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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18 14:39:14

부족전쟁/한국서버 1세계


1. 개요2. 서버 시스템3. 역사
3.1. 여명기3.2. 대(對) 세인트 동맹, 그리고 전쟁3.3. K-TOP과 제국의 발전3.4. WW1 발발3.5. 춘추전국시대3.6. 7월 3강 체제의 성립과 급변하는 정세3.7. 베어즈 전쟁3.8. WW2 ~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3.9. 시나브로의 부활3.10. 몰락의 전조들3.11. 세계의 끝3.12. 3강 체제의 종말3.13. 재정립 시대3.14. 푸른 하늘에 지는 별3.15. 마지막을 향한 헛발질3.16. 푸른노을의 패전선언3.17. 양강체제 그 이후3.18. 다시 시작되는 세계대전3.19. 격동하는 정세, 그리고 통일3.20. 1서버 종료와 한국서버 종료

1. 개요

부족전쟁 한국서버 1세계 연표
부족전쟁 한국서버 1세계 시기별 지도
부족전쟁 한국서버 1세계 랭킹

2008년 1월 7일, 이노게임사에 의해 부족전쟁 한국섭 첫 번째 서버가 열렸다.

당시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 '하루 10분만 해도 되는 웹게임'에 이끌린 유저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게임은 '하루 10분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게임을 10분만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고 인생을 10분만 해도 되는 게임이란 뜻이였나보다

그리고 그렇게, 부좆의 장대한 역사극의 막이 올랐다.

2. 서버 시스템

한국에 서비스 된 최초의 서버이지만, 이후의 서버와는 상당히 다르다. 본격적인 비교는 부족위키의 1세계 시스템 관련 문서 참조.

우선 이후 서버에 배치되는 팔라딘과 영웅무기가 없으며, 노블을 뽑는 방식도 1세계가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게다가 농가룰 제한이 걸려 있다. 시작부터 하드코어였다. (...)

유닛사살도 집계 방식이 달라서 이후 서버에서는 같은 수의 유닛을 죽여도 2배에서 5배까지 더 많이 집계된다. 편집시점 기준 1세계의 유닛사살 1등이 520,61 Mio.(5억2천만)점인데 다른 서버 집계 방식이면 최소한 10억점에서 25억점에 달할 것이다. 참고로 현재 한국서버 유닛사살 1등은 4세계 유저로 24억점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1등 유저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1세계 유저들의 억울하다는 하소연이 아니 나올 수가 없다. 일부 OD 게이들은 이 때문에 2세계 이후의 신서버로 이동한 경우도 있을 정도...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제국 멸망 이후 타임즈가 신화와 합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버가 심각하게 불안정해서 공격나갔던 병력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았던 적이 있다. 8년 4월 15일부터 일주일간. 그런데 농가의 인구는 계속 차지해서 마을이 유령마을화 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유일한 해법이 노블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인구는 인구대로 차지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되었던 것. 이 사고에 대해 보상이라고 준 것이 프리미엄 약 300원치. 이 때문에 300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사들이 안 온다! 보상은 300원

아래는 부족전쟁 사이트에서 명시 된 1세계 설정이다.
설정
게임속도 1
유닛 속도 1
건물 허물기 활성
윤리 활성(시간에 무관)
농가 규칙 aktiv (1200 Plätze / Stufe)
기본 방어 20
최소 공격 단위유닛 1% 마을점수
대장간 연구 시스템 간단한 연구 시스템
교회 비활성
야만인 마을의 자동성장 비활성
보너스마을 보너스마을 없음
공격 취소(회군)가능 기한 10 분
거래 취소 제한시간 5 분
야간 모드 0:00 시 부터 8:00 시 까지 활성화 됩니다.
초보자 보호(뉴비쉴드) 3 일
최대 공격자대 방어자의 관계비율 처음 45 일간 25 배 이내.

유닛
궁수 활성
정찰병 정찰병은 상대병력, 건물, 자원을 볼수 있습니다.
다른 마을에 주둔중인 유닛 까지
영웅 비활성

귀족
귀족 가격 상승 적용, 두번째 귀족부터 가격 상승
공격시 사망한 귀족을 저렴하게 재생산 활성
최대 귀족 이동거리 70 41 시간 이상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귀족 공격에 따른 충성도 감소 20-35
시간당 충성도의 상승 1

설정
전투 랭킹 활성, 농가 여유공간에 따라.
휴가 모드 활성
영구적 휴가대리 제한 활성, 60일부터 120일까지
자유 거래 활성, 이 세계를 시작한 플레이어의 시간에 따라
지도 시스템 1000x1000 - 대륙
새로운 지도 그래픽 네
방위 활성
시작일 99년 11월 30일
버전 6662 5.7

3. 역사


2008년 초에 열린만큼 당연히 역사가 깊고, 수많은 부족들이 명멸해갔다.
하지만 최초의 한국서버로서 이후의 서버들은 뛰어넘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넘처나며 온갖 잉여롭고 무서울 정도의(...) 훼력들이 난무했었다. 특히 K-TOP이 코어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3강에 의해 몰락하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들은 한편의 대하서사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 여명기

1월 7일에 서버가 열리면서 많은 수의 네티즌들이 부족전쟁에 관심을 가졌다. 아무래도 오게임의 인기가 식고나서 오게임의 대체물을 찾던 사람들에게 '하루에 10분만 투자하면 되는 게임'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무시무시한 겜갤러들(...)[1][2]

부족전쟁은 오게임이 그랬던 것처럼 넷 상에서 입소문을 타고 또 타면서 급속도로 전파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1세계에 마을을 만들었다. 문피아루리웹, 타입문넷 같은 곳에서도 알려지면서 그쪽 커뮤니티 인원들도 상당히 많이 갔고, 직접 부족까지 세웠다.(문피아, 흑범- 타입문넷의 부족) 그 외에도 많은 커뮤니티 부족들이 창설되었는데, 그 중 네이버 미디블 토탈워 커뮤니티 카페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MTW가 있었다. 아직 밀집도의 개념이 없었음에도 매니저 노블리스의 명령에 따라 이들은 북서지역에 자신들의 마을을 만들어 일종의 집성촌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 밀집도 작전은 후일 MTW가 북서의 강자로 거듭나는데 있어 결정적인 주춧돌이 된다.

당시에 1위는 네이버 웹게임 카페였던 WGSC. 그리고 2위는 ROME. WGSC는 본 카페의 명성을 후광으로, ROME는 초대신공으로 각각 단순간에 상위권에 안착했다. 그 뒤를 K-TOP이나, 제국 등이 뒤따르고 있었다.

1월 17일에는 한국서버 최초의 부족 간 전쟁이 발발했다. 타 웹게임에서 건너온 세인트 부족과 모 사이트에서 건너온 RG 간 전쟁으로, 이유는 정탐병을 보냈다고.(...)[3] 이 전쟁은 나중에 가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퍼져 나갔고, 결과적으론 2010년 6월이 되어서도 전쟁은 안 끝났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북서련 족장 벤더에 의해 발발한 네이버 미디블 토탈워 커뮤니티 내부 분쟁이 부족전쟁으로 확대되면서 MTW, 골드시티가 연합을 결성해 북서련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다만 양측간 협상을 통해 모든 원흉격인 벤더가 사퇴하는 걸로 종결되었으나 MTW는 북서련을 잠재적인 적으로 규정했다. 이른바 북서련 전쟁의 배경으로 MTW의 출사표였다.

1월 28일 WGSC 부족이 갑작스레 해체되었다.(...) 28일 훨씬 이전에 WGSC 부족장 ‘봄날’이 무부족 상태였던 ‘PlamTX’에게 마을을 공략당한 것이다. 부족장이 게임을 부실하게 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은 물론이고, 일개 무부족 유저에게 최상위 부족의 리더가 당한 것은 심각한 충격이었다. 따라서 WGSC 부족은 비밀리에 ‘PlamTX’를 보복하기로 결정, 부족 차원에서 보복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외부로 발각된 것은 당연하고, 정작 ‘PlamTX'는 제국 부족으로 거처를 정하게 된다. 도피성 가입에 대한 외교적인 룰이 정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국 부족은 ‘PlamTX’에게 가해졌던 WGSC 부족원들의 공격을 집단 방어로 대응하였고 결국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 결국 공격 사실과 실패까지 완전히 외부에 알려지자 상당한 비판 여론이 일게 되었는데, 이쯤 되어서 WGSC 카페 본진과 WGSC 부족 수뇌부는 ‘본 카페의 명성에 누를 끼칠 것이라는 판단’하에 해체를 하기에 이른 것.

이렇게 되면 ROME의 독주와 이를 뒤따르는 K-TOP과 제국이 펼치는 레이스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ROME 마저도 어이없게 해체됐다. 2월 15일, ROME 부족이 해체된 것이다.(...) 당시 대(對) 세인트 동맹의 수장이나 다름없던 ROME은 거대한 덩치와 달리 세인트와의 전쟁에서 피로가 심각하게 누적되어가고 있었고 승리 가능성도 크지 않은, 그런 우울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기존 ROME의 부족장이 갑작스레 퇴임하고 당시 중학생이 최후의 부족장이 오르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를 향해 치달았다. 내부를 가다듬지 않은 상태에서 중학생 부족장은 무리한 공격 명령을 내렸는데 심지어는 강제로 공격 부대를 징발하고 불복하면 척살하는 강수를 두었다. 내실도 다지지는 않고 무리한 전쟁 강요로 인하여 부족원들의 불만이 폭발, 결국 준 내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겁먹은 부족장이 부족을 해체해버림으로서 ROME은 소수 무리를 빼고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4]

WGSC와 ROME의 어이없는 몰락은 K-TOP과 제국이 비약적인 성장에 발판이 되었다. 앞서 서술하였듯이 이 둘의 몰락이 없었다면 K-TOP과 제국은 지금 같은 위세를 갖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 순위에서 앞서 둘이 사라지자, K-TOP과 제국이 그대로 순위가 뒤따라 올랐다. 그렇지만 이런 기존과 입장들과 달리 객관적인 판단을 하자면, 초기 이후에 WGSC와 ROME이 기존 패권을 유지할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부족의 기본인 밀집도 개념은 당연하고, 훌륭한 오피서들이 많지 않았다. 전투 능력도 K-TOP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이었으며 ROME의 경우에는 아예 세인트에게 고전했다. 아마도 이들은 노블 시즌이 되어 전쟁이 연달아 일어날 시점이 되면 기존 패권을 상실하고 주저앉았을 가능성이 컸다. 결국 초기의 해프닝인 셈이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은 한국 유저들이 부족전쟁에 그만큼 충분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뭐, 그 시기에 부족전쟁을 꿰뚫는 인간들은 소수였고 그나마도 K-TOP과 제국에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알려지기 힘든 판. 당연하게도 이 시기에 방어 전용의 유닛이나 공격용의 유닛을 구분하지도 못했고 테크트리 올리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영농은 쌓이고 쌓였고.(...)

그러는 사이에 1세계에는 몇 가지 복선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3.2. 대(對) 세인트 동맹, 그리고 전쟁

2월 15일 세인트 부족의 약탈을 참지 못한 RG 부족이 같은 뜻을 가진 부족들[5]을 모아 최초의 대규모 연합을 탄생시켰다.

당시 세인트 부족은 소수에 불과했으며, 반대로 대(對) 세인트 동맹의 부족들은 규모가 죄다 어마어마했다. 수백 명씩 있어서 거의 천 명에 육박했다. 아무리 세인트 부족이 날고 기는 약탈러라 할지라도 하나하나가 핵심이자 중요한 전략이라서 만일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손실되는 날에는 상당한 타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부족원들의 발전을 포기한다면, 부족전쟁에서 서버 초기의 개싸움은 단순히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가능했고 상식적으론 이런 전력비라면 그냥 GG치는 게 정상. 동맹은 설날 시즌까지 이용해서 기습전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세인트 부족은 단합심이 좋았고, 전투에 대한 센스도 충분히 쌓여 있었다. 이에 반해 RG, 레베비, 마비노기타임즈, ROME에서 그만한 센스를 지닌 인물들은 찾기가 어려웠으며 그나마도 전장에 멀거나 통제가 되지 못했다. 동맹이 천 명 가까이나 있어봤자 제대로 싸우는 이보다는 그냥 영농이나 하고 노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다. 그런데다가 동맹에 가담한 부족들 중에서 제대로 된 조직의 지휘통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편. 심지어는 동맹 부족들 간 외교 채널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다. 부족 내외로 불신들이 당연하게 생겨났고, ROME 해체 이후의 동맹 말기에는 완전 단절 상태가 되고 만다.(...)

정작 전쟁의 시작이었던 설날 공세는 사전 정보가 새면서 세인트가 즉각 대응을 실시했고, 이로 인하여 기습전의 이점을 잃은 동맹은 전쟁을 한 달 내내 지속해야만 했다. 결과? 세인트의 압도적인 승리.(...) 사실 개싸움이라 해도 부족원들이 한 지역에 밀집되어 있어야지 펀치력이 좋게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그 부족은 적에게 자기를 도시락으로 조공하는 꼴이었다. 세인트는 집단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고 오히려 역으로 주변의 허약하고 영농질만 하는 유저를 꾸준히 굴복시켜 자신의 양분으로 삼았다. 동맹 측에서는 이를 저지하려고 공격을 했지만, 세인트 부족원들은 이미 충분히 전투력이 상승해서 공방에 상당히 전력을 갖춰버렸다. '자원을 긁어모아 공격->약탈->약탈한 자원으로 병력 생산 및 테크 상승->약탈한 자원으로 뽑은 병력을 가지고 공격->약탈->이후 반복'이 진행된 것이다. 이런 탓에 동맹은 오히려 전쟁으로 세인트에 자동 도시락을 헌납하고 말았다. 동맹의 각 부족 내에서는 전쟁 피해자들이 다시 징징대는 소리가 올라 왔고, 처음에는 서너 곳 정도의 눈 감을 정도 피해였지만 가면 갈수록 심해져 레베비의 경우에는 우세하던 지역의 전력비가 역전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6]

설상가상으로 동맹 내 최대 규모의 부족이었던 ROME의 무능은 전쟁을 더욱 어렵게 했다. 규모가 크더라도 정작 밀집 개념이 없어, 학살에 가까운 피해치가 쌓여 있었다. 게다가 세인트와의 교전으로 입을 피해를 염려한 ROME의 유저들은 아예 동맹의 집단 공격에서 훼이크 공격까지 보내다가 적발되기까지 한다. ROME 부족장이 중학생으로 교체되는 시점에서는 이미 전쟁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후 중학생 부족장의 무리한 전쟁 지도에 질린 유저들은 ‘공격병 강제 징발, 불응 시 척살’이라는 강경책에 크게 반발하였고, 분리 독립이 이루어지던 와중에 부족 자체가 붕괴되고 말았다. 이 최악의 무능들로 가득 찬 ROME 덕택에 세인트와의 전쟁을 힘겹게 치르던 동맹 부족들은 마비노기 타임즈를 제외하고 모두 ROME의 뒤를 따라 최악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전쟁은 점차 역전되기 시작하였으며 노블 시즌이 되어서는 동맹의 전선들은 붕괴되었다.

