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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48:05

붉은 달 푸른 해/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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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회차별 명대사
2.1. 1화2.2. 2화2.3. 3화2.4. 4화2.5. 5화2.6. 6화2.7. 7화2.8. 8화2.9. 9화2.10. 10화2.11. 11화2.12. 12화2.13. 13화2.14. 14화2.15. 15화2.16. 16화
3. 작중 인용된 시(詩)

1. 개요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모아놓은 문서이다.

2. 회차별 명대사

2.1. 1화

시완: (부른 배를 보며) 언제 나와요?
우경: 글쎄. 뭐, 그렇게 멀지는 않았어. (물컵을 건네며) 선생님 딸은, 요 아이를 햇살이라고 불러. 햇살처럼 밝고 예쁜 아기가 태어나라고. 워낙에 동생을 갖고 싶어 했거든.
시완: …꼭 좋은 거 아닌데.
우경: 아… 왜 그렇게 생각해? (다시 말이 없는 시완) 동생을 갖는 게, 왜 꼭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
시완: 죽었으니까. (그제야 고개를 들고 마주 보며) 내 동생은, 죽었으니까요.
진옥: 왜들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고. 감옥 가서 벌받고 나왔으먼, 그만 좀 조용히 살게 냅두지.
우경: 아니, 아직도 그 여자 얘기야?
진옥: 까놓고, 그 여자가 애를 죽인 것도 아니잖니. 남편이 한 짓이지. 남편 죄 숨긴 죄로 2년 옥살이 했으면 됐지, 뭘 더 하라고. 사람들도 너무 야박하다니까.
우경: 태웠잖아! 애를 불태웠다고, 그 여자.
진옥: (잠시 말을 잇지 못 하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뭐, 그거야 숨기려니 어쩔 수 없었겠지. 남편 감빵 가면, 난 뭐 먹고 사나, 막막했을 거다, 그 여자. 이미 죽은 애야, 다시 살릴 수 없는 거고. 밥줄이라도 지키자 싶었겠지.
우경: (듣다 못해) 엄마.
진옥: 인간이란 동물이 그래. 지 목숨줄 앞에선 부모고 자식이고 없는 거야.
우경: 엄마 냉소주의는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을 불태우는 부모는 없어. 그 여자는, 악마야.
민석: 자동차 전용도론데, 그 어린 애가 어떻게 그런 곳에 있을 수 있죠?
여경: 뭐, 사리 판단이 안 되는 앨 수도 있고, 또 모르죠. 대책 없이 개구진 남자애라 겁 없이 거기까지 간 걸 수도 있고요. 일단, 그 근처 CCTV 다 수거해서,
우경: 남자애라뇨? 방금, 남자애라고 하셨잖아요.
여경: 네. 사고 난 애요.
우경: 여자아이였어요. 내가 사고 낸 아이는, 여자아이였다고요!
교도관: 법이 못 한 걸, 누군가 나서서 해결 한 거란 소문이 돌던데요? 천하의 죽일 년이 죽었다, 그런 거죠. 형사님도 솔직히, 범인 잡을 맛 안 나죠?
지헌: 천하의 악질을 죽였어도 살인은 살인입니다. 그 살인자를 잡는 게 제 일이구요. 범인 잡을 맛, 납니다.
우경: 길바닥에서… 어린 애가 죽었어. 근데, 그 앨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부모조차도… 근데 그게 다행이라고? 우리… 우리 은서였어도, 우리 은서였어도? 어?
끔찍해… (울부짖으며) 난 이런 상황이 너무 너무 끔찍해!
민석: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나도 끔찍해! 그 날 이후 당신, 나나 은서 생각 조금이라도 해 본 적 있어? 은서가, 매일 밤 울면서 전화해.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어? 또, 뱃속의 아이는 어떻고? 혹시라도 애 잘못 되면 어떻게 하나, 내 피가 말라! 그래, 그 애 부모 나타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쯤에서 조용히 정리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당장 내 가정이 다 박살나게 생겼는데, 이미 죽은 아이까지 생각할 여유가 어딨어, 내가!
(견디기 힘들다는 듯 차에서 내려버리는 우경을 붙잡으며)
네 마음 알아. 얼마나 끔찍하고 지옥같을지 잘 알아. 나 봐. (어깨를 잡고 흔들며) 정신 차려! 네 잘못 아나. 네 잘못 아나…
우경: 아이를 죽였어… 내가, 내가 아이를 죽였어.
민석: 아니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우경아.
우경: 우리 은서 얼굴을 못 보겠어. 남의 새끼 죽인 손으로, 내 새끼 얼굴을 어떻게 만져. 남의 새끼 죽여놓고 내 새끼 얼굴 보고 어떻게 웃어! (다시 무너지는)
민석: 잘 들어. 그건 그냥 사고야. 죽은 아이도, 당신도, 둘이 같이 끔찍한 사고를 당한 거야. 어?

2.2. 2화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 문둥이
지헌: 형. 사람을 산채로 불태워 죽일 정도로 대담하고 사명감에 가득찬 사람이야. 그런데 고작 박지혜 하나 죽여놓고, "내 임무는 끝났다." 뭐가 좀 이상하지 않아? 자기 자식을 죽인 악마가, 세상에 박지혜 하나뿐이냐는 거지.
기태: 아니, 그럼. 연쇄살인이라도 저질렀어야 한다는 얘기야?
지헌: 이, 뭔가 거창한 사명감에 비해서 결말이 너무 허무하지 않아? 균형이 안 맞는다고. 미세한 불협화음. 위화감.
기태: 항상 지적하지만, 넌 생각이 너무 많아. 하나도 쓰잘데기 없이! (그에 삐친 지헌이 돌아서자) 범인 심리 백프로 파악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어. 기승전결, 균형 딱 떨어지지도 않고. 우리 경찰이야. 소설가 아니고.
우경: 친구 많이 다쳤다면서. 싸우다 그런 거야? (고개를 젓는 시완) 근데 왜 친구를 계단에서 밀었어? 실수로 그런 거야, 아니면 화가 나는 일이 있었던 거야?
시완: 궁금해서요.
우경: 음… 뭐가 궁금했을까?
시완: 계단에서 구르면, 죽는지 안 죽는지.
민석: 그렇게 하면, 죄책감이 덜해지니? 햇살이는, 햇살이는 죽었어. 울음소리 한 번, 숨소리 한 번 내보지도 못했어! 당신도 잘 알잖아. 이런다고 햇살이가 돌아오지 않아.
우경: (망연히) 당신은? 당신은 돌아올 거야? 은서 아빠, 당신은 돌아올 거지? 응. 은서 아빠, 돌아올 거지? 당신은 돌아올 거지? 돌아올 거잖아. 돌아올 거지? 돌아올 거잖아. 돌아올 거지? (이내 어깨를 잡고 흔들며) 돌아올 거잖아. 돌아올 거지? 당신은 돌아올 거지? 돌아올 거잖아! 대답해 봐! 돌아올 거잖아! 말해! (격분하며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며) 햇살이 죽었어! 그래, 햇살이 죽었어!

이 분노는,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요?

온몸이 갈갈이 찢기는 것처럼 이 끔찍한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요?

남편의 배신. 남편의 여자.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된,

훨씬 잔인하고 깊은, 나도 알 수 없는 내 속의 무언가.

근본을 알 수 없는 이 분노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동숙: 소라야. 느그 아빠, 죽었다. (미친 듯이 광소하는)

2.3. 3화

우경: 남편이 아니었어. 진짜 화가 난 이유는 남편이 아니라, 내가 살인자이기 때문이야. 죗값을 치르지 않은, 살인자.
수영: 문둥이는 한센병 환자를 낮춰 부르는 말이랍니다. 아이를 잡아 먹으면 문둥병이 낫는다는 속설 때문에, 아주 옛날에는, 문둥이가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도 있었답니다.
지헌: 아이, 무섭네, 그거.
수영: …아동 학대네요.
지헌: 뭐?
수영: 아이를 잡아먹는 거. 아동 학대라고요.
민석: 당신 요즘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우경: 본 그대로야. 그 아이 가족 찾고 있어.
민석: 다 지난 일이잖아. 다 끝난 일이라고.
우경: 당신 기준에는 그렇겠지. 햇살이 그렇게 됐을 때, 남의 새끼 죽인 죄로 내 새낄 잃었구나. 그렇게 죗값을 치렀구나. 그렇게 생각했어.
민석: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우경: 당신도 떠났잖아. 난 아직… 죗값을 치르지 않았던 거야. 자식 잃고, 남편 잃고, 더 이상 뭘 잃을까, 너무 너무 무섭고 화가 나서 미친년처럼 칼 쥐고 날뛰고 있을 때, 그 아이가 나타났어. 내가 할 일은 그 아이를 구하는 거야. 그게, 내가 속죄하는 길이야.
지헌: 난 고등학교 국어 시간 이후로 시를 접해본 적이 없거든? 근데 최근 6개월 사이에 한 번은 죽은 사람 집에서, 한 번은 죽은 사람 옆에서 시를 발견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냐?
수영: 죽음과 시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헌: 그냥… 우연 치고는 이상하다는 거지.
수영: 서정줍니다. 우연 치고는 두 시 모두… 서정주 십니다.

