 군사사업의 주인이며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과 나라의 모든 잠재력을 조직 동원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군사관에 기초해 예비전력으로 준군사조직을 제도화하였고, 또는 1958년 중국인민지원군 철수를 계기로 1959년 1월에 ‘로동적위대’가 창설되고, 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4대 군사노선이 제기되면서 ‘교도대’가 조직되었으며, 1970년 9월 학생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가 창설되었다.[2]

1968년 1·21 사태 및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에 따른 내부의 긴장 상태를 이용해 창설되었다.당시 북한의 각 사회단체 에서는 “당과 김일성의 명령 지시 관철에 근위대·결사대가 되자”는 구호를 외치며 결의문을 채택해 김일성에게 전달했다. 이 결의문을 받은 김일성은 1969년 4월 각 단체의 결의문을 수락하는 형식으로 학생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의 편성을 지 시했는데, 이 지시에 따라 1970년 9월에 정식으로 창설되었다.

붉은청년근위대는 1970년대 로동적위대의 학생적위대로부터 분리되어 설립되었으며, 당중앙 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았고, 1988년 당중앙위원회 민방위부가 설치되면서 민방위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3. 대원 생활

붉은청년근위대는 학교단위별로 중대 또는 대대급으로 편성되며 총인원은 100만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매주 토요일 4시간씩 연간 90시간의 교내훈련과 중학교 5학년 재학시 여름방학기간을 이용하여 7일간의 붉은청년근위대 야영훈련소 입영훈련과 비상소집훈련 등을 받는다.지휘통제는 과거에는 당 군사부가 맡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당 민방위부가 담당하고 있었다. 전시가 되면 인민무력부의 지휘통제하에 들어가게 되며, 훈련 동원 시에는 청년동맹과 내각 산하의 교육위원회 예하로 편입된다. 이들은 연간 160시 간의 교내훈련과 재학 중 한 번 여름방학기간을 이용하여 7 일간의 야영훈련소 입영훈련과 비상소집훈련 등을 받는다. 병 영훈련 시에는 일부에게 개인화기 및 공용화기가 지급된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반혁명적 요소를 제거하여 최고사령 관을 결사옹위하는 친위대로서 전투력 향상의 선도적 역할 을 하며 유사시에는 후방지역 방어 및 군대 하급간부 보완을 위한 후비대·결사대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훈련은 교내 군 사교육, 비상소집훈련, 훈련소 입소훈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교내 군사훈련은 매주 토요일 4시간씩 실시하며 제식훈련, 각개전투 등 기본 군사훈련은 물론 장애물 극복, 수류탄 투척, 민방위 경보시 대응요령 등의 훈련을 받는다.

4. 같이보기


조선인민군

교도대

로농적위군



[1] 앞의 붉은철년근위대에 대한 선전문장과 비슷하게 매우 엄격하게 군사적 조직성이 있는 교육으로 청소년 학생들을 길러내는 곳은 대표적으로 중국을 꼬집을 수 있지만 중국의 청소년 군사훈련인 “军训(쥔쒼/군훈)”은체육 훈련과 대렬훈련,그리고 혁명가요 교습을 하는데 북한은 아예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무기사용법을 가르치고 유격전훈련을 시킨다.그리고 그 훈련 강도는 중국보다 몇배는 더 세다고 한다.[2] 1972년 12월 채택된 사회주의 헌법에서 국방위원회를 신설함으로써 전인민의 무장화를 위한 군사동원능력의 극대화를 도모하였으며, 1988년 4월에는 예비전력을 효율적으로 통할지휘하기 위해 당 민방위부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