ROME 해체 후에 동맹의 운명은 참으로 끔찍했다. RG와 레베비는 계속하여 각 거점을 상실하고 패퇴하였다. 그래도 레베비는 세인트와의 전쟁에서 패전 직전에 몰려있었어도 최대한 항전했다만, 레베비와 동맹이었던 베어즈 부족이 세인트의 사주로 배신하여 기습 공격을 펼침에 따라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RG의 경우에는 이후 세력이 급속도로 축소되어 7월까지 존속되다가 베어즈에게 흡수되었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서 베어즈 부족은 3강의 공격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마비노기타임즈는 앞서 두 부족과 편이한 운명이었다. 사실 마비노기타임즈의 피해는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전력이 큰 것도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중소 부족 따위였던 것. 그렇긴 해도 ROME의 해체와 동맹 채널의 불통과 피해 누적은 부족 내의 반전 여론을 일게 하고 있었다. 정작 이를 오피서들이 가로 막았는데 이것을 급하게 교체된 중학생(아님 고등학생) 부족장이 직접 세인트와 담판을 지어 무조건 종전을 맺게 되었다. 이 부족장은 불신임으로 퇴출되었지만, 앞서 ROME의 무능한 유저와는 매우 다른 결과를 냈다.(...) 어쨌든 종전 이후 마비노기타임즈는 새로운 부족장이 유능하게 활동, 급속성장하게 되었다. [[동맹의 역전 |오히려 나중에는 세인트와 동맹까지도 맺는다.]](...) 적과 아군이 허구한날 뒤바뀌는 게 부족전쟁에서도 진리다.

참고로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RG는 세인트 부족원들이 적은 북서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며 재기를 노리고자 했다. 이에 북서지역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던 MTW는 위협을 느끼고 RG를 기습 공격하였다. 이 전쟁은 양측 근거지가 달랐던 까닭에 별다른 충돌 없이 레베비의 중재로 종결되었으나, 전쟁 과정에서 MTW가 세인트와 동맹을 맺게 된다. 아직까지 MTW는 북서에 밀집한 커뮤니티 부족 정도로 인식되어왔으나 세인트는 이들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해 동맹을 맺었고, 이들의 선택은 훌륭하였음이 후일 증명되었다.

3.3. K-TOP과 제국의 발전

WGSC와 ROME의 몰락으로 반사 이익이 가장 컸던 부족은 바로 K-TOP 부족과 제국 부족이었다. WGSC와 ROME의 유저들을 가장 많이 흡수하면서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던 것. 그런데다가 케이탑과 제국은 한국서버 이전 시절부터 부족전쟁을 플레이한 유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고, WGSC 등의 일부를 다시 흡수하면서 사실상 게임 이해를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부족들은 밀집도 구성 자체를 모르고 있었지만 케이탑과 제국은 코어를 두고 밀집 구성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보였다.

케이탑은 제국보다 외국서버 경험자가 훨씬 많았고, 운영 체제는 유연한 편이었다. 워팀 중심이었기 때문에 부족장과 오피서들의 임무는 행정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워팀이 전투 분야에 전적으로 재량권이 있었는데 부족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를 그들이 알아서 했으니 어떻게 보면 손발이 조금 따로 놀고 있었다. 그래도 발전 시기에는 그로 인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제국은 케이탑보다 인원이 적었지만, 당시 서버 1위 '익사르' 등으로 위세가 높았다. 더욱이 케이탑에 대항하려는 차원에서 세인트, 바위와 삼각 동맹을 체결하는 등 외교적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제국의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게임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은 상당히 인기가 많았던 편. 케이탑과의 라이벌로도 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를 자칭하는 '코넬리우스'의 -중2병- 초특급 병맛 행위는 손발을 오그라들게 했다. 아무리 넷에서 온갖 짓을 다할 수 있다지만 상대에게 하대하는 행위나, 타 부족의 외교관에게 호통을 치는 행위는 기본적인 예의가 결여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통치력은 심각하게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이런 행위는 제국의 외교력을 갉아 먹었다.

2월 동안 케이탑과 제국은 상당히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호감이 넘쳤었다. 친선 교류가 잦았는데다가 외섭 경험자들의 친분 구도가 이리저리 섞여서 충분히 양 관계에 입김을 불어넣을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라 보인다. 그러나 동맹도 갈라놓는노블링 시즌이 열리면서 양측의 격렬한 노블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노블 분쟁이 터지게 된다. 이것이 조절되지 못하면서 양 측의 관계는 급속도록 냉각되고 말았다.

3.4. WW1 발발

케이탑과 제국의 노블 분쟁을 기점으로 양측의 관계가 냉각되면서 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본래 부족전쟁에서 노블분쟁으로 인해 관계가 손상되면 이를 치유하기 상당히 곤란한 판국에 양측의 외교는 막장으로 끝없이 파고 들었다. 제국의 황제는 황제놀이에 연연했고, 케이탑은 그들대로 열받아 있었다. 제국은 비밀리에 세인트와 바위로부터 확실한 동맹을 얻었지만 그것이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전쟁을 기획하게 된다.

그러나 케이탑은 제국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제국의 기습공격 계획이 사전에 유출되고 만다. 케이탑 역시 노블 시즌을 거치면서 무력이 급상승했으므로 오히려 자신들이 더 빠르게 기습을 하기로 결의한다.

08년 3월 3일 00시를 기점으로 케이탑은 제국에 선전포고와 함께 대규모 공세에 돌입했다. 제국 측으로선 역기습에 크게 당황했으며, 전격전에 가까운 케이탑의 눈부신 공격으로 서버 1위 '익사르'가 개전 초에 아웃당했고 제국의 주요 랭커들이 노블당하거나 패배했다.[7] 케이탑 측으로선 재빠른 기지와 훌륭한 선택으로 제국을 초기에 박살내버렸다. 수 일 사이에 제국의 전력은 끔찍한 수준으로 급감했다.(대다수 랭커들이 마을이 노블 당해버려 새로시작을 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 황제 코넬리우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블당해버렸다. 많은 유저들이 케이탑과 제국의 전쟁을 기대하였고,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지만 거의 삼연벙에 가까운 압도적인 전쟁에 허무함을 느꼈다. 타 부족의 오피서들은 케이탑이 보인 전투스킬(초치기, 병력구성 등의 노하우들은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과 효과에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제국의 갑작스런 몰락은 케이탑의 기습 공격 탓도 있지만 제국의 막장 외교에 실망한 동맹 세인트와 바위가 방어지원만으로 일관했고, 그나마도 케이탑이 이를 눈치채고 접촉하여 외교적 압박을 펼친 끝에 얼마 안가 병력을 뺀 까닭이었다.

제국의 패배로 인하여 케이탑이 명실상부한 최강자로 군림한다는 사실은 많은 부족들로 하여금 우려를 자아내게 하였다. 케이탑이 막강한 힘으로 세계 1을 지배하려 들 것이라고 걱정한 NFT 부족과 시나브로 부족은 즉각적으로 참전을 결의했다. 3월 5일에 NFT 부족이 케이탑에 대한 공격 계획이 누출되자 즉각 선전포고했고, 3월 8일에는 시나브로 부족이 역시 케이탑에 선전포고했다. NFT는 당시에 신흥 부족으로서 명문가 대열에 있었으며, 나름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나브로는 ROME의 뒤를 잇는 인해전술 부족이었다. 이들은 코어에서는 케이탑을 못 이기지만 외각에서는 우세하므로 외각에서 천천히 압박하는 전략으로 케이탑을 공격하였다. 이 가지치기 전략은 처음에는 효과를 나타내었으나 4,5월 달에 들어서면서 코어에서 올라온 케이탑의 전력을 그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NFT도 RG와의 합병을 고려했던만큼 규모 확장에 노력했으며, 전력도 강력했었고 시나브로의 경우에는 이후의 유산들만 보더라도 막강한 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케이탑의 전력이 얼마나 강력하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겠다.

NFT와 시나브로는 그것말고도 외교적 갈등이 빈번했다. NFT는 RG 합병 건으로 인하여 세인트와 마찰이 있었으며, 시나브로는 상당한 부족들은 NAP과 동맹으로 뒤덮었지만 외교 분쟁에 거의 무개념에 가까운 대처를 보였다. 또 세력 확대로 인한 문제가 양 쪽 모두 나타났는데 NFT는 흑영대 이하 여러 인물들이 쌈닭으로 이동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나타났으며(무단 도주라기 보기에는 조금은 애매한 사안이지만.), 시나브로는 2천 명에 가까운 인원을 통솔하지 못하여 팀킬까지 빈번한 상황이었다. 거기에다가 다른 중소부족들과의 충돌도 빈번했고 케이탑은 시나브로와 충돌하는 중소 부족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전쟁의 고착화로 NFT와 시나브로는 몇 가지 증상에 썩어들어간 것이다. 결국 NFT는 케이탑에 항복하여 해체되었고, 시나브로는 내부 분열로 인한 몰락으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제국의 경우에는 오랜기간 케이탑에 항전하면서 거주 지역을 코어에서 북쪽으로 이동, 기사단이라 개칭하면서도 계속 싸우게 되지만 이전의 힘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로서 케이탑은 1세계 최초 대전쟁의 유일한 승자가 되었다. 제국, NFT, 시나브로, 세인트, 바위가 전쟁에 개입했지만 패배하거나 물러섰다. 케이탑은 이 전쟁에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었으며 이것은 세인트 등과 같은 유력 부족들에게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케이탑이 언제 다른 부족을 상대로 정복전쟁을 펼칠지 모르기에 그들은 이런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힘을 기르는 것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코어에서의 전쟁은 케이탑의 정복으로 끝났으므로 이제 새로운 반(反) 케이탑의 기치는 코어를 포위하는 동서남북 각 외곽 지역들로 옮겨지게 되었다.
여담으로 부족전쟁에서 최초로 창설된 부족 hkk는 제국의 공격으로 멸망할 뻔했다가 세계대전 발발 당시 케이탑과 동맹을 맺으면서 살아남고 부족을 재건하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3개월 후 북서의 패권을 두고 MTW와 대결했다가 처참하게 끔살당했다.

3.5. 춘추전국시대

케이탑이 1세계의 패권자에 오르게 되면서, 1페이지의 명문가 부족들은 나름의 생존로를 탐색하게 되었다. 그들의 외교 노선은 한결같이 케이탑과의 친선을 유지하면서 확장에 주력하는 것이었다. 이런 노선은 바위 등과 같은 몇 안되는 소수정예 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여러 방식으로 구체화 됐다.

1세계의 춘추전국시대가 이후 세계와 다른 이유는, 다른 세계에서의 최강 부족들은 한 번 그 자리에 오른 것에 안주하지 않고 금방 새로운 상대를 만들어서 전쟁을 수행하였고 이런 방식으로 경쟁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케이탑은 불행하게도 그들의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을 포기했다. WW1은 생각보다 저항이 오래 지속됐고, 그 사이에 새로운 부족을 적으로 끌어들이기엔 부담이 컸다. 그들은 1페이지의 명문 부족들의 평화 외교를 그대로 따랐다.[8]

세인트와 바위는 WW1에 일찍이 몸을 빼고 난 뒤로 케이탑과의 평화 유지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세인트, 바위는 혈맹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위는 케이탑에 대응하는 소수정예의, 천연방어선이었다. 세인트의 입장에서 바위는 절대방위권으로서 그 존재 유지에 역시 남모르는 노력을 투자했다. 그러면서 남동 지역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마비노기타임즈는 세인트와의 종전을 주도한 부족장이 비난 여론으로 하야하고, 이후에 마비노기타임즈 사이트 출신이 아니었던 'sarada'에 의해 확장에 가담했다. 부족명도 '부족타임즈'라 개칭하고, 신화와의 합병을 실시했다.[9] 케이탑에는 역시 저자세를 유지하면서 특유의 외교 부족으로서 적을 유화시키고, 동료를 끌어모아갔다. 이들은 주로 전쟁이 아닌 평화적 합병등으로 세력을 확장했으나 5월부터는 체질 개선을 시도한다.

MTW는 미디블토탈워 카페에서 만들어졌지만 이후 약간의 세를 불리면서 패권의 길에 나섰다. 밀집도 개념을 현실화 시켰으며 대규모 전쟁에도 외교, 전투에서 완벽한 승리를 초전에 거두면서 북서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로 군림하였다. 원래 초기에는 영농이었으나 FLAG,북서련 전쟁을 통해 전쟁을 익힌 이들은 이후 침략을 통한 확장에 나섰지만 그들 역시 케이탑과의 접촉은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다만 초기에는 케이탑에 우호적인 편이었다.

그리고 로마의 잔당 FTF와 엄친아가 합병하여 쌈닭이란 부족을 만들었다. 이들은 고구려제국등을 박살내면서 자신들이 전투부족임을 알렸다. 이들은 근거지가 세인트와 같은 남동이며 그 뿌리가 반 세인트적인 부족에 있었음에도(엄친아는 한 때 대규모 반 세인트 전쟁을 계획했다.) 남동이 워낙 비옥한 곳이라 세인트와 화목하게 지냈다.

춘추전국시대의 군웅할거가 잇따르면서 새로운 부족들도 명망을 떨치게 되었다. 한민족연합이나 고구려제국과 같은 신흥 외곽 부족들이 성장하였고 자연시dc, 은하제국 같은 중소 명문 부족들도 다수 존재하였다. 카타르시스(시나브로)가 해체되면서 생겨난 부족7080, 비광 등의 카타르시스 후예들도 세력을 다졌다. 이들도 1페이지 명문 부족에 밀리지 않게 침략과 흡수를 통한 확장 정책에 신경을 두었다.

케이탑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부족들이 확장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 바람에 1세계는 혼란으로 가득찬 세계가 되어 버렸다. 각 부족의 오피서들은 전쟁과 외교를 통하여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장악하려고 온갖 계략들을 짜냈으며, 동맹과 배신이 밥 먹듯이 바뀌기도 하였고, 하루에도 쟁쟁한 사건들이 줄을 이어 터졌다. 어떤 부족이든 한가롭게 영농한 시간이 없었다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하루 10분 플레이는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랭커들은 초치기를 익혔고 방어를 위해 잠을 끊어 잤으며, 오피서들은 허구한날 irc에 접속해 행정 업무를 도맡아야 했다.