2.4. 4화

진옥: 김 서방, 다른 여자 생겼구나? 내 그럴 줄 알았다. 네가 김 서방을 좀 힘들게 했니? 여편네가 정신줄 놓고 있는데 도망 안 갈 남자가 어딨어? 김 서방 정도면 젊고 예쁜 애들이 줄을 설 텐데.
우경: 그래서… 김 서방이 잘했다는 거야?
진옥: 누가 잘했대? 김 서방 마음도 이해 간다는 거지. 진작에 네가 잘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니니.
우경: 가정 파탄 낸 사람은 은서 아빠야. 잘못한 사람은 남편이라고! 엄마는 왜 항상 나만 비난해? 왜 항상 내 잘못인데! 아빠 돌아가신 것도 내 탓이고, 세경이 이렇게 된 것도 내 탓이고! 남편이 처자식 버리고 떠난 것도 내 탓이고!
진옥: (뺨을 때리며) 어디서 박박 소리를 질러? 아픈 동생 앞에서?
우경: (잠시 충격에 빠져 있다가 이내 넋이 나간 듯) 잘못했어. 어, 엄마… 잘못했어. 잘못했어… 엄마, 잘못했어요… (싹싹 비는) 엄마. 잘못했어… 미안해. 미안해, 엄마…
동숙: 남편 시채… 안 찾아가면 안 돼요? 시체를 찾아가면, 그, 장례를 치러야 되잖아요. 매장을 하든, 화장을 하든, 돈이 억수로 많이 들잖아요! 근데, 우리 진짜, 돈이 한개도 없거든요! 진짜요!

수영: 무연고 처리밖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지헌: 없어. 당장 처리해. 쓸데 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의 교훈이나 잘 새겨 놔. 어찌 살든 간에 장례비가 아까운 인간은 되지 말자.
우경: 죽음과 시 말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 거 알아요? 아이예요. 학대나, 방임된 아이들. 시가 있는 죽음에는, 항상 아이가 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를 원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냐는 우경의 질문에)
성환: 내가, 이런 말까지 해야 되나? 난, 진짜로 애들이 싫어! 내가, 징그럽게 싫어해요, 진짜. 성가셔! 시끄러! 지들밖에 몰라. 괴물같아, 진짜! 너무 싫어!
수영: 저는 차우경 씨가 별로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불안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마음에 걸립니다. "시가 있는 죽음에는 항상 아이가 있다." 지금껏 우리가 해결했다고 생각한 사건이, 정말로 해결된 것이 맞는지. 그 말을 듣고 자꾸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2.5. 5화

(모래를 가지고 노는 하나를 지켜보는 두 사람)
우경: 창고에서 시체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지헌: 그게… 세팅된 무대 같았죠.
우경: 죄를 심판하는. 아이의 언어 발달이 늦은 건, 엄마가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예요. 그 여자…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았어요. 대신, 저 어린 걸 길바닥을 헤메며 쓰레기통을 뒤지게 만들었어요.
지헌: 잠깐만요. 그러니까, 애를 돌보지 않아서, 그 벌로 살해됐다는 거예요, 지금?
우경: 선한 의도에, 악한 행위. 아이는 엄마가 죽은 후에, 오히려 환경이 더 좋아졌어요. 그게 범인의 의도였다면, 선한 의도죠. 살인은, 악한 행위고요.
지헌: (조용히 곱씹는) 선한 의도, 악한 행위…
지헌: 저 패턴 대로라면, (고성환의 사진을 집어들며) 이 인간은 살해 할 놈이 아니라 살해 당할 놈이야.
수영: 저 사건들이 모두 연관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헌: 차우경 씨 말이, 창고 안의 시체 모습이 마치 죄를 심판하는 거 같다 그랬어. 그 시각으로 이 사건들을 보면…
수영: (단호) 아닙니다. 박지혜를 죽인 용의자는 검거됐고, 종결된 사건입니다.
지헌: 만약에 공범이 있었다면? 폐쇄적인 성격의 박지혜를 그 시간 그 장소로 어떻게 불러냈을까. 니 입으로 물었었잖아 그런데 우린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어.
수영: 안석원 사건 역시, 안석원 본인이 직접 번개탄을 구입했고, 부검에서도 자살로 결정…
지헌: 추정이야. 추정! 자살로 추정! 도박 중독자가 현금을 옆에 두고 자살한다? 이거 아주 드문 경우야. 어쩌면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
수영: 앞의 두 사건은 해결됐고, 우리는 이혜선을 죽인 범인만 잡으면 됩니다. 불확실한 근거에 기반한 추정일 뿐입니다. 팀장님 보시면 화내십니다. (그리고 사진들을 떼어버리는)
하나: (잠시 아빠 캐릭터를 물끄러미 보더니) 쉬잇. 말 하기만 해 봐. 모가지를 확… 비틀어 죽여버린다.
지헌: 몇 년 전, 지방에서 근무할 때 일이에요. 이혼하고 열두 살 난 아들과 단둘이 살던 남자 집에 불이 나서 남자가 사망했어요. 화재 당시에 아들은 집에 없었고요. 아들은 다음날 오전에 근처 PC방에서 발견됐는데, 상태가 끔찍했죠. 몸 전체에 오랫동안 지속된 학대의 흔적이 있었거든요. 세계 지도를 방불케 할 만큼. 화재는 명백한 방화였어요. 화재 발생 세 시간 전, 남자의 아들은 근처 주유소에서 등유를 구입했고, SNS에선 살인 예고의 글을 올린 걸 확인했죠. 그런데, 촉법소년에 해당되는 나이라 우린 그걸 소년 A 사건이라 명명했죠.
우경: 아이가… 아빠를 살해한 건가요?
지헌: 모든 정황이 그걸 가리키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아이가 쇼크 상태라 진술할 상황이 아니었죠. 그때… 이은호가 나타난 겁니다. 화재 발생 당시, 소년이 자신의 집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사건과 관계 없는 동네 형이, 이유없는 거짓말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죠. 무엇보다, 열두 살 짜리 어린애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고요. 아이는 그렇게 풀려났어요.
우경: 이은호가, 소년을 위해서 거짓 알리바이를 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지헌: 아니요. 전 이은호가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그 시간 이은호의 집에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은호가 같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꼭 확인해야겠어요.
(자신의 물음에 하나가 흡입기로 시범을 보이자)
우경: 기침을 멈추게 하는 거구나. 신기하다. 우리 하나는, 이런 거 어떻게 알게 됐어?
하나: 엄마.
우경: 엄마가, 기침을 많이 했구나.
지헌: 하나야. 이거 없으면, 엄마 어떻게 돼?
하나: 없으면…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하는)
우경: 하나야, 그만해. 괜찮아. 괜찮아.
지헌: (다급) 그 사람 봤어? 이거 숨긴 사람. 엄마 아프게 한 사람 봤냐고.
우경: 그만 하라고요.
하나: 봤어요. (그리고 지헌을 가리키는)
우경: 저렇게 큰 아저씨였구나.
하나: (흡입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사정없이 짓밟다가, 뒤이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우경: …그러고 잠들었던 거야? (끄덕이는 하나, 가만히 안아주는 우경)
지헌: 하나야. 그 아저씨 얼굴, 기억나? 어떻게 생겼어? 그 아저씨.
하나: 착한 얼굴. 착한 사람 얼굴.