이 시기에 부족전쟁 공식포럼이 기능불능이 되면서 게임갤러리는 온갖 떡밥들로 대호황을 누리게 된다. 시나브로의 흑막, 유비 성자라든지 세계를 조율하는 레벨리온이라든지 등은 한동안 겜갤의 대표적인 떡밥 아이콘이었다.

그러던 중 4월 26일에 발발한 고구려 전쟁은 5강 체제의 서막을 알렸다. 고구려제국 간부가 쌈닭 간부에게 보낸 무개념 메일 덕에 발발한 이 전쟁은 장기전이 될 듯 했으나 MTW의 갑작스럼 참전으로 고구려제국,대고구려국의 북서 거점이 3일만에 모조리 초토화되며 쌈닭과 MTW를 강력한 세력으로 만들어주었다. 이후 MTW의 hkk공격과 대 한민족연합 전쟁으로 5강체제는 확고해진다. 이 5강체제는 7월 초까지 지속되는데 이 5강체제가 부족전쟁의 힘의 균형을 유지해주었다.

참고로 이 5강 체제는 춘추전국시대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전의 시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4월까지만 해도 1페이지 부족이라고 불리는 20위권 내의 부족들은 부족전쟁의 정세를 어느정도 좌우할 수는 있었지만,[10] 5강체제가 성립된 5월부터는 소위 5강이라고 불려지는 5개의 부족(케이탑,세인트,쌈닭,MTW,부족타임즈)만이 1세계의 정세를 좌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5강을 제외한 다른 부족은 5강 중 최소 1부족과 친밀하지 않은 이상 잡아먹힐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서로 먹고 먹히는 싸움을 거치면서 고구려제국, 한민족연합, 자연시dc, 은하제국, 부족7080은 점차 확연해지는 강자들에 의해 제압되어 양분이 되었다. 특히 7월 경에 있었던 곰탕 끓여먹기는 강자들에게 엄청난 양분을 제공해주었다. 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강자들은 7월까지 세력을 다진 뒤에, 목표했던 것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바로 케이탑을 권좌에서 끌어 내리는 일이었다!

3.6. 7월 3강 체제의 성립과 급변하는 정세

7월에 들어서면서 1세계의 정세도 눈에 띄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했던 많은 부족들이 강대한 세력에 흡수되거나 파괴당했다. 강대한 세력의 영역은 코어를 둘러싼 외곽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으며, 점수대나 랭커 등의 전투력에서나 케이탑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자체가 케이탑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세력 확장이 시발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춘추전국시대의 목적은 이미 달성 된 셈. 이 시기까지 케이탑은 어떤 대응을 내놓지도, 하지도 않았다.(...)[11]

케이탑은 강자의 딜레마에 갇힌 것이었다. 최강자의 지위는 게임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행보 하나하나가 모든 이들의 주목과 비난을 사게 마련이었다. 케이탑은 그런 상황을 염려한 것인지 WW1 이후로 정규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그래도 케이탑도 먹고 살아야 되니, 되도록이면 약자를 상대로 케이탑 워팀이 1대1 룰[12]을 들이대면서 무자비하게 확장을 시도하게 되었다. 북서와 남동은 위협적인 상대가 넘쳐났으니 남서의 전설 부족, 북동의 여러 부족들을 상대로 케이탑은 대운하 작업(...)에 착수했다. 전설의 경우에는 부족타임즈가 남서 대부분을 차지한 상태에서 남서 외곽에서 밀집도를 높이며 세력을 다지던 중에 그대로 케이탑의 먹이로 전락해 버렸다. 이후 비참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오피서나 랭커나 모두 처절하게 싸웠다고.(...) 하지만 정작 유력 부족과의 분쟁은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전쟁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7월에서 8월로 사이에 케이탑은 평화를 갈구받는 처지에서 갈구하는 처지로 변한다. 바로 이 시기에 3강이라 불리는 부족들이 등장한 것이다. 세인트는 남동에서의 전쟁을 통하여 명실상부한 지역 패자로 떠올랐으며, 또 케이탑과 전쟁을 치르더라도 맞상대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MTW나 부족타임즈도 세력이나 전투력에서 케이탑을 부분적으로나마 상대가 가능해졌다. 지역적으로도 3강은 케이탑을 포위하고 있었다.

3강 체제는 7월 17일 남동의 세인트와 쌈닭이 합병하여 불사조로 거듭나면서 굳어졌다.[13] 불사조, 부족타임즈, MTW라는 3강은 이제 케이탑을 상대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됐다. 3강 체제가 등장하고 베어즈 전쟁이 확전되면서 케이탑은 3강의 위협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외교관 리셋미네는 부족타임즈 등을 상대로 케이탑에 대한 불가침 조약을 거듭 확인하고 다녔다. 하지만 부족전쟁에서 배신 아니면 뭘로 먹고 살텐가.(...) 당연히 휴지조각보다 못한 약속이었다. 케이탑의 운영진은 외교적인 수완으로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였지만, 이미 상황은 그러기에는 무리였다.

케이탑은 무력에 있어서는 아직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전력누수는 각오해야 되는 문제였다. 대운하 작업도 일부 지역에 한정된 문제였으며 대다수의 코어 유저들은 루즈해지는 게임 플레이에 질려서 영농질을 하거나 현게를 타버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코어 외곽에서 들여온 신입들은 케이탑의 위세만 믿고 여러 부족들에게 어그로를 끌고 다님으로서 문제만 더욱 키웠다. 리셋미네의 무능도 한 몫했다. 그녀는 외교적 수단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란 너무 낙관적인 전망만 가지고 있었다. 여러 인물들의 전쟁 경고에 대해서 공포를 막연히 느꼈고, 이에 대한 대비도 너무 늦었다. (8월 초순에 전쟁 준비에 들어갔지만 며칠 뒤에 WW2가 났다. 어쩔....)

3강은 오래 전부터 친목을 다져왔다. 불사조, 부족타임즈, MTW 모두 케이탑에 대한 결전을 일찍이 준비하고 있었던 것. 베어즈 전쟁은 아예 3강이 추후 케이탑의 원군이라 예상 되는 베어즈를 미리 진압하기 위한 예방 전쟁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정치적 계산은 국K-1을 능가할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케이탑에게는 계속 평화 공세를 펼쳤다. 물론 이쯤되면 케이탑도 전쟁을 위한 노골적인 딴지 걸기를 자주 일으켰고, 이때마다 전쟁 기운이 물씬 피어올랐다. 그러나 실은 3강의 전투력은 케이탑을 뛰어넘은지 오래였다.(...)

게임갤러리를 비롯하여 많은 유저들과 현자들이 8월에 세계대전이 있으리라 추측하고, 온갖 떡밥들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3강의 언플은 반(反) 케이탑의 기치를 드높이거나 3강의 정당성 강화에 이용되었다.[14] 물론 3강에 대항하는 언플도 만만치 않아, 케이탑을 지지할 부족들의 리스트가 언급되곤 하였다. 덕택에 3강 측에서는 미리 준비한 계획과 연동시켜서 케이탑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더욱 가지치기 하는데 주력했다고.(...) 게다가 게임갤러리에 3강의 지도자들이 빅파이도 뿌려대면서 인기를 하늘을 찔러댔다.(...) 이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소양이다.

3강은 공격 계획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고, 뒤늦게 케이탑도 부랴부랴 공격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한 외교적 물밑 접촉은 가장 급박하게 돌아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탑은 기존의 착각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운명을 역전시키는 8월로 넘어갔다.

3.7. 베어즈 전쟁

사실 베어즈 전쟁은 1세계 춘추전국시대에 일어난 전쟁으로, 세인트와 베어즈가 레베비 진압 이후의 분쟁으로 인하여 발발한 것이 원인이다. 세인트 부족은 자신들에게 대항했던 부족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는데[15] 레베비는 가장 최초로 그 대상이 되었다. 세인트는 자신의 동맹이자, 레베비와고도 깊은 외교 관계를 가졌던 베어즈를 회유하여 패배 직전의 레베비를 압박하게끔 만들었다.[16]배신의 정석 앞에 레베비는 치를 떨면서 부족을 해체한다. 허나 세인트는 이를 좌시하지 않았고, 그 이전에 미리 부족원 명단을 만들어 놓아 옛 부족원들을 추격해 섬멸한다.

이 과정에서 레베비 부족장의 마을을 두고 세인트와 베어즈는 협의 끝에, 원한이 깊은 세인트 측에서 이 마을을 점유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역시 배신의 정석 대로 베어즈 측에서 이 마을을 먹어버리고 만다. [17] 이후 이 사건을 기점으로 양 측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으며 분쟁마다 대립각을 세웠다. 서로 원한이 깊어졌는데, 4월 말(혹은 5월 초)에 베어즈 내에서 의문의 부족 해체 사건이 터지면서 내부 혼란이 심각화된 상황을 노리고 세인트가 기습적인 선전포고를 가하였다.[18] 이후 양 측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고[19], 전체적으론 세인트가 우세한 상황을 이끌며 남동-남서 접경지 사이로 베어즈의 세력권을 몰아낸다.

이 전쟁을 제어하기 위해 부족타임즈는 7월 즈음에 베어즈와 세인트 간의 휴전을 중재하게 된다. 역시 외교로 짱먹는 부족 부족타임즈....[20][21] 실은 부족타임즈는 6월 13일~16일에 있었던 바위 부족과의 전쟁을 세인트의 중재 요청에 따라 포기했던 적이 있어서 그 반대로 세인트에게 베어즈와의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카드가 있었다. 베어즈도 부족타임즈가 전쟁을 개시했던 EFA 부족을 중도에 무단으로 흡수한 결례가 있어서 부족타임즈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 베어즈는 전쟁에 지쳤었다.

양측은 중재 요청에 응하여 휴전 협상에 나섰다. 협상 동안 일체의 공격이 금지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양 측은 조건을 어기고 교전에 나섰다. 베어즈 측이 먼저 마을 공격과 노블 시도를 펼쳤고, 이후의 해결 노력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만 이 것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조금 있어 애매하게 보이는 사안이다.(...) 어쨌든 협상은 결렬되고 부족타임즈는 무한한 쪽팔림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부족타임즈는 7월 10일 베어즈 부족에 선전포고 했다.(...) 음모론은 부족타임즈가 회담이 파토날 것을 알고 일부러 판을 짜놓고 기다린 것이다라고 하는데[22] 사실은 아는 것은 1세계 3강 핵심 멤버들 밖에 없다.(사실 바위와의 강제 종전으로 접경지역 타임즈 유저들의 불만이 꽤 많았다 카더라)

더군다나 베어즈는 거대 부족들인 5강과의 관계가 험악해지고 있는 동안에도 일부 무개념 부족원들이 몇몇 부족들을 건드렸다.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부족원에 대한 통제력이 약했던 것이 원인. 이 일로 말미암아 밀집도의 대명사 MTW도 쌈싸먹을 수준의 무지막지한 밀집도를 자랑하던 남동 변경지대의 룩폴리노미얼, 케이탑의 공세를 끝끝내 버텨낸 제국의 잔당 일부가 만든 기사단과도 이 무렵에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이 두 부족은 나름 1페이지권에 들어가던 내실있는 부족이었기에 이 곳에서의 충돌도 그다지 베어즈에게 좋지는 않았다.

거기에다가 부족타임즈의 뒤를 이어서 MTW도 7월 12일 베어즈와의 동맹을 철회하고 공격에 나섰다. (룩폴리노미얼과 MTW의 혈맹관계) 거기에 얼마 후 쌈닭이 세인트와 합병하면서 자연스럽게 쌈닭부족원들도 베어즈를 공격하게 된다. 참고로 MTW는 본래 전쟁에 있어서 명분을 매우 중시하던 부족이었으나 베어즈를 공격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기에 일단 표면적으로는 동맹 파기만 선언했다. 그러나 동맹 파기와 함께 대규모 병력을 보내 베어즈를 공격했다. 이런 단순히 동맹만 파기한 비 선전포고상태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MTW는 정식 전쟁 선언한 타임즈보다 더 많은 마을을 먹었다. 공세의 수위가 엄청났던 것. 당연히 게임 갤러리에서는 명분은 어디다 팔아먹었냐며 죽어라 욕을 얻어먹었다. 전쟁에서 명분을 중시하던 MTW가 이런 무지막지한 태도를 보일 때 쯤 되자 겜갤러들은 깨닫게 되었다. 바로 케이탑과의 일전을 대비해 3강이 대놓고 예방 전쟁을 펼친 거라는 것을 말이다. 베어즈는 케이탑과 친밀했고 3강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양분(도시락)이었다.

베어즈 부족은 3강의 공세에 직면하자,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로는 케이탑에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케이탑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노블까지 단행했다. 이쯤되면 케이탑은 무뇌집단으로 비춰질 지도 모르겠다. 8월에 전쟁 나고서야 케이탑과 베어즈는 뒤늦게 동맹을 체결하게 된다. 이때 베어즈 부족장 블러드윈드(혈풍)의 호소문은 가히 명문. 간지폭풍을 일으키면서 베어즈 부족원들이 패퇴의 위기에서 다시금 재기할 힘을 불어넣어 줬다. 블윈이 조기에 리타이어 당한 것이 안타깝다. 이후 베어즈는 남동과 남서 접경지에서 아웃 당하고 남서 외곽으로 대규모 이주를 단행한다.

여담으로 RG는 타임즈가 선전포고 하기 며칠 전에 베어즈가 합병했는데, 이후 타임즈와 MTW의 공격에 직면하면서 험난한 싸움을 펼치게 된다. 그들이 나중에 사상 최강의 워팀 중 하나로 칭송받는 북극곰이 된다.(...)