2.6. 6화

은호: 창고 여자는, 어떻게 죽었죠?
지헌: (수갑을 풀어주며) 심한 천식 환자였어.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죽일 수 있지.
은호: 간단히 죽었나요?
지헌: 궁금하냐?
은호: (적대적인 눈으로 자신을 보는 데) 한 번 낙인 찍으면 물러서지 않는 거, 여전하시네요.
지헌: 그러게 애초에 찍히질 말았어야지.
은호: 새벽에 차를 끌고 나갔다고 납치범 아니에요. 석유통 들고 있다고 방화범 아닌 것처럼.
지헌: 두 번 째야. 비슷한 건으로 두 번이나 찍히는 게, 이게 과연 우연일까?
은호: …네.
(보험금을 타낼 방법이 없냐는 동숙의 물음에)
붉은 울음: 진심으로 원한 게 뭐였죠? 남편의 죽음? 돈? 언제나 욕심이 문제죠. 지나치면 죽어요. 당신도.
교사: 아빠가 애를 그냥 막무가내로 놓고 가 버렸어요. 원장님은 휴가 중이시지, 저 혼자 어쩔 줄 모르겠는 거예요. 마침 다음 날 예림 천사원에 보내야 할 애들이 있어서, 그 아이도 보내는 김에 같이… 그냥, 단지, 딱 하룻밤만 머물렀을 뿐이예요. 우리가 접수한 애도 아니고, 천사원에서 잘 해결할 줄 알았죠. 그래도, 떠나기 전에 다같이 사진도 찍고, 차 타는 것 까지 직접 확인 했어요. 정말이에요.
우경: 그 아이들 모두… 예림 천사원에 잘 도착하는지 확인 했어요? (대답하지 못하는) 선생님은, 아이 돌보는 일 하지 마세요.
지헌: 안석원이 타살이라는 증거가 발견됐습니다. 범인이 번개탄을 피워놓고 사라지는 장면이 주변 차량 블랙박스에 찍혔는데, 그게 뒤늦게 입수된 거죠.
우경: 창고에서 살해된 하나 엄마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지헌: 동일범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수사 방향은 아니지만. 전에 우경 씨가 말했잖아요, 죄를 심판하는 거라고. 아이들을 괴롭힌 죄, 그게 살인의 이유가 되겠죠.
우경: (소녀를 마주 보며) 난 네가… 사고로 죽은 아이 동생인 줄 알았어. 아직도 네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왜 나타난지는 알 것 같애. 아이들을 구하고 싶은 거지? 아픈 아이들… 난 네가 누군지, 여전히 궁금해… 넌, 누구니?
수영: 안석원 처에 대해 보고하지 않은 건 팀장님 명령이었고, 저로선 그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헌: 그러니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 넌 안석원의 유서가 주차 메모를 찢어낸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게 아주 중요한 타살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근데, 윗사람 눈치 보여서 나한테 보고를 안 했다? 그건 명령을 따르고 안 따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로서의 양심의 문제야! 알어? 너 안 부끄럽냐?
수영: (고개를 숙이며) 부끄럽습니다.
우경: 석우는 어떤 아이였나요?
미선: 혼자 한글을 깨우칠 만큼 똑똑한 애였어요. 엄마 아빠는 똘빡에 쓰레긴데, 어째 그런 애가 나왔는지! 완전 신기했다니까요? 그런 애가 죽다니, 참 불쌍하죠.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그래서, 얼마나 줄 거예요? 설마 애 죽여놓고 공짜로 쌩까려는 건 아니죠? 내가 싸게 해줄 테니까, 그냥 지금 빨리 끝내죠? 천만원. 어때요? (계속되는 빚 독촉 전화에 다급해지며) 좋아. 기분이다. 사실 나, 당장 서울로 끌려가서 뒤지기 일보직전이거든요. 그놈의 카드빚 때문에. 그거 해결해주는 걸로 퉁치죠. 당장 오백만 넣어주면 돼요. (계좌 번호를 남기는)
우경: 애 엄마잖아요. 아이가 가엽지 않아요?
미선: (혐오스럽다는 듯) 코 찔찔, 눈물 찔찔! 싫다고.
우경: 아무리 어려도, 애 엄마잖아요. 당신 자식이잖아. 니 자식이잖아!
미선: 아줌마.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 있어? 자식 잃은 건 나야. 내 자식 죽인 건 아줌마고.
지헌: 그 눈 먼 돈이라는 게, 마누라를 두들겨 패서 받은 보험금이었다?
수영: 두 달 전에 딸 앞으로도 보험을 들었는데, 보험 가입 2주 만에 아이 손가락이 골절됐습니다. 김동숙 본인 뿐 아니라, 아이 목숨까지 위협받은 겁니다. 남편을 살해할 충분한 동기가 됩니다.
지헌: 설마 김동숙이 안석원도 살해하고, 이혜선도 죽였을까?
수영: 동일범으로 보기엔, 살해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보통 연쇄살인의 경우,
지헌: 만약에 살인이 목적이 아니라 처벌이 목적이었다면? 보통 연쇄살인과는 당연히 다르지. 비슷한 패턴들, 각각의 용의자. 공통된 뭔가가 있어.
수영: 아무도 출입하지 않은 창고에서 이혜선의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차우경입니다. 차우경은 안석원의 딸 상담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박지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증언을 한 사람도, 차우경입니다. 이 사건들 저변에 있는 공통점은, 차우경인 거 같습니다.
지헌: 누가 시켰어요? 얘기 안 할 거예요? 이렇게 나오면 아줌마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어요!
동숙: 그 사람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내 사연도 다 들어주고… 위로도 많이 해줬어요. 정말 고마운 사람이에요.
지헌: 근데 그 고마운 사람 때문에, 아줌마가 살인 누명을 쓸 순 없잖아요.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다시 말을 않자) 좋아. 관둬요. 체포영장 신청해.
동숙: (다급) 붉은 울음. 그 사람이 시켰어요. 다 그 사람이 시킨 거예요.
우경: 알아…! 난, 그 애를 알아.

2.7. 7화

동숙: 사는 게 지옥 같아서… 죽을 것 같았는데, 누가 거길 소개해줬어요. 내만 그리 고통스러운 게 아이였더라고요. 세상에, 진짜 거지 발싸개같은 남편들이 거기 다 모여있더라고요. 나도 하소연도 하고, 위로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그 쪽지를 받았어요.

붉은 울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 겁니다.

밤새 두들겨 맞고, 밥 때만 되면 벌떡 일어나가 남편 밥상 차려줬어요. 그 사람이 그러데요. 내가 그리 하니까 맨날, 맞고 사는 거라고… 자꾸 잊어뿌고, 자꾸 넘어가고, 자꾸… 용서하니까. 내가 죽을라고 했어요. 근데… 무섭더라고요.

붉은 울음: 어리석군요. 당신의 개죽음 말고, 모두가 행복한 죽음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시길. 겁먹지 말아요. 생각보다 죽음은… 쉬우니까.
(그림을 완성하고 채색까지 해주는 은호)
우경: 고마워요. 이렇게까지.
은호: 그 기분 알아요. 분명히 알고는 있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거. 저도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 적이 있거든요. 커다란 책상이 있는 방이 나오는 꿈이었는데, 분명히 아는 장소다 싶으면서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우경: 그래서, 기억은 났어요?
은호: (멈칫) 네. 아주… 기억하기 싫은 거였어요. 그때 알았어요. 기억에서 간절히 지우고 싶은 건, 정말로 지워지기도 한다는 거.
기태: …그러니까 니들 말은, 어떤 미친 놈이 아동 학대범민 골라서 죽인다는 거잖아.
전원: 네.
기태: 세상에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냐?
찬욱: 뭐, 아동 학대범들이 공포에 떨겠죠.
기태: 세상은 범인 편일까, 피해자 편일까?
찬욱: 범인… 편?
기태: 놈을 일지매나 홍길동 취급할 거고, 우리가 놈을 잡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는 욕만 쳐먹을 거고, 모방 범죄 여기저기서 들끓을 거고,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거야.
지헌: 아니, 그래서 지금 이걸 그냥 냅두라고, 이거를?
기태: 잡아야지. 조용히.
지헌: 넵. 보안 철저히,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성환: 그러먼 내가, 애를 낳아서 출생신고도 안 하고, 감금을 하고, 학대를 하고, 막, 막, 그러고. 그랬다는 건가? 아니, 설마 나를 아동 학대범, 뭐 이렇게 보는 건,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그지?
지헌: 가능성 충분해 보이는데요.
성환: 아, 이러면 되겠다. 나랑 하나랑, 뭐 자기랑 나머지 경찰들이랑 형사들이랑 다, 이렇게 만나면 되겠네. 그지? 삼자 대면을 하면 되겠네. 그지? 날짜 잡읍시다. 아, 이거 억울해서 안 되겠어, 난.
지헌: 동생 분은 어쩌다가…
우경: 교통사고요. 운전하다가, 빗길에 미끄러졌어요. 다른 외상은 없는데, 2년 동안 누워만 있어요. 운이 아주… 나쁜 거죠.
지헌: 많이 힘드시겠네요.
우경: 아니요. 제가 왜요?
지헌: 당연히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힘든 거 아닌가?
우경: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속에 꽁꽁 갇혀서 겨우 숨만 들이쉬고 있는 본인만 할까요? 난 힘들지 않아요. 전혀 힘들지 않아요.
지헌: 난 내 동생이 저러고 있으면 힘들 것 같은데. 칼에 찔려도 아프고, 바늘에 찔려도 아파요. 그런데 혼자서 뭘 그렇게 꽁꽁 숨기고 있는 거죠?
우경: 난…
지헌: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상담해요? "저기 저 아이는 칼에 찔렸으니까, 바늘에 찔린 넌 별 거 아니라고. 절대 아프지 않다고." 그렇게 해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문득 그 말이 생각나네요.
(센터를 나서며)
지헌: 동생이 저러고 있는데 하나도 안 힘들다는 거야. 슬프면 슬프다, 화나면 화난다, 힘들면 힘들다. 그냥 표현하면 될걸, 무슨 심리로 저렇게 꽁꽁 싸매는지, 원.
수영: 저는 차우경 씨가 꽁꽁 숨기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몸을 다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선배님이 이렇게 신경 쓰시는 것도, 바로 그 비명 소리를 들어서, 아닙니까? 아무나 온몸을 다해 비명을 지르진 않습니다. 그래서 전 차우경이 불편합니다.
지헌: 아무나가 아니면, 누가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는데?
수영: 많이 아프거나, 많이 망가지거나. 아직 어린아이거나.
우경: 그 사람… 붉은 울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일까요?
지헌: 그건 차우경 씨가 더 잘 알겠죠. 붉은 울음한테 날 아냐고 먼저 보낸 건 차우경 씨니까요. 보통은, 살인자한테 그런 걸 물을 생각도 못하죠. 왜 보냈어요, 메세지?
우경: 내 머릿속을 다 읽고 있었으니까요. 나도 소라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와 자식한테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그걸로 보험료까지 타낸 인간이에요. 수십 번 생각했어요. 수십 번. 나라면… 내 손으로… 내 손으로 죽여버렸을 거예요.
지헌: 김동숙한테 이 말 했어요?
우경: 난 카운슬러예요.
지헌: 카운슬러라서 못한 얘기를, 붉은 울음이 한 거네요. 그리고, 그걸 행동으로 옮겼고요.

2.8. 8화

우경: 아이들 눈 앞의 어른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큰 세상이에요. 특히 부모는, 온 세상이자… 우주예요. 그 우주가 달려들어 아이들한테 공격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그것보다 잔인한 게 어딨어요? 입장만을 말하는 거라면, 나도 그들[1]과 같은 생각이에요. 그렇다고, 모두가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죠.
수영: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시나 봅니다.
은호: 얘네들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속의 지저분한 것들이 다 쓸려가는 기분이 들거든요. 창고에서 죽은 여자요, 그 일 없었으면 하나가 이렇게 웃지 못했겠죠? (덧붙이며) 물론, 살인은 나쁜 거지만요.
우경: 그 사람 범죄, 그대로 묻히겠죠. 아무런 물증이 없으니. 이럴 땐, 기분이 어때요? 범죄 사실이 확실한데도 잡을 수 없을 때.
지헌: 쫓아가서 몽둥이로 한 대 후려갈겨야죠. 멱살 잡은 채로 태평양 바다에 빠트리거나. 현실적으로 놈의 죄를 싹싹 긁어모을 거예요. 죄도 티끌 모아 태산이거든요. 모아서, 감빵에 집어 쳐넣을 겁니다.
우경: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네요? 낙관적이세요.
지헌: 진취적이라고 하시죠.
우경: 순진한 거예요. 오줌을 지리면서도, 하나는 끝까지 아빠를 모른 척 했어요. 하나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현실적으로 형사님은, 티끌 하나도 밝힐 수 없을 거예요.
지헌: 절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우경: 화내고 큰소리 치면 뭐해요. 결국 형사님 손으로, 그 괴물 앞에 아이를 데려다 줬는데. 그 사람 마음, 알 것 같지 않아요?
지헌: 그 사람이라뇨?
우경: 붉은 울음. 지금 내 마음이, 그래요.
미선: 슬픔의 똥, 똥의 밥. 누가 선물을 보냈는데 거기 적혀있었어요. 트럭이 나 밀었을 때, 꼭 벌받는 거 같았어요. 너도 니 자식처럼 똑같이 당해봐라. 니 자식이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지 똑같이 느껴봐라. (흐느끼며) 그래도 난 살았어… 내 새낀 죽었는데… 난 똥만도 못한 인간인가 봐요.
슬픔의 똥, 똥의 밥이다 - <내가 구원하지 못할 너>
찬욱: 시를 사랑하는 살인자라니. 왠지 더 소름끼친다.
우경: 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증오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혐오하는 대상을 살해하는 순간에,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것을 떠올릴 것 같진 않아서요.
성환: (울분) 아니, 왜? 왜 안 된다는 거야? 왜? 왜! 왜?! 형사님. 내 얘기 잘 들어. 하나, 내 새끼야. 내 핏줄이라고. 몰라? 하늘이 내려주신 천륜을, 이 젊은 새끼가 찢어놓겠다고? 끊어놓겠다고? 웃기시네. 끊어.

2.9. 9화

우경: 나 처음 봤을 때 어땠어?
진옥: 또 옛날 얘기니? 그만 하자.
우경: 난 엄마가 무지 좋았어. 난 엄마가 너무 좋고, 엄마한테 예쁨 받으려고, 뭐든 잘하려고 애쓴 기억이 나. 엄마 눈엔, 내가 어떤 애로 보였어?
진옥: 또래 치고 조숙하고, 어린애 치고 우울해 보였어. 어린 게 엄마 잃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렇구나, 했어. 처음부터 날 따라줘서 다행이다 싶었고.
우경: 그랬구나. (가족사진들을 둘러보며) 우리 가족들은 참 단촐해. 친척들도 하나 없고. 가족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잖아. 기억을 공유할 사람들이 없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야.
진옥: 30년 가까이 같이 산 애미 앞에서, 잘 하는 소리다.
우경: 갑자기 세경이 생각이 나서 그래. 요즘 들어, 부쩍 세경이 빈 자리가 느껴져서…
하정: (머리채를 쥐어잡으며) 폰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났어?!
빛나: 엄마가 좋아하는 과외쌤이 사줬어!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왜? 질투 나? (머리를 쥐고 있던 손을 놓는) 쌤이 엄마 편인 줄 알았나보지? 완전 착각이야! 쌤 나 완전 좋아하거든?
하정: (덤덤) 좋겠다. 이쁨 받아서. 너 공부해야 하는데. 대학 가야 하는데. 난 오로지 그 생각 뿐이야. 그깟 과외 선생이 무슨 상관이래니? 사랑하는 내 딸 앞에서? (다시 돌변해서 어깨를 쥐고 흔드는) 근데 왜 자꾸 엄마 말을 안 들어? 어?! 속상해 죽겠어, 정말! (사랑의 매를 집어드는) 벗어.
빛나: 선생님…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숨이 넘어갈 듯 오열하며) 선생님. 나 좀 살려주세요…
우경: 언제부터였어?
빛나: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공부 박스를 설치했어요. 중딩 땐 평일 세 시간, 주말 다섯 시간. 고딩 되고 나선 평일 다섯 시간, 주말 여덟 시간.
우경: 자물쇠로 채워진 채, 공부했다고?
빛나: 갑자기 아프거나, 화장실이 급할 땐 비상벨을 눌러요. 그 외엔 나갈 수 없어요. 성적이 떨어지거나, 엄마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면 사랑의 타작이 시작돼요.
우경: 왜 그때 선생님한테 얘기 안 했어?
빛나: 엄마니까요. 엄마가 하는 일은 다 옳고, 다 날 사랑해서 하는 거니까요. 회초리로 맞는 것도, 상처가 나는 것도, 그저 순간일 뿐, 대학만 가면 다 끝날 일이니까요. 근데… 그 전에 내가 죽을 거 같아요.
우경: 해찬이 기억하세요? 우리 둘이, 아주 분노했었죠. 이 아이 아빠는, 짐승이라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하정: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우경: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빛나의 사진을 보여주며) 오늘 찍은, 빛나 사진이에요. 이 두 아이, 구분이 되세요?
하정: (말을 잇지 못하다) 아니야. 아니야…!
우경: 당신이 짐승이라고 했던 해찬이 아빠가 한 짓이랑, 도대체 뭐가 다르죠?
하정: 난 달라. 당연히 다르지! 난 우리 빛나가 잘 돼라고 한 거잖아. 조금만 참으면, 미래가 달라지는데…! 애가 자꾸 딴 짓을 하니까… 은서 엄마도 애 키우니까 잘 알잖아요. 난 다 우리 애 미래를 위해서 그런 거라구요!
우경: 해찬이 아빠도 똑같은 말을 했었어요.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었다고.
빛나 어머니. 당신은, 아이를 학대한 겁니다.
우경: (쿠션 밑에 박힌 동화책을 빼내며) 미안해. 은서가 읽고 거기다 쳐박아 놨나 보다.
빛나: 호랑이가 엄마로 변장하고 애들 잡아먹는 얘기죠?
우경: 어… 잡아먹진 않아. 애들이 도망갔다가 해와 달이 되지.
빛나: 난 어렸을 때, 정반대로 생각했어요. 엄마가 호랑이로 변장한 거라고.
우경: 왜 그렇게 생각했어?
빛나: 우리 엄마요. 원랜 좋은 엄만데, 가끔 호랑이처럼 돌변했거든요. 그때마다 상상했어요. 지금 엄만 호랑이 탈을 쓴 거야. 내가 좋은 아이가 되면, 금세 원래 엄마로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더 더 착하고, 더 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돼야지. 그런데, 다 소용없는 거 같아요…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하정: 선생님 처음 봤을 때가 생각 나네요. 엄마들 모아놓고, 뜬금없이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이상한 울림이 있었죠. 그래서 선생님이 싫었나봐요. 날 자꾸 가짜로 느끼게 했으니까.
붉은 울음: 모두들 분노하고 있어요.

배신감은 더 큰 분노를 일으키죠.

심판 받기를 원하나요?

스스로 심판할 건가요?

(난간 아래로 몸을 던지는 하정)

결단을 내리시죠. 즉시.