3.8. WW2 ~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1세계의 최종 전쟁이 사실상 WW2가 유일하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쟁들도 이것의 파생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08년 8월 4일 오전 08시, 3강(불사조, 부족타임즈, MTW)은(는) 케이탑에 기습선전포고[23] 하고 동시에 8시땡 공격을 펼쳤다. 룰에 의하여 야간방어보너스가 사라지는 오전 8시를 노리고 온 공격이니, 기습의 효과는 백배천배(...) 외곽의 케이탑 유저들은 대처고 뭐고 싹 다 털려버렸다. 수 일 동안 MTW와 불사조는 화려한 전적을 내면서 진군했다. 타임즈는 몸빵용이라는 자체 판단 대로 한동안 케이탑에게 조금은 밀렸다. 이 기습전은 WW1에 있었던 케이탑의 전격전을 뛰어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케이탑은 자신이 밀어버린 제국보다 더 무능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셋미네를 비롯한 몇 안되는 케이탑의 무능 겸 무뇌 수뇌부는 충격에 빠졌으며, 곧 3강의 계략에 의해 무장중립을 선언한 프리메이슨 부족이 창설되면서 그 방면으로 다수의 도망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3강과 게임갤러리는 외곽은 그렇다 쳐도 코어에는 1차대전 참여자들 같은 개념닉들이 많이 분포한다는 점때문에 완강한 저항을 예상하였지만,(이 코어에 분포하는 자들을 코어의 괴수라고 불렀다.) 그건 노스페라투 같은 54대륙이나 극코어 방면의 케이탑 랭커들이 겨우 발휘했을 정도며 케이탑 대다수 부족원들은 학살에 가까운 공격을 당했다.[24] 케이탑은 당연히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유력 부족에 SOS를 보냈다. 먼저 응답한 것은 그동안 케이탑의 전용도시락이었던 전설.

하지만 전설은 8월 5일, 공식으로 케이탑에 선전포고하고 자신들의 억압받은 세월을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가졌다.(....)
그래도 MTW가 케이탑과 관계가 깊은 홍우예향담을 저지하고자 외교 관계를 해지하고 공격을 한 것 때문에, 홍우예향담은 동일 케이탑을 지지하면서 MTW에 선전포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 8월 6일 홍우예향담은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던 동맹 타임즈에게 배신을 당했다.(...) 사실 타임즈와 MTW의 혈맹이었던 터라 당연한 수순.
여기에 결정타로 8월 8일 판데모니엄 연방은 아예 케이탑과 그 동맹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3강에 끼어들어 한 밑천 챙기자고 선전포고문에 남겼다.(...) 그래도 당시 판데모니엄 부족장이 남겼던 선전포고문은 명문이니 오해하지 말자.
이후에도 HKK는 케이탑과의 관계를 배신하고 8월 22일에 선전포고 했다.그 이전에 자신들을 쥐어패던 MTW와 전쟁이 종료된 것으로 보아서 사주에 의한 전쟁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다.(...)
8월 11일에는 북서의 아스트랄 부족은 타임즈의 횡포에 저항하고자 타임즈에게 선전포고 했다지만, 역시 케이탑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대규모 세계대전으로 가면서 역대 최대의 참전 인원을 자랑하게 된다. 수천 명이나 되는데다가 전쟁도 전 방위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적으로 케이탑 계열 부족들은 3강에 의해 패배당했다. 케이탑이라는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리기 위해 반년 가까이 힘을 비축한 자들에게 케이탑은 너무나도 무기력했던 것이다. 그들은 곧 코어의 중심지이자, 조율의 성지인 좌표 500|500 지점의 마을을 잃어버리고 극코어에서도 물러날 위기에 처한다. 케이탑 자체는 남서 외곽과 54대륙 인근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고 권좌에서 끌어내려졌다. 물론 이렇게 전쟁이 끝나지는 않았다. 케이탑의 유능한 랭커 '푸른노을'[25]의 주도로 54의 항전과 남서에서의 반격을 기획한다. 베어즈와 남서의 유력 외곽 부족들, 케이탑 잔존 세력을 중심으로 남서련이 발족되어 항전에 나섰다. 남서련 발족 날짜가 8월 28일이었으니, 전쟁 난지 20여일 만에 중심지 싹 다 밀리고 외곽으로 밀려나 항전하는 꼴이다.(...)

3강은 이에 역시 대항하여 '소나무향기'에 의한 베어즈 내 반란을 지원하여 천명 부족을 독립하게끔 만들었다. 천명은 이후 베어즈에 대항해 오랜 전쟁을 겪는다.

9월이 되자, 타임즈와 MTW는 합병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9월 4일에 부족전쟁의 어드민들은 한 부족에 몰리는 유저들이 너무 많은 것을 염려하여 한 부족에 500명의 유저만 가입가능하도록 룰을 바꾸는 '500인 제한령'을 선포했다. 남서련은 1000명이나 되는 까닭에 수 갈래로 연방 부족 체제가 되었고, 판데모니엄도 그랬다. 타임즈와 MTW는 각각 동일 행정 조직을 가지면서 하얀달, 검은달 이원 체제로 바꿨다. 9월 체제의 3강은 불사조, 달, 판데모니엄으로 개편 된다.

남서련의 등장과 '푸른노을'을 비롯한 케이탑 인원의 역습에 의하여 전쟁은 장기화 된다. 10월 혹은 11월부터는 3강 내의 분열이 시작됐다. 불사조와 판데모니엄은 외교 관계를 해지하고 사실상의 전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판데모니엄은 덩치에 비해 무능했고 불사조는 반대로 유능했던 까닭에 전쟁은 불사조의 우세 속에서 진행되었다. 2009년 중엽의 판데모니엄의 해체까지 불사조 워팀은 승승장구했다.

WW2가 가지는 의의는 바로 케이탑이 권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대신에 3강이 그 자리를 나눠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3강도 중도에 개편되지만 전체적으로 그들의 권위는 수 개월 동안 유지되었다. 그들은 반 년 가까이 절대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합종과 연횡을 반복했고 비밀 채널을 통하여 케이탑에 대한 연합전선을 거의 완벽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 사실을 케이탑이 감지하지 못하도록 하면서도 힘을 모은 것은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1세계의 춘추전국시대에서 혼란스럽고 무질서였던 공간은 이제 강력한 거대 조직들의 힘겨루기라는 장면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넷 상에서 사람들은 강제성이 없는 조직에 헌신하면서 승리와 영광을 위해 8월의 역전을 기다려왔다. 어떻게보면 잉여로운 자들의 한심한 소모일지 모르겠으나, 바츠해방전쟁보다 더 위력적인 사이버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절대권력을 위한 무한 투쟁.
부족전쟁 1세계의 부족들은 부족 간의 질서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다. 온갖 음모술수와 영웅적인 전투가 있어왔다. 특히 케이탑이 화려하게 제국을 제압하며 절대권력에 가까웠졌으나, 이후의 실수로 인하여 3강에 의해 몰락하는 과정은 대하서사에 가깝다. 3강의 인원들도 정말로 대단하다. 오죽하면 부족 오피서는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채용해도 아깝지 않다는 평을 받겠는가.(...) 현재까지도 3강의 비밀스러운 계획들이나 음모들은 흑막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자체를 조율한 자들이다.(...)

하지만 3강이 케이탑을 몰아내고 코어에서 권좌에 올랐어도 지위 자체는 오히려 불안스러웠다. 케이탑은 패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항전자와 지지세력들이 남서에 항전을 위한 연대를 했고, 북서에서도 최강의 북극곰 워팀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3강을 위협하고 있었다. 달 부족은 이런 상황에 남북으로 협공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북방의 검은달은 위력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남방의 하얀달은 08년 말에는 핵심 밀집지역이던 53대륙을 상실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말았다. 불사조는 남동 외곽에서 세력을 키운 개마무사단 부족과의 전쟁에 돌입하면서 다수의 적을 맞이하게 됐다. 남서련과 그들의 세력은 생각보다 몹시 강력했기 때문에, 2009년 초의 세계멸망까지 전쟁은 계속 된다.

08년 9월부터 09년 2월까지의 5개월은 길고 지루한 공방전이었다. 3강과 케이탑 잔존 및 지지세력의 전쟁은 몹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어느 측에 확실히 우세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많은 유저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5개월 사이에 열린 2세계는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케이탑 자체가 거진 붕괴된 상황에서, '푸른노을'에 의해 제3세력인 단군[26]이 창설되자 사실상 케이탑의 명줄도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8월 후반부터 3강의 멤버들의 케이탑 몰락으로 자신의 원을 풀고(?) 현게를 타는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이것은 전력누수로 이어졌다. 전력에 구멍이 생긴 달과 불사조는 이곳저곳에서 얻어터졌고 수습하기 위하여 랭커들과 오피서들은 더욱 노예질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겪었다. 피로 누적은 자연적으로 그들마저 현게를 타게끔 만들었고, 상황은 악순환이 됐다.(...) 물론 건강 걱정 안하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그리고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세계의 끝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3.9. 시나브로의 부활

카타르시스의 멸망 이후로 게임 갤러리의 떡밥들은 식어버렸다. 유비 성자의 경우에는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끝내 겜갤러에 의해 현게포를 맞아버렸고, 조율신 레벨리온은 WW1에 이미 케이탑에 의해 현게포를 맞음으로서 사라져서 게임 갤러리는 시나의 유지를 잇는 자가 사라진 것이다.[27] '몽키스핀'에 의한 재건 시도가 있었지만 그가 축출당한 후에 그의 부족은 파멸하고 말았으니 어느 누구도 시나가 다시 이후의 세계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캐쉬떡칠'에 의한 시나브로 재건은 예상 밖으로 개념랭커들의 유입이 진행되면서 활발하게 진행된다. '김럭키'를 위시한 신진 세력들은 오히려 '캐쉬떡칠'의 막무가내식 운영 등을 지적하면서 그를 몰아내고, '김럭키'를 부족장으로 하는 지도부를 세운다. 리턴 부족과의 합병을 시도하면서 시나브로는 구 시나브로와는 다른 이미지로 1세계에 데뷔를 한다. 과거의 구 시나브로가 머릿수가 많지만 지휘통제나 전투력이 제로에 가까웠다면, 신 시나브로는 소수이지만 지휘통제와 전투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리턴과의 합병 결렬 이후 전쟁에서 신 시나브로는 승리를 거둘 뻔 했으나, 북삼련(아스트랄+홍우예향담+북극곰)의 압력에 의해 전쟁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럭키'는 부족장에서 물러나고, 대신에 '정만웨'가 직위에 오른다. 신 시나브로의 황금기를 이끈 사람은 바로 '정만웨'다. 그는 '김럭키'가 북삼련의 압력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달 부족에 대한 공격에 합의한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당시에 북방의 강자인 북삼련과의 전쟁에 나섰다. 외곽 지역에서 신 시나브로는 고립되어 있었음에도 굉장히 선전하면서 북극곰 정예 워팀의 공격까지 방어하는 기력을 토해낸다.[28] 하지만 신 시나브로의 뉴비들은 고행의 길이나 마찬가지. 이 까닭에 '정만웨'는 자신에게 비협조적이던 달 부족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당히 고생했다.

하지만 '정만웨'가 계정이 밴 당하고 또 그의 부족을 달에 귀속시키려던 시도까지 실패하자 결국 신 시나브로 자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 이후 북삼련은 이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여담이지만 '정만웨'를 비롯한 이 시기의 신 시나브로 멤버들은 이후 4세계로 옮겨가 새로운 전설을 썼다고 한다.(...) 그 시점이 되었을 무렵엔 시나브로는 아예 종교가 되었고 그들은 광신도가 됐다. '정만웨'의 육성 지도문이 있으며, 이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정도. 4세계의 시나의 위세는 한때 대단하기도 하였다.

3.10. 몰락의 전조들

3강에 의한 새로운 지배체제가 등극했다고 하지만 기실 그들이 지닌 통제력은 지난 케이탑에 의한 억압된 세계보다는 많이 약화되어 있었다. 3강이 8월의 역전에서 보인 파괴력이 무시무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세력을 가진 신 외곽 세력들은 일찌감치 3강에 적대하고 있었다.

남동에서 외곽의 일개 대륙을 완벽히 점거하던 룩폴리노미얼과 나름 세가 강하던 유린이 합병한 개마무사단은 본래는 불사조와 친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양 측의 분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달은 끝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쪽은 나름 3강과 모두 외교 관계를 수립해 있었고, 8월의 WW2에서도 3강 측에 협조하며 전쟁에 참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쪽 방면의 전쟁은 추후 다시 설명하겠지만 부족전쟁의 서비스 회사인 인노게임스의 어드민 관리 문제를 노출시키게 되었다. 일종의 썰에 불과하지만 양 측은 어드민으로 전쟁을 치렀다.

한편 북동은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3강에 진입하는데 성공한 판데모니엄은 불사조와 이전부터 대립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케이탑 선전포고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지만, 역시 양 측의 분쟁 수위는 날로 증가하여 도저히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 결국 불사조는 판데모니엄과 외교 관계를 해지하고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 돌입했다. 남동과 북동의 대결로서, 아마 이후 전개되는 부족전쟁 전쟁 스타일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방위별 전쟁으로서 양 측은 투사될 수 있는 전력을 여기에 집중했다. 헌데 이 과정에서 판데모니엄의 조직력은 몹시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통제력의 저하로 인하여 08년 12월 8일에는 평등한 세상 부족이 반란을 일으키고 줄넘기 부족이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이전부터 각 연방 부족 간 통일성은 해체되어 있었는데, 예를 들어 판데모니엄 주축 세력이었던 판데-아가레스 15대륙군[29] 유저 대부분이 적대 부족인 홍우예향담으로 이적한 것부터 알 수 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외교 관계를 가졌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본 부족의 통제에 벗어나 있기도 하였다. 무스펠하임의 경우에는 완전히 독립 부족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불사조와의 전쟁은 막대한 물량 투입에도 불구하고 판데모니엄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래도 규모가 규모인지라 물량을 바탕으로 하여 불사조의 공격을 끊임없이 방어하였다.

북서도 많이 시끄러웠다. 이곳은 구 MTW, 당시에는 검은달이 통제하던 곳이었지만 외곽으로까지 힘을 뻗칠 규모는 아니었다. 때문에 이곳에는 외곽 명문이 탄생했다. 아스트랄, 홍우예향담, KR공화국과 같은 부족들부터 북극곰까지 세력 분포도는 다양했다. 그렇지만 달 부족에서 이 지역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구 타임즈는 MTW와는 따로 북서 통제를 위한 계략을 실행했었다. 앞서 4월에 타이탄 부족을 흡수하여 북서 거점을 확보한 그들은 위협적인 KR공화국을 파멸시키기 위해 여러 부족과 연합하여 KR공화국을 공격했다. KR공화국은 패배했고, 사실상 타임즈의 식민 부족으로 전락하게 됐다. KR공화국은 전쟁 이후 리턴이라 개칭하고 친 타임즈 노선에 따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KR공화국에 저항하며 타임즈가 친선한 아스트랄과 몇 북서 부족들은 타임즈과 불안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8월에 가면서 불거졌고 무엇보다도 케이탑이 아스트랄과 홍우예향담에 지속적으로 추파를 던진데 이어서 MTW이 홍우예향담을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외교 관계를 해지하는 것으로 북서 변방은 일제히 친 케이탑 노선으로 전환된다. 여기에 타임즈가 홍우예향담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MTW의 편을 들었다. 이 시점부터는 아스트랄-홍우예향담-북극곰이라는 북삼련이 탄생했다. 그들은 검은 달과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헌데 문제는 남서가 심각했다. 애초에 타임즈 남방은 영농과 합병으로 세력을 키운 곳이었고 이 때문에 그들 내부는 물론 3강 지휘부에서도 전투력 관련 문제가 시시때때로 언급되곤 했었다. 그런데다가 타임즈는 전설이 세력을 불려가던 시절부터 이미 남서 방면의 확장이 소극적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때문에 외곽 부족으로 엔젤하이로, 전설 등의 다양한 부족들이 난립해 있었다. 이들은 타임즈와 친선 관계를 가지고 각자 대립했다. 타임즈는 이를 방기했고, 간혹 위기 상황에 개입하여 분쟁을 중재하거나 강제적으로 진화시키려고 하였다. 남서는 8월 이전까지 타임즈에 의한 지배를 인정하던 분위기였고, 타임즈의 유능한 오피서들도 이를 위해서 여기저기 업무를 맡았었다. 엔젤하이로의 경우에는 북서에서의 패퇴 이후로 타임즈가 나름 신경 써서 배려를 해주기까지 했다.[30] 그러나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전설 부족이 남서 외곽에서 패권을 잡아가는 모습에는 단호한 의지로 개입 시도를 하기도 했었다. 타임즈는 8월까지는 남서 부족들을 외교적으로 통제하는데는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8월의 대전쟁에서 타임즈의 통제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엔젤하이로와 윈터러는 이 과정에서 타임즈를 배신하여 친 케이탑 노선에 가담해버렸다. 다행히 전설이 케이탑에 선전포고하면서 타임즈와 적극적으로 연대하게 되었지만, 전설은 이 과정에서 타임즈 남방의 전력이 몹시 빈약하다는 사실을 간파해버렸다. 타임즈 남방은 WW2 초기에도 케이탑에 고전했고, 케이탑의 아카데미인 K2를 빠르게 제압하지도 못하였다. 오히려 전설보다 전투력이 떨어졌다. 일설에 의하면 양 측은 협의 하에 각 작전 목표를 수립하고 공동 작전을 펼친 적이 있었는데 전설 측은 거의 대다수의 목표를 노블한데 비해 타임즈는 반도 못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다가 케이탑과 베어즈의 패잔병들이 8월 말에 남서련을 발족하고 남서 외곽에서 세력을 다시 다지게 되자, 이것을 제압하고자 무리하게 싸움을 펼쳤다. 이때부터 하얀달(타임즈에서 MTW와의 합병 이후 이름을 개칭.)의 남방 세력 괴멸이 시작되었다.

타임즈의 변경들은 세력이 약해 빠르게 근거지를 확보한 케이탑 세력들에게 제압당했다. 타임즈 변경 유저들은 일부가 항전했지만 다른 일부는 케이탑 세력에게 항복하고, 이후 협조하기까지도 했다. 이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하얀달 남방의 중심 근거지인 53대륙 등으로부터 대대적인 공세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여기에 전설과의 분쟁까지 겹치기 시작,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08년 말엽에는 하얀달의 실책과 함께 53대륙 근처까지 침탈당하고 남방 근거지 전체가 공략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변방에서 있었던 부족원 항복 및 배신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심지어는 핵심 오피서 내에서도 진즉에 케이탑 측으로 전향해 협조한 이들도 있었다. 흠좀무. 무엇보다도 08년 말부터는 달은 1년 내내 육성했던 오피서들이 대거 현게를 탔다. 셋 이상의 정예 오피서가 1달 사이에 현게포를 맞았다. 이후 오피서 출혈은 지속됐다. 여기에 관료제의 고질적인 병폐들도 나타나고 만성적인 인력 부족까지 심화되면서 타임즈 이래로 내려오던 정교한 관료제 시스템은 정말 붕괴되어갔다.

하얀달이 맥을 못 추리는 상태에서 케이탑 세력들은 두 차례의 이합집산을 통해 구 타임즈를 구축하고 강력한 지방 세력을 형성하였다. 케이탑의 사실상 지도자 ‘푸른노을’과 엔젤하이로의 부족장의 연대로 탄생한 남서련은 거의 모든 외곽 부족들이 남서련에 가담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문제는 엔젤하이로의 부족장[31]이나 외곽 오피서들이 워낙에 실력이 부족했던지라, 세력을 숫자로 채우려고 했고 거의 모든 외곽을 남서련에 가담시켰다. 케이탑은 이 사실을 싫어했다고 한다. 더욱이 남서련의 정체성도 모호하여 케이탑 세력의 연합이라는 게 맞다고 봐야 된다. 북극곰이나 북삼련 등이 가담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푸른노을’은 남서련에서 여러 인재들을 발견했고, 다수를 포섭하는데 성공하였다. 애시 당초 ‘푸른노을’에게 남서련은 먹다 버릴 양분에 불과했던 것. 하얀달만큼 저열한 남서련 다수에게 기대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다가 남서련의 과도한 확장으로 남서에서의 도시락이 줄어들었다. ‘푸른노을’은 또 다시 세력을 창설하여, 제3세력으로 등장하고자 한다. 이미 위와 같은 문제로 08년 11월에 남서련의 SWU는 레퀴엠으로 개칭하고 탈퇴했었다. ‘푸른노을’은 11월 30일에 케이탑, 베어즈, 매의 눈, BWSU를 데리고 남서련을 탈퇴해 단군을 설립한다. 이와 함께 북극곰도 남서련을 탈퇴(북극곰은 단군과는 동맹 노선만을 유지하면서 북서 방위의 소수정예 명문 부족으로서의 독자 노선을 걷는다. 단군은 판데모니엄 연방과 우호적이었지만, 북극곰은 혈맹 홍우예향담과 함께 판데모니엄을 깐다)했다. 이후로 남서는 3개 세력을 분할되었다. 근거를 다수 상실하여 별 영향을 가질 수 없는 하얀달과 다수의 인원을 보유한 남서련(일련의 탈퇴 사건 및 통제력 약화를 겪으면서 아미쿠스로 개칭하고 통제력을 강화했다.)과 정예 중에 정예로 거듭한 단군이었다. 여기에 모두에 적대하는 레퀴엠도 끼어들었다. 어쨌든 이들은 서로 대립하고 연합하면서 남서의 분열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남서련-아미쿠스는 워낙 실력들이 열등했고 통제력도 약해 이후로도 분리독립이 발생하였다.

이 상황은 08년 12월까지 남서가 사실상 케이탑 세력에 의해 빼앗기는 과정이었으며, 달은 어떠한 반전도 행하지 못하였다. 불사조는 이 사태에 개입해야 되었지만 달-불사조 경계선의 등장과 남서-남동 방면에 남서련과 단군 세력을 커버하는 다른 친 케이탑 계열의 부족이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는 터라 진출하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불사조는 북동과 남동 외곽에서 각각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08년 8월의 반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쟁은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년 가까이의 3강은 다시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푸른노을’은 유능했으며, 그가 이끄는 단군은 달과 불사조 모두를 괴롭혔다. 그렇지만 달과 불사조는 그의 유화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엘리전을 각오하고 싸웠다. 3강도 나름의 굴레에 씌인 것이었다. 상식적인 부족전쟁 오피서라면 이쯤에서 전쟁을 멈추고 주변의 위기를 수습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귀신 들린 마냥 싸웠다.[32]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세계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음에도.

3.11. 세계의 끝

부족전쟁에서 절대 있어서는 말아야 하는, 아니 모든 게임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아마도 관리자가 폭주하는 사태일 것이다. 관리자는 절대적인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게임의 밸런스를 지키고 흥행을 유도해야 되겠지만, 불행하게도 부족전쟁 한국서버 어드민들은 그러하지를 못했다. 어드민들은 특정 부족을 밀어주거나 부당한 운영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금전 관련으로 문제도 일으켰다. 여러 문제들로 인해 축출된 어드민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어만 갔다. 인노게임스에서 파견한 어드민 총괄 담당자인 ‘코알라’[33]는 몹시 무능하여 문제를 방치하거나 아님 직접 악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코알라’는 부족전쟁 한국서버의 흑역사이자 대재앙이라 할 수 있겠다.

어드민들 자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들이 부족전쟁 플레이어라는 사실이다. 특정 부족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부족전쟁 1서버에서는 누가 어느 부족에 플레이하는 어드민이라는 소문이 심심하면 떠돌아다녔다. 초기에는 어드민들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플레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의 금기가 깨지게 된다. 어드민들은 어드민툴을 이용하여 모든 유저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었으며, 서버를 조작할 수도 있었다.[34] 당연하게도 어드민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적대적 부족의 정보를 캐내거나 정보를 조작하였다. 다행히도 비밀번호는 알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입증되지 않은 사례다. 그래도 혐의가 의심되는 다른 건수가 있는데, 바로 어드민이 규정을 어긴 플레이어를 처벌하는 권한을 과도하게 남용하는 행위였다. 이것은 어드민의 처벌 규정 자체가 애매모호한 탓도 있었고, 이 때문에 처벌 규정과 밴 수위를 두고 지금까지도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긴 하다. 더욱이 플레이어들 스스로가 규정을 지키지 않고 온갖 편법을 이용하여 어드민들의 심기를 건들인 탓도 있다. [35] 그러나 불사조-개마무사단 전선은 필요 이상의 밴이 남발하였으며(물론 실제 양 측이 시팅 계정 등의 문제로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많던지 등의 이유가 있긴 하다.) 이 결과로 양 측의 주요 전선은 회광으로 넘쳐났다. 일설에서는 불사조와 개마무사단 양측에 어드민이 있다고 하며, 양 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어드민은 직접 개입이라 의심되는 행위들을 여러 번 저질렀다. 밴 하나로 랭커 계정이 아웃되면 그 자체로 전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족전쟁에서 어드민의 부당 개입은 당연히 지적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어드민들은 이것저것 사고를 너무 많이 쳤다. 어드민 ‘헷지호그’는 겜갤에 나타나서 유저와 키배를 벌인다던지 등의 기행도 있었다. 하지만 어드민들도 나름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땡전 한 푼도 받지 않는, 무보수 노동자였던 것이다.(....) 받아봤자 부족전쟁 계정에 프리미엄 달아주는 것이 고작이고 나머지는 하루를 꼬박 부족전쟁에 투자하며 6만 이상의 계정들의 규정 위반을 감독하고 처벌하며 유저와 대화도 해야 되는 열악한 실정이었다. 본사에서 그들에게 뭔가를 보내주긴 했는데, 달력이라나 뭐라나. 정말로 본사에서 그들을 챙길 생각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어도 홀대가 심하긴 했다. 그런데다가 어드민 총괄 담당자인 ‘코알라’는 무개념하게도 그들을 시시때때로 갈구었다. 무능한데 이어서 자신의 일까지도 모두 한국인 어드민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래놓곤 ‘코알라’는 자신의 업무를 완수했다고 본사에 보고했다. 당연히 본사에서는 ‘코알라’의 업무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걸 한 두 번이어야지, 수개월 동안 이러고 앉아있으니 어드민들은 미치고 돌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코알라’가 한국인 어드민들에게 주는 수당이나 보상까지도 가로챘다고 한다. (http://themk.tistory.com/30?srchid=BR1http%3A%2F%2Fthemk.tistory.com%2F30에서 언급되니 참고바람.)

결정적으로 어드민들과 유저들이 모두 분노하게 만든 일은, ‘코알라’가 벌인 프리미엄 계정 관련 논란이었다. 모 유저가 기간제 프리미엄 계정을 구매하였는데, 정작 프리미엄 계정은 자신이 구매한 절반에 못 미치는 기간만 적용된 것이다.(말인 즉 프리미엄 계정을 100일치를 질렀다면, 50일치 밖에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해당 유저는 어드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보상을 요청했다. 어드민들은 사실을 파악하고 알맞은 대응을 했다. 돈 관련 문제이니 그들도 성실하게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코알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건을 나중에 보고 받고 내린 조치는 해당 유저의 영구 밴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어드민들은 ‘코알라’ 몰래 해당 유저의 밴을 풀고 프리미엄을 정상 지급한 뒤에 은폐했다. ‘코알라’는 멍청하게도 이 사실을 몰랐다. 어드민 ‘헷지호그’는 겜갤에 이런 상황을 알렸고 ‘코알라’는 한동안 겜갤에서 영구까임권을 얻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어드민들은 이후로 계속 된 ‘코알라’의 막장 행각에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도찐개찐이란 비난은 받아야 된다. 지들도 그랬는데 뭘.(...) 어드민들도 자신들의 책임을 버려놓고 ‘코알라’에게 몰아가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코알라’의 막장 짓은 종래의 것들을 초월하는데다가 무보수 노동이라는 점에서 어드민들은 너무 과도하게 피로가 몰려 있었다. 더군다나 1서버가 8월의 대전쟁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이후에 열린 2,3세계는 1세계의 빛에 가려져 제대로 흥행을 이끌지 못하고 있었다. 어드민들도 지쳐 있었다.

08년 중엽부터 부족전쟁이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금지 판정을 받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오게임만 하더라도 몇 번이나 등급 판정을 받지 않고 게임을 서비스했단 이유로 정보통신부로부터 사이트를 차단당한 전력이 있었다. 인노게임스도 이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무단으로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었다. 뭐 굳이 이런 게임을 딱딱한 법률도 제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른의 사정. 프리미엄 계정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못 걷어서 안달 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튼 게임물등급위원회가 08년 말에 드디어 등급 심사 대상에 부족전쟁을 올리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됐다. 어드민부터 이 사실을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했지만 ‘코알라’는 아웃 오브 안중. 애당초 어드민도 부족전쟁를 정통부나 겜등위에 신고했다는데 어쩌라고.(....) 따라서 오게임이 했던 대로 부족전쟁도 슬슬 차단에 대비해야만 했다. 우회 접속 사이트를 마련한다던지 프록시 접속에 대해 임시적으로 허락한다던지 등으로 말이다.