2.10. 10화

빛나: 난 엄마가 끝나길 바란 게 아니었어요. (둘이 찍은 사진을 보며) 엄마, 보고싶어…
우경: 싹싹 죄를 긁어모아서 감빵에 쳐넣겠다면서요. 애 손 잡고 데려다 준 것도 모자라서, 이젠 아예 그 인간하고 같이 살게 할라고요?
지헌: 예. 알아요. 제가 무능하고 못난 거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자책하고 화만 내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저희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죠. 예?
우경: 애 아빠가 애 데리고 가겠다는 걸 무슨 수로 막아요? 형사님. 문제는요, 고성환 같은 인간이 하늘 아래 활개치면서 숨을 쉬고 있다는 거예요. 그거 해결하지 않은 이상, 절대 대책 같은 건 없어요.
성환: 덕분에 우리 하나, 이 아빠 품에 딱 안기게 생겼는데, 지금? (웃음) 그나저나, 강 형사님한테 이 깊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되나, 난 진짜 아이디어가 없네? 어떻게 갚아야 좋지? 난 진짜, 너무 고맙거든! 진짜. 고마워서 죽겠어. 평생 모르고 살던 자식을, 내 눈 앞에 덥석 찾아다 줬어. 자기가. 그리고, 핏줄이 아리까리하니까, 그것도 확 증명을 해주는 거야. 이게, 진짜, 너무…! 난 진짜, 너무 고마워. 은인이야, 은인. 평생 은인이야! 그러니까, 강 형사님은, 난 진짜 오래 사셔야 될 것 같애. 진짜, 만수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진짜. 내가 지금 바빠서 전화 끊어. 행복하세요!
우경: 고성환이, 왜 갑자기 하나를 데려가겠다고 나선 거 같아요?
지헌: 부성애 코스프레를 하려는 거겠죠.
우경: 코스프레 하기엔, 양육의 책임이 너무 크지 않나요? 가뜩이나 아이가 싫은 사람인데.
지헌: 그럼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우경: 하나의 입을 막기 위해서예요. 고성환이 하나한테 몹쓸 짓을 했을 거라고 했죠? 그냥 몹쓸 짓이 아닌 거 같아요.
지헌: 그럼 뭔가 더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얘기예요?
우경: (끄덕이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어요.
기태: 조건 안 된다는 거, 겨우 겨우 우겨서 받아낸 거야! 범죄 피해자다, 방임 아동이다, 보호가 필요하다, 열심히 떠들었어, 아주 힘들게!
지헌: 형이 힘써주신 거 잘 알아요. 내가 경찰이랍시고 애 하나 보호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그렇지.
기태: 경찰이라고 세상의 나쁜 놈들 다 잡을 수 있냐? 우린 히어로가 아니고, 그냥 안전장치일 뿐이야. 그나마 범죄가 덜 일어나게, 꾹꾹 누르고 버티는 안전장치. 경찰이라는 직업에 너무 큰 의미 부여하지 말란 말이야.
지헌: 그래서, 만족해요?
기태: 만족이 어딨냐? 적응하는 거지. 그냥 적응하면서 사는 거지.

2.11. 11화

법의관: 오래 전에 사망했다, 이상은 특정할 수가 없어. 두개골 함몰, 갈비뼈 골절이 보이지만, 그게 사망 원인이다라고 단언할 수도 없고.
지헌: 함몰이면, 아이한테 외부 충격이 있었던 거네?
법의관: 부딪혔거나, 떨어졌거나, 아니면… 맞았거나. 아마, 애를 내뎐졌겠지? 유전자 검사로는 이 둘, 부자지간이야.
지헌: 저 악마 같은 새끼.
법의관: 너무 그러지 마. 저 양반, 사망 직전까지 얼마나 파란이 많았는데. 살아있는 상태에서 무려 일곱 개의 치아를 뽑아냈어. 생으로. 거의 고문이라고 봐야지. 사망에 이른 치명상은, 두부 손상. 흉기로 머리를 내리쳤고, 두개골이 함몰하면서 뇌를 건드려, 그 뇌실질의 직접 손상으로 즉사했을 가능성이 높아. 게다가, 이 범인 아직도 분이 덜 풀렸어. 살해하고 난 뒤에, 이렇게 뒤집어서 열심히 색칠 공부도 하고 글자까지 새긴 거야. "개처럼 살아가니, 사람 살려라." 이것도 시냐?
지헌: 송욱이라는 시인이래. 어디서 이런 건 잘도 주워와.
법의관: 아무튼, 이 사람이 얼마나 나쁜 놈인진 모르겠지만, 죽인 놈도 보통 미친 놈은 아닌 거 같다.
하나: 응애. 응애. 시끄러워! 응애. 응애. 뚝. 아가 안 울어요.

성환: (아기의 시체를 땅에 묻으며) 말하기만 해 봐. 모가지를 확 비틀어서 죽여버린다. 알았어? 말 하라고. 말하면 모가지를 확 바틀어서 죽여버린다고! 확 죽여버린다고. 알아들어?

우경: 그래서 우리 하나, 말을 안 한 거구나. 많이 무서웠겠다.
하나: (명랑하게) 아니요. 괜찮아요. (그림을 들며 웃어보이는) 예쁘죠? 잘했죠?
수영: (참다 못해) 무서우면 그냥 무섭다고 해. 이제 아빠 없다고 했잖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왜 웃어? 지금 왜 웃는 거야? 진짜 마음은 울고 싶잖아. 무서워서 엉엉 울고 싶잖아! 아빠가 울지 못하게 해서, 그래서 못 우는 거야? 엉엉 울면 너도 아가처럼 될 거 같아서?! 니네 아빠 없어. 네가 아무리 악을 박박 쓰고 울어도! 니네 아빠 이제 너한테 아무 짓도 못해.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울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소리쳐… 애면 애 답게 네 감정 숨기지 말라고! (그제야 울음을 터트리는 하나)
우경: (가만히 안아주며) 실컷 울어.
수영: 병원에서 데리고 오는 내내, 아이가 너무 밝아서 불편했어요. 일곱살 아이가 죽음을 안다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고요. 저 땜에 하나, 괜찮을까요?
우경: 형사님 덕분에 하나는, 오늘 굉장한 걸 배웠을 거예요. 울어도 괜찮다는 거. 울면, 누군가 다가와 안아준다는 거. 잘하셨어요. 저도 못한 걸… 실수한 거 아니에요.
지헌: 하나 아빠 개농장에서 어린 아이 유골이 나왔거든.
은호: 끔찍한 사람이네요.
지헌: 너 처음 안 것처럼 말한다? 차우경 씨 말이, 하나가 땅속에 참새를 묻는 걸 너랑 같이 봤다던데. 뭐 보고 느낀 점 없었냐? 너 애들이랑 잘 통하잖아. 애들 언어도 잘 이해하고.
은호: (헛웃음) 형사님은, 저에 대해 환상이 있으신가 봐요. 아니, 제가 신이 아닌 이상, 그 장면만 보고 뭘 알 수 있었겠어요? 하나는 저보다 형사님을 더 좋아하던데. 형사님이야말로, 하나한테 뭐 들은 거 없었나요? 아이들 언어로.
지헌: 너 어린 애들 좋아하잖아. 난 너의 그 점이 항상 의심스러웠거든. 지금 이 사건은 너의 그 점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은호: 애들을 좋아해서 살인을 한다고요. 형사님, 그게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막무가내로 사람 의심하는 거. 그만 하시죠.
지헌: 의심하는 게 직업이라, 그만 둘 수가 없다, 야. 이거 직업 관두면, 그때 그만 할게.
수영: 붉은 울음이 박지혜한테 보냈던 편지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 편지 속 무엇이 박지혜 마음을 움직였나 해서요. 다른 편지들과 별다를 건 없었는데, 한가지. 본인 소개를 서울에서 마사지샵을 운영했다고 했더라고요. 2년 만에 출소해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박지혜 입장에서는, 마사지샵 운영자라는 게 크게 와닿지 않았을까요?[2] 그래서 다른 편지들을 제쳐놓고, 붉은 울음한테 먼저 연락했던 거고요.
지헌: 사람 심리를 교묘하게 읽어내는 놈이야.
수영: 그래서 하나의 비밀도 알아냈겠죠. 똑같은 아이의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은 읽지 못한 걸, 붉은 울음은 읽어낸 겁니다.

2.12. 12화

지헌: 전부터 묻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요, 민하정 씨가 차우경 씨를 왜 비밀 사이트로 초대했다고 생각해요?
우경: 아마… 나도 그들과 같은 생각이라고 판단했겠죠.
지헌: 우경 씨도 그런가요?
우경: 같은 분노를 느끼는 건, 맞아요.
지헌: 그곳에선, 분노를 넘어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심판을 하고 있어요. 거기에도 동의하시는 거예요?
우경: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마음으로야 수백 번, 죽어라 죽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직접 하라고 하면, 못할 거 같아요. 마음 먹은 거랑, 실행하는 거랑은 전혀 다르니까요.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은호)

지헌: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에, 보통 그런 경우 경찰에 신고를 하지. 근데 왜 안했어?
은호: 형사님 만날까 봐요.
지헌: 너 바보냐? 머리가 좀 떨어져? 그게 더 의심받을 짓인 거 모르겠냐고, 이 새끼야!
은호: 소년 A. 민기 사건 때, 그때 배웠어요.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절대 나서지 말고 무조건 튀어라. 경찰은, 부모 없는 고아에,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번듯한 직업도 없는 날 제일 먼저 의심할 테니까.
은호: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계속 그렇게 살게 된다." 선생님이랑,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어요.
"넌, 생각하는 게 그 따위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 꼴로 살 거야." (감정이 격해지는) "너 혼자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뭐 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넌 세뇌된 거야. 그들이 널 이용하기 좋게. 유인하기 쉽게!"
우경: "그들"이 누구예요? 원장님이랑, 큰 원장님인가요? 윤 부장님 살해된 거랑, 혹시… 원장님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대답 없는 은호) 경찰에 신고해요. 은호 씨가 한 거 아니라면서요.
은호: 난 못해요.
우경: 계속 그런 꼴로 살 거예요?
은호: 큰 원장님… 화내실 거예요.
우경: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계속 그렇게 살아요, 은호 씨! 큰 원장님 화내실까 봐 살인자 될 거냐고요.
지헌: (수영이 전달한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야. 너 뭐야? 너 진짜 바보야? 너 미쳤어? 니가 살인범이 될 수 있는 마당에 그걸 숨기는 새끼가 어딨어?!
은호: 한번 정해진 사람 관계는, 변하지가 않아요. 벗어나고 싶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게 잘 안 돼요. 성장하고 다시 만났어도, 그건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 화면을 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큰 원장님 아시면 안 되는데…" 형사님은 이해 못 하시겠죠. 전… 지금도 큰 원장님 아시는 게 제일 무서워요.
지헌: 이은호가 안됐다 싶다가도, 왠지 속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이건 뭐, 하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
우경: 형사님을 속인 게 아니라, 공포예요. 오죽했으면, 살인자로 몰리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을까요.
지헌: 아니, 다 큰 성인이, 지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요?
우경: 끝까지 아빠 얘기를 하지 않은 하나를 생각해보세요. 누군가에게 지배를 받는다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에요.
지헌: 이은호가, 학대라도 받았다는 거예요?
우경: 꼭 그게 아니더라도, 상하 조종 관계는 어디나 존재해요. 부모 형제, 친구 사이, 회사 동료. 성장 과정에서 은호 씨는, 큰 원장님한테 많은 중압감을 느낀 거 같아요. 그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요.