09년 1월 15일 어드민 ‘헷지호그’는 프록시와 DNS 우회 접속에 대한 룰을 변경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프록시, DNS 우회 접속을 전면 금지시켰다! ‘’‘뭐하자는 거야!’‘’ 이것은 후일 ‘코알라’에게 보고되지 않은 어드민의 제멋대로 룰 변경이라고 알려졌다. 이후 벌어질 일들은 ‘코알라’는 사건이 벌어진지 한참 뒤에야 보고받았다. 그렇지만 룰 변경 공지는 금방 사라졌고, 올라간 상태에서도 유저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아니, 0.001%도 몰랐다고 해도 된다. 1,2,3세계의 유저들은 싸우느라 바빴거든.(....) 초치기 할 시간에 공지를 볼 여유가 어디 있는가? 이것도 어드민 ‘헷지호그’가 준비한 계략이었다고 한다.

드디어 09년 1월 22일 전후로 정통부에서 차단이 시작되었다. 겜등위는 이미 일주일 전 즈음에 부족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모든 유저들의 숙원인 강제 현실게이트가 작동된 것이다! ‘’‘이것이 진엔딩!’‘’ 차단은 SK 브로드밴드에서 먼저 했고, 그 뒤를 이어서 KT와 지방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까지 모두 완료되었다. 2~3일 정도를 걸쳐 진행되었으며 이 시간 동안 겜갤은 그야말로 멸망 앞에 놓인 종자들이 어떤지를 보여주었다. 관련 기록은 수시아의 찌질열전에서조차 실렸을 정도니, 참고하도록 하자.(....)

이 과정에서 당연하겠지만 유저들은 프록시나 DNS 우회를 시도하였다. 어드민의 융통성 따위는 내다 버린 채, ‘헷지호그’는 이를 좌시하다가 이튿날에 3천 명을 먼저 밴 했다. 이들 모두가 프록시와 DNS 우회로 인한 규정 위반이라고 알렸다. 1월 15일에 있었던 규정 변경을 몰랐던 유저들은 당연히 들끓었지만 ‘헷지호그’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또다시 오히려 만 명 이상의 유저들은 다시 밴 해버린다.(...) 이것은 22일부터 24일 사이에 어드민 ‘카브놋’에 의해 1,2,3세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차단은 1,2,3세계 순으로 따랐다. 특히 이때가 설날 연휴가 겹쳐 있어서 유저들은 충격과 공포. 대혼란을 겪으면서 기쁜 마음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이 쯤 되면 어드민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대강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어드민들이 게임을 망치려고 드는, 만화나 소설에서도 정말 찾기 어려운 진귀한 사례가 일어난 것이다. 어드민 ‘헷지호그’는 겜갤 등지에서 아예 대놓고 자신이 의도적으로 규정을 변경하여 밴의 사유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아니, 사실은 3천 명 밴부터 그런 적용은 없었다. 광역 밴으로 1세계 유저들은 단 번에 몇 명의 생존자[36]를 빼고 남김없이 밴 당했다. 2세계는 저 점수대를 제외한 모두가 밴 당하고, 3세계는 1페이지 부족들이 밴 당했다. 차단 이유도 처음에 공지되었던 프록시, DNS 우회 위반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는 기괴한 말들로 바뀐다. 인류보완계획이니, 현게 타서 여친이나 만들고 희희덕대라는 말까지 적었다.(...) 어드민들이 미쳐 날뛰는 것이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헷지호그’나 ‘카브놋’이나 그런 말들을 하면서 이를 노예 해방이라고 자축했다. ‘헷지호그’는 스스로를 링컨에 비유하는 병크도 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에이브러햄 헷지호그(....) 헌데 진심으로 감사한 사람들도 있다. 흠좀무.

차단 상태에서 밴까지 먹게 된 수 만의 유저들은 반 이상이 접속을 포기해버렸다. 밴을 당하면 바로 계정이 삭제되지 않고 일정 기간 방치되다가 삭제되는 특성 상, 2월 초순이 넘어가면 1,2,3세계의 많은 지역이 회광이 될 위기에 처하였다. 그런데다가 어드민툴에서 밴은 대단위로 가능하더라도 언밴은 한 번에 1인 밖에 되지 않아, 처리가 몹시 어려웠다. 1세계 유저들은 노예해방을 핑계로 엄청난 수가 현게를 탔다. 여기에서 수뇌부가 증발한 경우는 바로 달 부족. 오피서고 수뇌고 죄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사건 이후 3분의 1에 달하는 유저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방치 된 계정들까지 더하면 괴멸 수준에 가깝다. 실제로 밴이 풀린 뒤로 많은 유저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만큼 부족전쟁에 심신이 지쳤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어드민들의 행각에 진심으로 분노했던 거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1월 31일부터 어드민 ‘바알’과 ‘Drakedog’ 가 언밴 활동에 나섰다. 어드민이라도 다 나쁜 놈만 있는 건 아니다. 이게 더 나쁜 거 아닌가?‘바알’의 경우에는 언밴 활동을 위해 사방팔방 활동했다. 집이 사용하는 인터넷은 차단당하는 바람에 아직 차단되지 않은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피시방에서 며칠 동안 언밴만 했다는 전설이 있다. ‘Drakedog’는 직접 언밴리스트를 작성해 하나하나 언밴을 진행했으며, 추가적으로 언밴신청을 받기까지 했다. 그나마 2월 2일에 어드민 ‘치킨’이 언밴 매크로를 만들어서 전체 밴을 해제했다. 물론 이 탓에 진짜 밴 먹는 유저들까지도 졸지에 면죄부를 부여받았다. 2월 3일에는 부족전쟁의 우회 접속로가 만들어졌고, 프록시나 DNS 우회가 전면 허락되었다. ‘헷지호그’와 ‘카브놋’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코알라’에 의해 축출되었다. ‘헷지호그’는 잠적했고, ‘카브놋’은 제 본업 오게임[37]으로 돌아가려다가 군대를 갔다. 결국 일단의 사건은 일부 어드민의 헌신적인 노력 덕택에 1세계가 단체로 멸망하는 꼴은 겨우 면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1세계는 정말 끝날 뻔 했다. 아니, 끝났으면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8월의 반전과 이후의 공방, 그리고 재역전이라는 지지부진한 내용보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8월의 반전으로 끝났다. 어떻게 보면 1세계의 생명력은 이 전쟁을 끝으로 끊겼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1세계는 살아남았으며 유저들은 다시 돌아와 전쟁을 지속했다. 차단 사건으로 인하여 1세계의 정세는 다시 크게 변동했다.

3.12. 3강 체제의 종말

어드민이 일으킨 광풍이 지나간 다음으로 09년 5월에 경향게임스가 판권을 사들이고 서비스를 대행하기 전까지는 인노게임스는 게임 운영에 손을 놓아 버리게 되었다. 정통부 차단을 겪으면서 인노게임스는 경향게임스에 한국 서비스를 맡기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논란의 결과로 어드민 ‘헷지호그’, ‘카브놋’이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후에 얼굴마담은 ‘바알’과 ‘치킨’그리고 'Drakedog'가 전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통부는 우회 접속을 다시 막았다. 결국 어드민들은 ‘헷지호그’가 묶어버린 우회 접속 금지를 해제했다. 경향게임스가 서비스를 재개하기 이전까지는 프록시, DNS 우회 등이 허락된 것이다. 이로서 5월 전까지는 종래의 규정이 거의 무력화 되었다. 우회 접속을 악용하여 다중 계정을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해킹하는 사례도 여럿 나타났다. 무법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09년 2월이 되고서도 다수의 유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옥 같은 게임에서 해방되었으니 냉큼 접은 것도 있고, 차단-밴 사태로 인해 악감정이 쌓인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3강 측 인원들은 숙원이었던 케이탑 공략을 성공리에 치러서 더 이상 이전만큼의 열의가 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달과 불사조의 랭커 다수가 현게를 타버렸다. 달은 불사조의 몇 배로 아주 심각한 대타격을 입었는데, 아예 수뇌부 전체가 증발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차단-밴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달의 수뇌부와 관료진들은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렸는데, 이 과정에서 신뢰받지 못한 이들까지나 들이거나 하는 등으로 제5열을 스스로 심은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기존의 명망 높은 수뇌들과 유능한 오피서들이 사라짐으로서 달의 조직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달의 본 카페인 MTW에 들어가서 물어본 결과로는, '전부 질렸다'라고 한다. 옛 MTW의 주요 근거지였던 44대륙에서는 랭커 다수가 증발하고 심지어는 대륙의 지휘체계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비록 북방군이 유지되고는 있었지만, 이들도 북극곰의 적극적인 남진에 차츰 전선이 뒤로 밀려나고 있어 패전 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결국 부족장마저 현실 사정으로 활동이 거의 정지되었다. 이것은 달의 지도부가 완전히 없어졌음을 의미하였다. 단군과 북극곰은 이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53대륙을 완전히 점거한 이후에 54대륙의 달 세력들을 구축시키고, 이윽고 44대륙으로까지 진공했다. 북극곰은 33대륙을 상당수 침식했다. 지휘가 끊긴 달 유저들은 각자 항복하거나 계정을 버리고 게임을 접었다.

단군을 주도한 ‘푸른노을’은 몹시 열성적인 사나이였다. 외부에 알려진 것은 부족타임즈와 케이탑이 공동으로 부족7080을 공격하면서 케이탑 측 워팀에 ‘푸른노을’이라는 인물이 알려졌다. 이후로 3강에 공격에 그는 조기에 무너졌고, 엘리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후 계정을 복구하거나 갈아타는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케이탑 몰락 전후로 케이탑과 주변 세력들을 통솔하는 인물로 급부상했다. 그의 주도 하에 세워진 단군은 사실상 제3세력이 되었고, 케이탑과의 연관성도 단절되었다. 그러나 달과 불사조는 단군을 케이탑의 후신으로 간주하여 재선전포고 했다. ‘푸른노을’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단군을 이끌고 이후 1년 넘게 전쟁을 계속했다.

‘푸른노을’과 단군은 달을 주로 공략하고 불사조와는 대치 상태를 계속하면서 세력을 규합하였다. 개마무사단을 쥬신으로 개칭시켜 세력권에 넣었고, 무스펠하임도 세력권에 넣었다. 남서 일대에서도 남서련 창설 당시부터 끝까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했었던 로젠다로 등을 흡수했다. 북극곰을 중심으로 한 북삼련과의 연대도 잊지 않았다. 북삼련은 북서 외곽 지역을 청소하면서 달 북방군을 돌파하고 계속 남하했다. 본인 실력도 빠르게 성장하여 상당한 랭커로 자라났다. 이와 함께 그가 선발한 남서련 등 출신의 멤버들 역시 실력이 몹시 출중해 여기저기에서 격전을 치렀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푸른노을’은 끊임없이 계략을 준비하고 전투를 겪으면서 자신의 전략을 이루었다. 달이 최종 붕괴되고 불사조와의 최종 전쟁이 되는 시점까지 그는 격렬하게 최전선에서 싸웠다. ‘푸른노을’이 있었기에 케이탑 축출 이후의 케이탑 세력들은 지금에까지 존속될 수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최종 전쟁이라는 대업에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푸른노을’이 이전 3강 멤버에 월등히 앞선다는 것은 아니다. 주지해야 될 사실은 ‘푸른노을’이 활동할 시점에서 3강의 주요 멤버들, 무엇보다도 케이탑 몰락에 최선을 다했던 불사조나 달의 멤버들은 대부분 현게를 타버렸다. 그들은 케이탑 몰락이 숙원이었고, 그 숙원을 이룬 시점에서 더 이상의 게임은 의미가 없었다. 사실 ‘푸른노을’은 차단-밴 사건 이전까지도 불사조 랭커 몇에게 농락당하기도 했고, 부족7080 전쟁에서 끝내 악연이 되었던 ‘sarada’에게도 밀리는 입장이었다. ‘푸른노을’은 제대로 3강 전성기와 상대하지 않았다고 봐야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시기의 3강의 몰락은 눈 여겨야 될 사안이다. ‘푸른노을’과 단군의 활약, 그리고 차단-밴 사건으로 촉발 된 대규모 현게는 3강의 전력을 약화시켰다. 무엇보다 불사조와 판데모니엄이 서로 전쟁을 치르면서 사실상 단군과의 전쟁은 달과 불사조가 전담해야 됐다. 그렇지만 달이 빠르게 붕괴됨에 따라서 불사조는 위기에 몰렸다. 허나 불사조 자체의 힘은 강력하여 구 개마무사단인 쥬신을 압도하고, 판데모니엄을 격파했으며, 북서 방면으로 침공했고, 남서에서는 단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09년 5월까지 불사조는 달에 대해 그렇게 배려를 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배신하지는 않았으나, 외교 라인이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다. 달의 오피서들이 사라졌고 불사조의 오피서들은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더군다나 양 측은 서로의 분쟁을 제어하기 위해서 접경되는 지역에 경계를 그어버림에 따라 지원의 가능성도 없었다. 달이 최악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에도 불사조는 달 출신 망명자 몇 명을 받고는 끝났다.

달의 회생시도는 몇 번 있었다. 부족장 부재 사태에서 북동 방면에 책임을 맡은 유저가 부족장의 동의하에 평화적인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의 주도는 얼마 가지 못했고, 그마저도 활동이 멎어버리면서 부족 자체의 회생 가능성은 사라졌다. 비록 하급 오피서 여럿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어떠한 대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시나브로와 불사조와 합병하여 불사조가 세 세력을 지휘해야 된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그러나 달 오피서의 무능, 불사조 측의 상황 판단 미스로 인하여 이 시도는 불발되었다. 이것으로 달의 마지막 시도는 끝났다. 검은달은 쿠데타 사태에서 정리되어 하얀달에 흡수되었고, 하얀달 유저들은 북방군 주도로 신의명가로 독립하게 된다. 이후 신의명가는 단군과 붉은곰에 항복하여 한동안 괴뢰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됐다. 달에 소수 부족원이 남아 항전했지만 이마저도 거의 정리됐다. 이로서 달은 경향게임스 서비스 이전인 3월 즈음에 멸망해버렸다.

판데모니엄은 이보다는 좀 더 오래 갔다. 대부분 간부들이 현게를 타자, 한국 최초부족이었던 HKK와[38] 북동 방위의 중소 부족 발해 부족원들로 부터 간부를 수혈해서 쓰기까지 한다. 하지만 판데모니엄을 이전 간부진과 비교할때 비교적 의욕을 가지고 잘 이끌었던 이들마저 현게를 타거나 대부분 잠적하자 부족 간부진부터 모자란 상황. 결국 열의에만 넘쳐서 간부를 자청한 중학생 유저들을 간부로 쓰기에 이른다. 이들은 전쟁 리드는 고사하고 동맹 부족이었던 16대륙의 약소 영농 부족 청령 등에게 흡수 합병이나 반 협박식으로 논의하는 등[39] 미숙한 운영 태도를 보인다. 이런식이니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다. 아가레스, 인페르노, 무스펠하임과 같은 연방 부족들은 서로 연락이 두절되거나, 따로 행동했다. 연방이라는 자체의 의미가 상실되어 있었다. 그런데다가 불사조와의 전선은 연일 패퇴 일색이었다. 물량으로도 극복되기 어려운 불사조, 붉은곰의 무지막지한 공세에 판데모니엄 본 부족의 북동 남부 일대가 불사조에게, 판데모니엄의 서부 지역 아가레스는 붉은곰에게 점령당했다. 이것은 판데모니엄 자체의 몰락을 가속화 시키면서 결국 그들은 불사조에 항복, 7월 14일에 해체된 이후에 각각 지역에 따라 불사조, 신의 명가, 붉은곰으로 이동[40]하였다.

달의 몰락과 판데모니엄의 해체로 08년 7월에 시작되었던 3강 체제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3강의 유일한 적자는 불사조가 유일했고, 불사조는 사방이 온통 적이었다. 이제 그들은 최종적으로 단군과 전쟁을 결판내야만 했다. 이것이 최종 전쟁의 시작이다.[41]

3.13. 재정립 시대

서부를 광대하게 지배하던 검은달, 하얀달 부족이 무너짐에 따라서 북서와 남서의 패권은 단군 세력권이 되었다. 하지만 달이 북서와 남서를 완벽하게 통제하는데는 실패한 것처럼 단군 세력도 서부 전역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단군은 탄생 이후로 기존 남서련과의 전쟁을 수행해야 됐다. 남서련은 대규모 탈퇴와 붕괴 위기 이후로 아미쿠스라 이름을 개칭한 연방 부족 형태로 전환되었지만 이후 아미쿠스E[42]가 탈퇴해 히어로즈로 개칭, 독립하는 등의 사건은 끊이질 않았다. 더욱이 이전에 남서련을 탈퇴한 레퀴엠과도 관계가 악화되었고, 천명이나 여우비와 같은 신흥 중소 부족의 등장은 남서 일대의 외교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달과 불사조에 적대하고는 있었으나 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해나갔다. 중소 부족들은 단군과 아미쿠스 사이에서 관계를 저울질하면서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북서도 마찬가지의 재정립이 이루어졌다. 달의 붕괴 이후 4월경에 1세계 끝까지와 신의 명가가 달의 후손격으로 등장하였다. 북방 지역 출신의 유저들이 중심축으로 1세계 끝까지는 항전을 내세웠지만 5월에 이르자 상호 족장 간의 합의하에 신의 명가에 흡수됐다. 신의 명가는 단군 세력과 평화 조약을 맺었지만 단군의 괴뢰 부족으로서 꼭두각시 역할을 감당해야만 했다. 북극곰과 관계를 긴밀히 하여 판데모니엄을 공략하는 등의 활동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달 붕괴 이전에 불사조로 도피한 소수의 달 유저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신의 명가가 과거의 명성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해나갔다. 한편 달의 붕괴로 말미암아 사실상 목표를 달성한 북삼련도 이제 세력이 재편되어야 했다. 달과의 전쟁에 승리하긴 하였지만 이들 역시 차단 사건의 광풍에 휩쓸려 많은 유저들을 잃었다. 달 해체 이전 겜등위 차단의 여파로 홍우예향담과 북극곰은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붉은곰으로 재편 된 바 있다. 이 붉은곰은 주변의 여러 중소 부족인 발해와 유머나라의 15대륙군, USSR, 천랑성 등을 흡수하고 북동 방면으로 진출을 꾀하면서 세력을 확대해나갔다. 또한 아스트랄은 리턴과 AKA와 합병하여 은하수로 개칭하였다.

서부의 대대적인 혼란은 세력 개편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더욱 가중되었다. 남서의 경우, 아미쿠스에서 독립한 레퀴엠(후일 친위대로 개편)과 히어로즈가 이리저리 모태와 대립을 하면서도 단군과 연대하거나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군 역시 아미쿠스를 견제하기 위해 레퀴엠이나 히어로즈를 끌어안으려 노력했다. 아미쿠스는 이 셋 모두를 제거하고자 열성적으로 날뛰었다. 여우비는 세력 안정을 위해 단군과 연합하기도 하였다. 과거 베어즈에서 독립했던 천명은 꾸준히 부족들을 흡수하고 또 분열을 겪었지만 히어로즈 일부를 흡수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갔다.

2009년 6월 말부터는 북서와 남서의 충돌이 가시화 됐다. 은하수와 친위대의 전쟁을 시작으로 단군 세력권 내에서의 싸움이 빗발쳤다. 주로 구 남서련 세력과 단군 세력의 내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관계를 복잡해졌다. 배신이 시작된 것이다. 09년 10월에는 가령 단군과 은하수는 ROA와의 전쟁을 펼쳐지고 중도에 신의 명가가 단군 측에 가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11월 말에 신의 명가와 은하수가 떨어져 나갔다.

한편으로 7월 즈음 직전까지 붉은곰은 북동 방면의 판데모니엄을 공략하였다. 7월 14일경에 판데모니엄이 해체되자, 이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8월 3일경 불사조가 기습적으로 붉은곰을 공격하면서 북동과 북서에서의 싸움이 일어났다. 근데 어차피 붉은곰은 단군 세력권이고, 불사조는 오래 전부터 단군 등과 싸웠으니 딱히 선전포고가 필요없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타 세력과는 우호 관계에 있을뿐 독립 부족이라 자칭하던 붉은곰 입장에서 보면 당황스럽고 어이 없는 일. 당시 붉은곰 족장 Das Boot(게임갤러리 무나와라)을 비롯해 붉은곰 수뇌부들은 불사조가 이런 부족일지 몰랐다[43]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남동의 불사조는 이 시기에 북동의 판데모니엄을 굴복시키고, 쥬신 역시 무너뜨렸다. 쥬신은 세력 약화[44]로 09년 11월경에 단군에 자연적으로 흡수되었다. 동부 전역에서도 불사조는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여 단군이 이룬 적대적 포위망을 분쇄한 것이다.

09년 8월 14일에 남서에서 서로 반목하던 친위대와 히어로즈, 아미쿠스는 다시 ROA로 합병하여 단군과 전쟁을 결의했다. 또한 동일 천명과 불사조가 합병했다. 이에 앞서서 단군은 붉은곰을 8월 10일에 사실상 흡수했다. 8월 10일부터 14일은 이른바 합병전쟁이라 불린다. 하지만 재정립 시대는 계속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단군과 은하수가 ROA와 치른 전쟁이라든지 등에서 드디어 단군 세력권의 분열이 시작된다.

2010년이 되자 재정립 시대는 격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09년 12월경에 있었던 은하수와 청령 간의 전쟁에서 양측이 합병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은하수의 독자노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0년 1월 18일에 신의 명가가 드디어 단군과의 협약을 깨고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와 동시에 불사조와 로아(ROA)가 신의 명가와 연대 노선[45]을 갖추었다. 이 시점에서 은하수의 행동을 집중하여야 되는데, 바로 2월 11일에 신의 명가와 합병을 하게 된 것이다. 은하수와 신의 명가 간의 전쟁이 종결되고 수개월 뒤에 이들이 합병함으로서 기존 단군 세력권에서 독립적인 성향이 있던 은하수는 아예 대놓고 단군 세력권과 결별하는 계기를 가졌다. ‘푸른노을’은 이에 격분해 단군이 은하수와 신의 명가가 합병한 통합 부족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은하수는 단군에 소속된 붉은곰과 외교 노선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의 명가의 외교 노선을 존중하기로 하면서 단군과는 완벽하게 결별을 하게 된다. 이들은 2월 23일에 임모탈로 개명하였고, 불사조와 동맹을 체결하면서 완벽하게 불사조 노선으로 진입하였다. 이로서 단군은 역으로 고립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3월 11일에는 불사조 부족이 여우비 부족을 기습 공격했다. 임모탈에 대한 공격의 보복성 공격이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재정립 시대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이 재정립 시대는 2009년 내내 달 붕괴 이후의 서부 전역에서 각 부족들이 새로운 헤게모니를 따르거나 반대하는 등으로 세력을 갖추어나간걸 지칭한다. 이것은 이전의 춘추전국시대보다 오래 지속되어 2010년 3월경에서야 끝날 수 있었다. 허나 이 재정립 시대를 거치면서 단군은 역시 자신들의 패권 기반을 완벽하게 장악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으로 잠식당하고야 말았다. 단군과 ‘푸른노을’은 남서련 시절부터 적이 의외로 많았다. 달을 무너뜨렸어도 불사조는 그나마 건재하였으며 불사조를 제약하던 동부 일대의 연합 세력들 (운영 문제로 해체된 판데모니엄과 단군의 혈맹 쥬신 부족을 말한다.)은 꽤 많이 손실되거나 무너졌다. 그런데다 서부 일대의 여러 부족들이 단군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로 은하수는 북서 일대에 큰 세력권을 형성한 상태에서 동부 일대를 장악한 불사조와 함께 단군을 압박하기에 이른 것이다. 단군과 ‘푸른노을’은 08년부터 최악의 전선에서 싸워온 백전노장이었으나, 이런 상황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 재정립 시대가 2010년을 넘어서야 끝나게 되었고, 이 시대를 기점으로 1세계는 드디어 최종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제 진정한 승자를 가릴 때가 온 것이다.

3.14. 푸른 하늘에 지는 별

2010년 4월은 단군에게 있어서 최악의 달이었다. ‘푸른노을’은 가중된 부담과 현실 여건 등으로 인하여 현실 게이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단군 전체의 전투력도 많이 약화된 상태로, 기존의 ‘이동꾸옹’ 같은 기라성의 랭커들이 아직은 많았으나 한참 달을 집중 공략하고 불사조를 곤란하게 만들던 시기의 숫자는 결코 아니었다. 남은 이들에겐 많은 부담감이 지어져 있었으며 심지어는 빈 계정들이 주인 없이 방치된 형국이었다. 단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에 그들의 역량이 그렇게 크지 못한 편이었고, 불사조는 오뚜기보다 강하게 위기를 극복하여 역으로 단군을 제압하고자 했다. 그리고 은하수가 로아, 신의 명가와 합병하면서 임모탈로 개칭, 이후에 단군과 적대하면서 서부 일대의 패권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단군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FINAL’로 개칭하였다. 위기에 대응하는 개편이었으나 실질적인 형국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알 수가 없다. 노블 스코어에서 압도적인 수세에 밀린 것은 변함이 없었다.

2010년 2월부터 4월까지 1세계는 세 개의 세력으로 분할되었다. ‘단군’과 ‘불사조’ 그리고 ‘임모탈’이었다. 여기에서 세력이 강대한 것은 동부 일대를 거의 장악해버린 불사조였고, 그 뒤를 따라서 임모탈이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군은 붉은곰의 15대륙 일대와 남서 코어부근의 영역만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실질적인 전력에서는 단군이 임모탈보다 우세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 전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형세는 불사조와 임모탈이 단군을 공격하고 있어서 단군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오피서의 소진은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까지 단군을 지도해오던 ‘푸른노을’이 현직에서 물러난 4월 즈음에 결국 단군 수뇌부는 전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임모탈과 협의 하에 4월 20일 임모탈과 종전 조약을 체결하고, 21일에는 아예 임모탈과 합병을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로서 단군 세력권까지 더한 임모탈은 다시금 통합부족이라 개칭, 서부 일대의 패권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만다. 임모탈로서는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익이었다. 이것은 실로 대단한 사건으로, 08년 8월의 역전 이후로 오락가락했던 서부 지역의 패권을 친 케이탑이나 반 케이탑도 아닌 임모탈이란 신생 부족이 완전하게 쥐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단군의 세력을 고스란히 가져왔다는 점은 추후 불사조를 공략함에 있어서 커다란 전력이었다. 불사조는 비록 거침없이 달려왔다 할지라도 소모된 힘을 어디서 충전할 수도, 아낄 수도 없었다. 단군을 끝장내자는 심산으로 게임을 했던 불사조로서는 이 상황을 결코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불사조 역시 4월 23일에 청령을 흡수하여 대응 노선을 취했고,[46] 24일에는 통합부족에 선전포고 하여 전쟁 관계에 돌입했다. 29일에는 여우비와 종전했다.

이것을 누구보다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불사조보다는 바로 ‘푸른노을’ 본인이었을 것이다. 재정립 시대 동안에 임모탈의 전신 중에 하나인 은하수는 과거 북삼련 시절에 아스트랄이 있었고, 이후에도 단군 세력권의 하나로 존재해 왔었다. 그런 이들이 달의 붕괴 이후에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가면서 신의명가와 로아를 합병하는 것에 대단한 배신감을 느껴왔었다. 그런데다가 이제는 그가 일궈놓은 단군을 낼름 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4월 20일과 21일에 있었던 사실을 접한 뒤인 25일, 그는 급히 현장에 복귀하여 단군에게 합병 취소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동시에 평생의 숙적이었던 불사조에게 연락을 취하여 임모탈에 대한 연합 노선을 요청하였다. 기존 ‘셀레스’ 등의 단군 수뇌부의 결정을 전적으로 반박하는 그의 행동 때문에 합병 자체의 진도는 늦어지게 됐다. 허나 이것은 임모탈과 단군의 합병을 결국 저지하지 못했다. 단군은 힘이 빠진 상태에 과거 그나마 관계가 있었던 임모탈의 품에 안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셀레스’ 등에 의해 ‘푸른노을’의 합병 취소 선언은 부정되었다. 더욱이 불사조 측에서는 ‘푸른노을’의 주장을 거부하였고, 대신에 불사조로 건너와 대항할 것을 제안했다. ‘푸른노을’은 단군에서의 영향력을 잃음과 동시에 불사조의 제안을 거절함으로서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리고 결국 단군과 임모탈의 합병은 완료되었다. 허무해진 그는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

‘푸른노을’이 비로 3강의 올스타들과 직접 대결을 펼치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이 이뤄놓은 판을 깨부수는 결정적인 인물이었다. 게임 내외적 실력이 출중하였으며 달을 우선 무너뜨리고 불사조를 다음에 상대하려는 전략적 안목을 끝내 실현시켜냈다. 그런 인물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자신의 적들이 아닌, 동지들에게 빼앗겨 버렸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의 극치다. 그의 희망은 그렇게 허무하게 별똥별처럼 떨어져버렸다. 부족전쟁 1세계에서 어쩌면 가장 비극적인 유저일지도 모르겠다.