2.13. 13화

은호: 누구를 잡고 싶은 거예요? 범인이 원장님이라는 게 허무하다면서요.
지헌: 난 그냥 진짜를 잡고 싶은 거 뿐이야.
은호: "진짜"… 꼭 잡으세요.
지헌: 형, 뉴스 봤지? 아동 학대 얘기만 쏙 빼고 흘렸다고. 딱 형 스타일로. "아동 학대 가해자들만 골라서 살해한다는 게 알려지면, 세상은 범인을 영웅 취급할 거다." 기억 안나?
기태: 그래서 비밀 수사로 돌린 거잖아.
지헌: 그런데 기사가 형이 원하는 대로 딱 아동 학대 얘기만 빠졌다고.
기태: …뭔가 이상한데.
수영: 이번 뉴스로 인해 한울 센터는 재기 불능 상태가 되겠죠.
찬욱: 한울 센터를 무너트리는 게 목적이라면, 왜?
지헌: 사연이 있겠지. 처음에는 한울 센터 주변을 빙빙 돌면서 아동 학대 가해자들만 골라 살해하다가, 지금은 한울 센터를 목표로 하고 있어. 그 원장은, 절대 붉은 울음이 아니야.
은호: 이사님들 말씀이, 한울 센터… 완전히 끝났대요.
(평온하게 시집들을 꺼내며) 직원들 충격도 커요. 매일 얼굴 보던 원장님이, 무서운 살인마라니. 다들 출근하기 싫겠죠. 게다가, 시에서 폐쇄 명령이 내려져서 더 이상 센터를 운영할 수가 없대요.
큰 원장: 넌 지금 이 상황이, 신이 난 거냐?
은호: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은 있어요. (책상에 시집을 한 무더기 올려놓으며) 이제야, 제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큰 원장님 시 좋아하시잖아요. 여기 있는 이 수북한 시집들, 이 시를 가지고 큰 원장님을 진짜로 위로해드리는 거예요. 그거 진짜로 하고 싶었거든요. (시집 하나를 펼치며)
큰 원장님 덕분에, 정말로 많은 시를 알게 됐어요. (그러고는 한 페이지를 찢어버리는)
은호: 저번에 꿈 얘기 했었죠. 커다란 책상이 있는 방… 항상 시를 읽었어요. 그 일이 있을 때마다, 큰 원장님은 시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난 그걸 믿었구요.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하지 않는 게 좋아요.
키가 크고, 힘이 세졌는데도, 난 왜 큰 원장님을 그렇게 무서워 했을까요. 왜 항상… 큰 원장님한테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을까요? (큰 원장의 목구멍에 욱여넣은 수많은 시를 보며) 이렇게… 별 것도 아닌데.

(총으로 우경을 위협해 데리고 사라지는 은호)
계획대로 박지혜를 살해했지만, 박 선생님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했어요.
난… 박 선생님 만큼 착한 사람은 아닌가 봐요. 죽이는 게 괴롭지 않았거든요. 아이를 구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맘카페에서 소라 엄마를 만났어요. 한울 센터에서 알던 분이라 사정을 잘 알았죠.
그런데… 역시 착한 사람들은 남을 해치지 못해요. 그래서 내가 죽였어요. 덜 착한 내가.

약간의 직감과, 잔인함만 있으면 돼요.
비밀은 땅속에 있고, 나쁜 놈일수록 고통에 약하니까.
우경: 날… 잘 안다고 했잖아요. 내가 쪽지 보냈을 때. 날 얼마나 알아요?
은호: 하나, 빛나, 소라. 그 아이들만큼 알아요. 선생님은, 그 아이들이랑 같은 눈빛을 가졌거든요.
우경: 민하정 씨는 어떻게 된 거예요?
은호: 선생님이 빛나를 데려온 걸 보고 알았어요. 창단 멤버 비슷했으니 배신감이 컸죠. 본인 결단에 맡긴 거예요. 본인 양심에 따라.
우경: 빛나가 원하는 건 엄마가 죽는 게 아니었어요. 빛나는 엄마를 사랑했고, 엄마를 필요로 했어요.
은호: 그게 잘못된 거예요.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큰 원장님이에요.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큰 원장님이에요. 아이들은 사랑한다고 착각하죠. 절대 벗어날 수 없어요. 이미 지배당했으니까. 그걸 내가 끊어준 거예요. 내가.
은호: 녹색 옷을 입은 아이, 기억했나요? 기억하지 말아요. 기억하면, 선생님도 나처럼 돼요. 꿈에서 본 방, 그 방을 기억한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됐거든요.
우경: 지옥… 진짜 지옥이 뭔 줄 알아? 두려움에 떨던 순수한 아이가, 살기어린 눈으로 사람 죽이겠다고 날뛰고 있는 지금 너의 모습이… 지옥이야.
누구나 아플 수 있어. 누구나 분노할 수 있어. 하지만, 누구나 살인자가 되지는 않아!
은호: 이렇게 예쁜 곳에 아이를 버려두고, 우리 엄만 어디로 갔을까요?

2.14. 14화

태주: 우경아. 알겠어? 너는 일곱살 어느 순간 이전의 기억은 없는 거야.
우경: 어떻게 그걸… 지금까지 의심 못했을 수가 있어?
태주: 그 공백을 네 아빠가 이야기로 채웠으니까. 그 이야기가, 너는 네 기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고.
민기: 은호 형은 사람을 죽인 게 아니에요. 사람을 죽인 건 형사님이예요. 우리는 은호 형이 옳은 잃을 했다고 생각해요.
지헌: 우리라니? 니가 방금 우리라고 그랬잖아. 우리가 누구냐고.
민기: 누구긴요? 거지같은 부모 만나 매일 얻어터지면서 자란 나 같은 애들이죠. 몰라서 물어요?
수영: 도대체 뭘 찾고 싶으신 거죠?
지헌: 이은호의 구구절절한 고백… 난 그게 마음에 걸려. 죽기 전에 자백을 한다? 그딴 거 믿지도 않아. 놈은 뭔갈… 숨기려 하는 거 같애.
수영: 이은호가 일부러 휴대폰 전원을 켜서 선배님을 불러냈고, 선배님이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었다는 사실이 약이 오른 건 아니고요?
지헌: 뭐?
수영: 결국 이은호 의도 대로 총까지 쏴버렸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죠. 그래서 이은호의 자백이라도 깨부수고 싶은 거 아닙니까? 죽은 사람과 싸워봤자 선배님만 힘들어집니다. 사건에서 그만 헤어나오시죠.
미선: 합의금 이 천만원을 현금으로 쏠 테니까, 희수를 세 번만 만나라는 거예요. 애 보는 거 기분 잡칠까 봐 싫었는데, 어떡해요. 돈이 이 천인데 만났죠. 같이 놀고, 먹고, 사진도 찍고. 인증샷 보여줬더니 진짜 돈을 주더라고요.
지헌: 합의금 받아서 형편이 좀 나아졌겠네요.
미선: 빚 독촉 안 받는 세상이 이런 거구나. 인생이 달라진 기분이에요. 그리고 저 희수도 계속 만나요. 그때 그렇게 보니까 좋더라고요. 같이 밥 먹고, 놀고. (웃음) 핏줄이 뭔지.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만나러 가요.
우경: 붉은 울음이…
지헌: 이은호 말고 또 한 명이 있는 거죠. 민하정과 박용태라는 공범자가 있긴 했지만, 이미 둘은 죽은 사람들이고. 그 외에 나머지는 이은호가 혼자 한 거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내에서, 사건 종결하기 딱 좋은 말만 해주고 갔잖아요. 뭔가 순순히 말하는 것 같은 느낌 없었어요?
우경: 이해받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헌: 이해도 받고 싶은 거겠죠. 누군가도 보호하고 싶었고. 이은호가 목숨을 다해서 보호하고 싶은 사람… 난 그가 핵심이라고 봐요.
우경: 은호 씨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거나… 가족이거나.
우경: 살려줘서 고마워요. 많이 괴로운 거 알아요. 차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헌: 이은호가, 정말로 차우경 씨를 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경: 쐈을 거예요. 은호 씨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여운 사람이지만,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었어요. 형사님이 나 살린 거, 맞아요.
세경: 왜 나한테 잘해줘요? 안 그랬잖아.
진옥: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한테 잘해주지, 그럼. 못 해주겠니?
세경: 나 미워했잖아요.
진옥: 안 미워했어. 널 왜 미워해?
세경: 거짓말.
진옥: 너한테 지은 죄가 많다.
세경: (고개를 돌려버리는) 어색해요, 아줌마. 그냥 하던 대로 해.
우경: 우리 엄마. 많이 편찮으셨잖아요. 그래서 세경이가 외할머니 댁에 오래 맡겨졌던 거 같은데…
이모: 무슨 소리야 세경이를 맡기다니. 니네 엄마,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너네들 남의 손에 안 맡기고, 끝까지 지 손으로 챙긴 사람이야. 누가 그런 소리 하대? 그 여자가 그래? 네 엄마 죽자마자 그 자리 꿰찬 여자. 그 여자, 니네랑 우리 발길, 딱 끊어버렸잖아. 너희 외할머니, 불쌍한 손녀들 얼마나 보고 싶으셨겠니. 매정도 하지. 지 자식 버리고 남의 자식 키우겠다고 들어온 여자가 온전하겠냐고.
우경: 오늘 이모 만났어. 우리 엄마는 당신 손으로 세경이랑 나, 끝까지 거두셨대. 그런데 세경이는, 계속 자기가 외가댁에 있었다고 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진옥: 오래된 일, 속속들이 어떻게 알아. (자리를 피하는데)
우경: 엄마 아이는 어떻게 됐어?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엄마한테도 아이가 있었다는데. 맞아?
진옥: 정말 징글징글해… 니네 외가 식구들, 정말로 끔찍한 사람들이야. 애 딸린 과부라고 하든? 왜? 술집 여자 소리는 안 하대? 스물 네살 처녀가, 애 둘 딸린 남자한테 시집 왔다고 온갖 더러운 말들 만들어낸 사람들이야.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어. 내가 니들을 어떻게 할까 봐, 내가 돈이라도 들고 튈까 봐, 온갖 쌍심지를 켜고 날 괴롭혔다고. 오죽하면 니네 아빠가 그쪽으로 발길도 끊었을까! 니 눈으로 봤잖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난 최선을 다했어. 너네를 위해서! 그런데 왜 너까지 내 피를 말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달달 볶냐고!

2.15. 15화

우경: 당신 목적이 뭐죠?

붉은 울음: 진실.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 고통 받는 당신을 구하는 것.
다시 묻죠.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가요? 동생과 녹색 옷을 입은 소녀의 비밀을 알고 싶은가요?

우경: 동생과 녹색 옷을 입은 소녀의 비밀. 알고싶어요.

붉은 울음: 첫째. 새엄마를 믿지 마세요.
우경: 앞으로 자주 못 오실 거야.
세경: 나한테 잘해줘서 이상했는데. 사람이 큰 병에 걸리면 달라진다잖아.
우경: 넌 엄마가 왜 그렇게 싫었던 거니?
세경: 왠지… 새엄마는, 나를 꺼림칙해 하는 것 같았어. 그거, 사실 아빠도 좀 그랬다? 내가 외할머니 댁에서 살다가, 뒤늦게 집에 와서 어색했나 봐.
우경: 많이 힘들었겠다. 외롭고.
세경: 언니도 그랬어. 외할머니 댁에서 처음 온 날, 언니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 나.

우경: 세경이가, 달라졌어.
태주: 네가 진짜 궁금해 하는 게 뭔지, 솔직하게 말해 보라는 거야.
우경: 세경이가, 광주에 어디 있었는지가 궁금하다니까?
태주: 더 궁금한 거. 더 근본적인 거. 네 맘속에 있잖아. 솔직하게 말해 봐. 괜찮으니까. 난 너를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아.
우경: 세경이가, 진짜 내 동생인지 아닌지가 너무 궁금해.
(그러나 곧 부정하는) 아니야. 세경이 내 동생 맞아. 의심하는 게 말도 안 돼. 내 동생 맞아.
태주: 진실과 거짓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게 뭐라고 생각해? 아느냐, 모르느냐. 바로 그 차이야. 진실을 모른 채로 그냥 믿으면 진실이 되는 거고. 세경이가 누구냐고? 그건 네가 맘만 먹으면 금방 알아낼 수 있어. 모르는 채로 그냥 믿을 건지, 파헤쳐 볼 건지, 그건 네가 선택하는 거야.
우경: 조혈모 세포 은행에 엄마 등록해놨어. 세경이랑 나, 다 검사 받을 거야.
진옥: (식겁하는) 니들이 왜? 내 핏줄도 아닌데 소용없는 짓을 왜 하니? 우경아. 너 왜 이래. 왜 내 말을 안 들어? 필요 없다니까?!
우경: 나 엄마 말 들을 나이 지났어. 나 성인이야. 남들은 살아보겠다고,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안간힘이야. 근데 엄마는. 엄마는 뭔데 그냥 가겠다는 거야?
진옥: 말했잖아. 나 여한 없다고.
우경: 도대체… 얼마나 말 못할 비밀이길래. 꼭 쥐고 죽음을 택하는 거야, 엄마?
나, 몇 만 분의 일 확률이라도 엄마 살릴 수 있으면, 나 꼭 살릴 거야. 엄마 살릴 수 있으면, 나 뭐든지 해.
엄마한테 듣고 싶은 얘기가, 난 많거든. 나 그 얘기 들을 때까지, 나 엄마 못 보내.
지헌: 시완이 동생이 어떻게 죽었다고 했죠?
우경: 교통사고요.
지헌: 그때 그 비밀 사이트에 우리가, 병사의 배후에 아동 학대가 있었다고 그랬죠? 만약에… 진짜로 붉은 울음이 한 짓이 맞다면, 우리가 상상한 게 진실에 가깝지 않나 해서요.

수영: 교통사고로 사망한 게 아닙니다. 게다가 아이 오빠가 과실치사로 조사까지 받았는데요?
지헌: 과실치사? 그 어린 애가?
수영: 아이들끼리 싸우다가 동생이 계단에서 굴러 사망했답니다.
우경: 시완이는, 계단에서 사람이 구르면 죽는지 안 죽는지 궁금해 했었어요. 동생이 계단에서 굴러서 죽었으면, 그게… 궁금했을까요? 자기 몸을 던지면서, 모형 집을 만들면서, 시완이는 계속 계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었어요.
우경: 시완아. 그렇게 마음 속에, 아픈 걸 꾹꾹 참고 있으면, 나중에 키도 크고 몸도 커지면, 아픈 것도 더 커져서 더 많이 아프게 돼. 그러니까… 참지 말고, 얘기 해. 동생은… 계단에서 떨어진 게 아니지?
시완: 아빠… 아빠가, 화만 나면 시끄러웠어요. 난 괜찮았어요. 아들이라고 봐 줬거든요…

아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엄마 죽어. 엄마 죽으면 아빠 죽고, 너도 죽는 거야! 우리 식구 다 죽는다고!

우경: 그래서 경찰에, 동생을 계단에서 밀었다고 한 거야?
시완: 이상하게… 모두 내 말을 믿었어요. 그래서, 헷갈렸어요. 내가 진짜로, 동생을 밀었나?
우경: 그래서 계단에서 떨어진 거니. 계단에서 떨어지면, 죽는지 궁금해서…
시완: 동생이 맞을 때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우경: 나, 이제 볼 수 있을 거 같애. 진짜 세경이 얼굴. 이제… 할 수 있을 거 같애.

(새엄마와 처음 인사하는 때, 언니의 부름을 받고 달려오는 동생)
그 아이…! 그 아이야. 내 동생, 세경이…! 그 아이가, 진짜 내 동생이야.

내가… 내가 세경이를 잘 돌봤어야 했어… 동생을 잘 돌봤어야 했어…
(녹색 원피스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자매, 신경질적으로 세경을 끌고 가는 진옥)

들려… 내 동생 울음소리가 들려…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로 멈추지 않는 울음소리)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눈을 떠보니 옆에 누워있는 세경. 볼에 손을 대는데)

세경이가 차가워. 너무너무 차가워…

2.16. 16화

진옥: 손이 많이 가는 애였어. 부산스럽고, 끄떡하면 울고, 칭얼대고, 항상 눈물 범벅, 땀 범벅에, 씻기려고 할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어댔지. 애 하나 씻기는 게, 매일 전쟁이었어. 네가 언제적 이야기 하는 건지 알아. 그 애가 잠에서 깨지 못한 날이 있었지. 급성 폐렴인가 그랬을 거야. 그날 이후, 그 애는 다른 집에 맡겨졌어. 내가 그 애를 감당 못한다는 걸 네 아빠가 알았으니까.
우경: 그래서, 다른 집에 맡겨 놓은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는데.
진옥: 그건 몰라. 알게 되면 데려와야 했을 테니까.
우경: 아까는 애를 잃어버렸다더니, 이제는 아빠가 애를 다른 집에 맡겨 놨어?
진옥: 그 애가 죽었다는 증거 있어? 도대체 네가 무슨 근거로 그 애가 죽었다는 건지, 난 도통 모르겠다.
태주: 저를 자꾸 의심하는 이유가 진짜 뭡니까? 뭐, 내가 이은호 형이라서? 살인자의 형이면 형도 살인자다. 뭐 이런 거? (웃음) 이게 무슨 개소리야.
지헌: 야, 붉은 울음. 니 동생이 다 뒤집어 쓰고 죽으니까 좋냐? 마음 편해? 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웃기지 마, 새끼야. 난 니가 진짜라는 거 아니까.
니가 큰 그림을 그렸어. 한울 센터의 정보를 빼돌리고 희생자를 골랐지. 그리고 외롭고 힘든 이은호한테 열한 살 터울의 형은 큰 존재였을 거야. 넌 그런 동생한테 살인을 시켰고. 두 살 때 헤어진 불쌍한 동생한테 그런 짓을 하냐?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태주: 우리 은호가 누굴 죽였는데? 하나 아빠, 그 개장수? 그럼 그때 넌 뭐하고 있었어. 다정하게 하나 손 잡고 개장수한테 갖다 바친 거, 그거 바로 너잖아. 하나 살린 건 니가 아냐. 우리 은호지. 그리고 그 은호 죽인 거, 그거 바로 너야, 이 살인자 새끼야.
정말로 붉은 울음을 잡고 싶은 거야? 잘 생각해 봐. 그 사람은 네가 하고 싶은데 절대로 못할 일을 대신 해주고 있잖아.
세경: 송이, 송이, 꽃송이. 할머니가 나 그렇게 불렀어. 꽃같이 예쁘다고, 송이. 가물가물한 그 이름이, 난 내 별명인 줄 알았는데. 내 진짜 이름, 맞죠? 왜 그냥 죽으려 그래요?
진옥: 내가 지은 죄가 많아…
세경: …엄마. 엄마. 살아요. 내가 살려줄게. 나, 완전히 회복될려면 얼마나 걸릴 지 몰라. 살아서 내 뒷바라지 해줘야지. 그렇게라도 죗값, 치러야지. 살아서, 꼭 살아서 나 살려줘요. 그게 엄마가 나한테 한 짓, 갚는 길이야.
지헌: 저, 우경 씨! 만약에 동생 시신을 발견하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거예요? 어머니를 심판할 거예요?
우경: 엄마를 심판한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지헌: 붉은 울음은 시완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우경 씨도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우겅 씨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릴 거예요.
우경: 난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
지헌: 아직 지옥까진 아니라 그랬죠? 지옥문 열리면 달라질 수 있어요. 놈은 분명히 그때를 노릴 거고요. 저랑 약속 하나만 해줄래요? 지옥문 열린다 싶을 때, 지옥에 다다른다 싶을 때, 저한테 전화 한 통만 해줘요.
우경: 살아나게 돼서 좋아, 엄마? 집에 가자. 엄마가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
(벽난로 앞으로 끌고 가는) 봐. 봐! 30년 만의 재회… 소감이 어때? (주저앉는 진옥)
애를 맡겼다더니. 그 맡겼다는 애가 왜… 왜 저기에 있는데? 왜 저기에 있냐고. 말해봐. 말 좀 해보라고!
아이를 저기다 묻어두고… TV보고… 웃고, 떠들고, 밥 먹고. 자고… 살 만 했니? 살 만 했어?
당신도, 아빠도, 끔찍한 사람들이야. 정말 끔찍해, 정말!
진옥: 난 그저, 씻기 싫다고 떼 쓰는 아이, 그냥 혼내준 거 뿐이야. 나도, 그렇게 될 줄 정말 몰랐어! 너도 애 키우니까 알 거 아니니! 너도 은서 혼내줄 때 있잖아! 은서 미울 때도 있잖아! 애 둘 키우는 게… 너무 힘들었어. 그 일이 있고 나서 30년 동안,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 줄 아니?! 한 번도 제대로… 웃어보지도 못했어. 나도 고통받을 만큼 받았다고!
우경: 고통? 무슨 고통? 고통이라니…! 엄마, 고통이 뭔 지 알아?! 봐! 봐! 고통은! 내 동생이 받았잖아! 30년 동안 여기 파묻혀가지고! 고작 다섯 살이었어… 고작 다섯 살 짜리 애가, 왜?! 왜 여기 들어가있어야 되는 건데!
진옥: 죽은 애가 고통을 아니?! 사는 게 더 지옥이야! 난 그 지옥을 30년 견뎌냈다고. 그 지옥 견뎌내며 이만큼 너 키워냈잖아! 내가 일부러 죽였니?! 넌? 넌 은서 때린 적 없어? 그 앤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야!
우경: 재수가 없어? 차라리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 모가지 그렇게 쳐들지 말고!
진옥: 이런 미친년…! 기껏 30년 키워준 엄마한테 뭐가 어째?!
우경: …엄마? 누가 엄만데. 당신이 엄마야? 어? 당신이 엄마야?! 어떻게 엄마야, 당신이! 어떻게 엄마가 이래! 엄마? 엄마?!

이 분노는,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요?

온몸이 갈갈이 찢기고, 찢겨진 살조각 하나 하나 펄펄 끓는 용광로에 지글지글 지지는 듯한,

이 끔찍한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요?

근원을 알 수 없는 이 분노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붉은 울음: 새엄마는 당신 덕에 새 삶을 살 수 있게 됐군요.
결국 당신이 새엄마의 짐을 거둬준 거네요.
짝짝짝. 당신은 진정한 효녀예요.
죽음은 정지. 끝.
당신의 동생은 5살에 정지된 채 영원한 종말에 갇혀 있는데,
살아 있음은 기회. 가능성.
산 자의 죄는 생활에 섞이고, 관계에 섞여 결국 사라져 버리죠.
이래도 살아있음을 용납할 수 있나요?
지헌: 야, 넌 사람도 잘 패는 애가 왜 니네 오빠 주먹은 못 막는 거냐? 붙어 보니까 별 거 아니더만.
수영: 오빠가 때릴 때, 입 다물고 조용히 참으라고 배웠습니다, 어려서부터.
지헌: 누가 그랬는데?
수영: 엄마가요. 재혼한 가정을 꼭 지키고 싶으셨던 거죠. 오빠는 저 모양이지만, 새아버지는 참 좋은 분이셨거든요. 머리로는 아닌 거 아는데, 오빠만 보면 몸이 굳어져버립니다.
지헌: (수영을 보내고 조용히 중얼거리는) 세상에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 거야?
우경: 선배. 맞구나.
태주: 마음이 바뀐 거야?
우경: 내 마음은 항상 같았어. 살아있음은 기회. 가능성. 난 그걸 택할래.
태주: 네 선택이 맞다고 생각해? 화 안나?
우경: 화… 나지. 죽이고 싶고. 밉고. 근데, 누군가에게 종말을 고하기엔, 내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아. 내가 결백하지 않은데, 내가 누굴 심판해?
태주: 치료를 하면서 은호가 겪었던 지옥을 보게 됐고, 은호가 분노한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나도 분노했고요.
그때부터 우리는 그 분노를 안고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정보를 수집하고, 은호는 그걸 실행하고.
정보 수집 과정에서, 뭐, 약간의 문제도 있었지만, 대충 잘 해왔어요, 우리는.
시완이… 그리고 우경이. 그 둘 만큼은 내가 직접 해결해 주고 싶었어요.
은호가, 자기가 겪은 지옥에 대해서 말할 때… 내가 맨 처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어쩌면 내가 겪었을 일일 수도 있는데,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형사님은요? 형사님이라면 용서할 수 있겠어요? 그런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을?
그리고, 애들한테 그런 짓을 했던… 그 인간들.
지헌: 용서 못하죠. 절대 못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제가 심판할 생각도 안 합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내가 뭔데 심판을 합니까?
지헌: 난 은호랑 반대로, 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이"하면 "성가심", "책임감"부터 떠올랐거든요. 그 책임감이 무거운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무거워서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기꺼이 안고 가고 싶은… 뜨겁게 벅차는 책임감.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구나. 처음 느꼈죠.
우경: 하나가, 형사님한테 인생의 큰 깨달음을 줬네요.
지헌: 어머니랑은, 괜찮아요?
우경: 아직… 용서는 못 했어요. 앞으로도, 자신은 없구요. 그런데, 우리 은서가… 할머니를 많이 좋아해요. 그런 게 태주 선배가 분노했던 ''살아있음의 기회", "가능성"이겠죠?
깜깜한 밤이 무서웠던 달님이가, 매일 밤, 눈물을 흘렸거든요.
"언니, 무서워."
동생이 안타까웠던 언니는, 동생과 자리를 바꾸기로 했어요.
그래서, 햇님 위에 푸르게 변한 해가 밤을 비추고,
달님 위에 붉게 변한 달이, 낮을 비추게 되었지요.
그렇게, 붉은 달은 해, 푸른 해는 달이 되었답니다.
<붉은 달 푸른 해>

3. 작중 인용된 시(詩)

시(詩)를 단서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이기 때문에, 시 구절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작중에서 범인이 사건 현장에 시구를 남기고, 그것을 단서로 사건을 추리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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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인 이은호가 과거 원장에게 학대를 당할 때마다 시를 읽게 했기 때문에 범행 현장에 시를 남긴 것이다.



[1] 붉은 울음, 민하정[2] 결혼 전 마사지사로 일함.[3] 원래 시 구절은 '그 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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