3.15. 마지막을 향한 헛발질

어쨌든, 2010년 5월 15일 통합부족은 이름을 천지인으로 개칭하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 불사조와의 전쟁을 지속되어, 사실상 양대 세력의 최종 전쟁이 진행되었다. 전력비 상에서는 불사조는 천지인에 비해 불리하였다. 양 세력간 피로도는 심각한 수준이 아닌, 상호 애증으로까지 번져오를 정도로 심하게 누적되어 있었다.

10년 6월 27일, 푸른노을을 비롯한 ONE[47] 멤버들은 천지인에 합류하였다. 불사조에 갈지 천지인에 갈지 고민을 꽤 많이 한 모양이지만, 옛 정을 못잊어서인지 천지인으로 합류. 드라마틱한 최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지만, 능력은 어디 가지 않아서 합류하자마자 일주일만에 98개를 노블하는 기염을 토하며 어마어마한 노예력을 과시하였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천지인은 걸핏 보면 푸른노을을 비롯한 정예 단군, 붉은곰, 달 멤버와 막강한 후방 세력이 합쳐진 불사조 이상의 부족이었으나, 오랜 거대 부족의 리스크를 동시에 떠안고 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인 창설 초기 어마어마한 기대와 충격과 달리 노블스코어는 불사조가 앞질러 나갔으며[48] 천지인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놓은 문제 속에 잡혀버렸다.

앞서 언급되었던 수많은 거대 부족들은 다수의 부족원들을 보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부족 등에게 패배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는 밀집형 부족이 정착된 후로 더욱 심해진 경우인데, 왜냐면 너무 많은 지역에 고도의 밀집을 갖춘 부족의 코어에는 정말로 먹을게 없어 굶어죽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코어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폭발적인 성장력은 그 부족의 위세를 드높여주나, 코어를 장악한 뒤로 남은 적은 없게 된다. 따라서 다른 지역으로 확장을 해야 되는데, 불행히도 이 게임은 오게임처럼 은하를 점핑하고 다니질 못하고 어디 이동하는데 몇 시간 기다리고 앉아야되는데다 그마저도 방어되면 작살나기 일쑤니 확장도 여의치 않다.(...) 그마저도 다른 지역이 동 세력권이며 확장마저 그림의 떡. 이렇게 될 경우에 코어 유저들은 마을 경영과 같은 영농 플레이로 돌아서며, 당연히 게임 실력은 녹슨다. 더불어서 게임도 질린다. 물론 분명히 이런 지역이 서너 대륙 있다면 지원과 공격이 작살난다. 허나 적절한 통제 없이 가만히 놔두면 대륙 내 랭커는 모조리 증발한다. 그렇게 작살난 부족이 한 둘이 아니걸랑. 게임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부족은 끊임없이 전쟁을 유도하고 심지어는 계정을 들었다 내렸다 할 정도의 결단력을 갖춰야 하는데,

아. 천지인, 특히 은하수-로아 계열 부족은 그런 능력이 최저에 달하는 부족이었다. 이건 사실 천지인 이전 시절부터 증명되어, 단군이 남부에서 내전에 돌입하였을 때에도 다수의 세력임에도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아미쿠스라든지... 또 북서에서 구 달 세력과 붉은곰 말고 잡다한 북서 애들은 사실 폐급이었다.[49] 그러니까 문제도 꽤 오래 전부터 끌고왔던 거다. 덩치만 크지 아무 것도 못하던 시나브로와 도대체 뭐가 다를까.(....)

이런 까닭에 내부의 곰팡이가 점차 심각해지던 와중에 전선이 격렬해지면서 북부를 제외한[50] 대부분의 전선에서 방어 지원은 미친듯이 쏟아졌다. 이미 1세계의 전투는 천 단위가 넘어가는 공격 부대가 나타났으므로 끼워넣기 방어가 필요한 1세계 특성상 고도의 방어 전술을 펼쳐야 되는데, 그런거 할 유저가 넘쳐났으면 단군 라인 제외 천지인 부족원들은 합병 전에 이미 단군 집어먹고 불사조와 최종대결을 했어야 됐다. 즉 불가능했단 얘기. 끼워넣기가 아니더라도 가능한 방어이지만 그럴 경우에 방자 측 손실이 천문한적인데다가 방어병과 공격병 생산 중에 피해를 빠르게 수습하는건 바로 공격병이니, 공자의 재공세가 방자의 충원보다 빠르다는 거.

크리티컬이라고 해보자면, 사실 천지인 중남부 지역의 최전선은 방어 지원조차 거의 없었다. 앞서 말했던 영농의 병폐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된 부족 지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그 이전부터 질리도록 싸운 구 단군 멤버에게 집중되었으며, 그들은 피로가 더욱 누적되어 전쟁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되는 계기가 됐다. 불사조는 악으로 깡으로 버틴건지 참 대단할 성 싶지만(...) 이미 그만한 세력에 고도의 전술까지 구비하였으므로 약한게 더 이상하다.

3.16. 푸른노을의 패전선언

2010년 12월 31일 천지인의 부족장 Andante가 對불사조전에서 패배했음을 선언하였다[51].

이후의 자유게시판에 Andante[52]가 써놓은 게시글을 보면, 천지인의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Andante는 패전 선언문에서 전방 유저가 책임지고 계정 삭제 후 현게 탈 것과 천지인 부족을 해체할 의사를 피력하였다.

한편 천지인의 패전에 이은 2011년 1월 1일자 해체에도. 불사조와의 전선에서 밀리지 않은 북부의 붉은곰을 비롯해 남동 전방 지역에 여전히 남아있는 쥬신, 중부 전방 지역의 Legend와 같은 천지인의 연방 부족이 유지되고 있다.

불사조 역시 이제는 불사조 코어가 된 85대륙 기반의 여우비 부족을 적대 설정하고 전 방위의 구 달 계열과 단군 계열 천지인 유저들의 회광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부족 부족원 다수는 운영팀이 서버 통일로 판단하여 리셋하는 것도 바라지는 않는 듯 하다. 부족을 영원히 할 기세. 불사조와 천지인의 일부 부족원은 천지인과 불사조가 하나가 되어 신규서버 밀리샤(8세계)로 넘어가자고 하지만 포럼을 보면 소수의견으로 묵살당한 듯.

결국에 길고 또 돌고 돌던 1세계의 정세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엔딩치고는 너무 허무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다행이지!

3.17. 양강체제 그 이후

하지만! 부족전쟁은 끝이 아니었다.[53] 천지인이 해체되고 현게탄 수뇌부나 랭커들. 그리고 불사조로 이적한 일부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각자 자신들만의 부족을 꾸리기에 이르렀다. 이러니깐 부족전쟁이 마약이라는 소리가 나오는거다. 게임 같이 접자고 부족이 폭파되도 또 부족을 일구고 전쟁을 한다...

우선 천지인 연방의 일원으로 부족명만 유지되는 수준이었던 붉은곰과 쥬신, Legend와 MooN[54]이 확대된다. 붉은곰은 특히 구 천지인 유저들을 적극 유입시키면서 불사조의 새로운 적들 중 가장 막강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전쟁도 가장 치열하게 했다고 알려져있다.

한편, 구 천지인의 일부 랭커들은 신 쌈닭이나 건곤일척 등 기존 소형 부족으로 귀순해 새로운 미래를 꿈꿔보기도.

그리고... 부족전쟁 계정 삭제기간인 5일~14일이 지나고... 1세계, 특히 1세계의 서쪽 지도는 거대한 구멍으로 뻥뻥 뚫린다. 현게탄 구 천지인 유저들의 계정이 삭제되고, 그들의 마을은 야만인 마을이 된 것이다! 이는 겜등위 차단 이래로 가장 많은 고점수대 회광이라고 하며.. 역대 최대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현게를 타지못한 구 천지인의 부족전쟁 노예들은 자신들만의 부족을 결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구 로아와 구 단군 남서워팀 유저들이 모여 만든 현실 모임 기반의 루뚱클럽이 있다.

중부 후방 지역 (구 은하수, 신의명가, 단군후방)을 중심으론 메테오가 설립된다.

북서 지역 기반으로 콜로세움도 설립되었으며 여기는 구 천지인이 아니더라도 받아준다. 또한 여기는 구 천지인이 자신의 첫 부족이었던 사람들이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본 구 천지인의 마지막 족장이자... 이 글의 주 기여자에 의해 한국서버 1세계의 주인공 격이 되어버린 Andante(푸른노을)는 구 천지인 족장과 은하수, ROA 출신 부족원에 대한 공개 비판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전부터 천지인합병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단군 출신과 신의명가 출신은 잘 싸워줬지만... 은하수 ROA 그 두 부족 출신의 상당수가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Legend를 설립해 은하수 ROA 출신자 까기에 나선다.

천지인의 2대족장이자 은하수를 만들기도 했던 왕자웨이가 이에 변호하면서 서로 병신병신하면서 구 천지인은 막장 이미지를 획득하지만 사실 푸른노을과 왕자웨이는 서로 형동생 하는 사이다.한다.

한편 2011년 1월에는 그 외에도 역사 연표를 제공하는 히스토리, 붉은곰의 컨슘령에 반발해 떨어져 나온 가연, 북쪽 끝의 지구 등이 중립 부족으로 설립되었다.

불사조는 여우비(여전히 남아있던 랭커급 유저가 있긴 있었다. 그가 바로 모던보이.)의 글을 통한 도발을 구실로, 여우비를 적대 설정한다. 세계 통일로 나아가려는 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사조 남부워팀의 다구리에 모던보이가 계삭하면서 사실상 불사조와 여우비의 전투는 불사조의 승리로 소강된다.

이 즈음 천지인 계열 부족끼리 외교 관계를 체결함은 물론, 붉은곰에서는 새로운 체제 형성을 위해 족장을 뽑으려는 부족원 투표를 하고 족장 활명수36 체제가 성립된다. 루뚱클럽은 소부족 JUNE를 흡수합병한다. 메테오 역시 내각을 정비한다. 콜로세움에서는 족장이 중립부족인 히스토리로 이적하고 친 붉은곰 성향의 2기 내각이 출범한다. 이 외에도 천지인 계열 부족들은 여전히 여전히 접지 못하고 달리는 노예들열심히 움직이는 사람이 많았다.

장미십자기사, 스파르타, UN, 르네상스, 건곤일척, 세계연방, 혼돈 등 세계대전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명맥은 살아남은 소부족들은 자신들의 세를 키우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노력한다. 그러다가 소부족들은 대부분이 사실상 하나로 통합된다. 이게 나중에 아테나라는 최대의 소부족(이제 소부족이라고 부르기 애매할만큼 컸다.)을 이루게 된다.

그러는 동안 구 천지인의 랭커들이 합류한 쌈닭 부족은 여전히 1세계에 남아있던 K-TOP에 선전포고 하고 엘리시킨다. 우걱우걱. 케이탑이 점프대 제공을 안했다는 것. 수많은 부족전쟁 전쟁중에서 진짜 마을이 엘리된건(회광된거 제외)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련지. 랭킹 1등 이동꾸옹 등이 가입하면서 평균점수 2위에 빛나는[55] 소수정예부족이 된 쌈닭은 심슨가족으로 부족명을 바꾼다. 이후엔 다시 IU 부족이라고 개명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유저들은 이루어낸다. 점수 1,000만점 달성 유저 100명 돌파! 천지인 해체 직전 99명 달성까지 갔으나 천지인의 해체와 그에 따른 계정삭제로 2개월이 지나서야 돌파가 된 것이지만 결국 한국의 다른 어느 서버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어찌보면 이게 부족전쟁 유저들간의 양극화 현상이기도 하지만...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도 있..으려나? (사실 어느 정도 노력하면 서버 중위권까지는, 그리고 진짜 미친듯이 노블하고 노오력한다면 서버 중상위권은 노려볼 수 있었지만 1페이지만은 절대 진입불가였다.)

한편 구 천지인 유저 극소수와 신규 유저들이 뭉쳐 지구라는 부족을 만들었는데, 이 부족이 막장 행보로 이따른 병크를 터뜨리며 다른 부족들의 노여움을 사서 멸망하기도 했다. 메테오와 붉은곰이 대부분 멸망시켰으며, 이때 살아남은 지구 족장을 비롯한 부족원들은 불사조로 도피한다.

3.18. 다시 시작되는 세계대전

그렇게 1세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 하고있던 천지인의 공백이 나름대로 메워지는데에 3개월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고. 계정 해킹문제와 관련한 붉은곰-불사조 간의 분쟁사항 관련해 불사조의 상징적 인물인 bismark77(톨레도4400)은 포럼에서 붉은곰을 공개적으로 디스한다.

이 디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불사조는, 구천지인 상위랭커 다수가 포진해있던 소수정예 부족 심슨가족이 동맹을 체결하고 이를 공표한다. 1세계 끝까지 같이 하겠다는 내용이다. 공표 하루 뒤에 이들은 붉은곰을 상대로 전쟁 선전포고까지 한다. 그전에도 불사조와 붉은곰은 항상 전쟁하고 있기야 했지만 심슨가족의 불사조편 개입으로 양강체제와 달라진 양상의 새로운 세계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같은날, 붉은곰은 쥬신과 혈맹을 표방하는 발표를 한다. 이 즈음에 불사조에서, 루이오션스(냅)와 청령(과거 청령과 같음, 단 이번에는 불사조의 괴뢰 부족)이 독립 파생되어 나옴으로써 세계전쟁의 양상이 더 돋보인다.

이 세계대전 재 발발 시기와 맞물려 푸른노을(Andante)의 계정도 결국 부주의에 의해 삭제됨으로써 (일단 잠시 애도...) 진짜 새 시대란걸 유저들은 실감하게 되었다.

새 시대 전쟁의 개막을 알리는 모양새로, 붉은곰은 아기불사조 소속 반항아 유저에 대한 대규모 폭격 동원령을 내린다. 구 천지인의 폭격 동원령이 과거에 나름대로 재미를 봤었기에 이와 유사한 작전을 내린것이다. 붉은곰 측에서는 반항아 유저의 선 도발에 대한 대응이라 밝힌다.

마찬가지로 불사조·아기불사조는 붉은곰 족장 활명수36에 대한 대규모 폭격 동원령을 내린다. 불사조 측에서도 역시 붉은곰의 아기불사조 반항아 유저 폭격에 대한 대응이라 이야기 한다. 근데 어차피 적이잖아

뷹은곰은 이에 대응하고자 천지인 계열 부족인 콜로세움과 군사적 동맹 체결로 후방을 공고하게 하였다. 쥬신 또한 콜로세움과 동맹을 체결한다.

그리고 남쪽의 중견 부족이 된 루뚱클럽도 불사조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무료함을 이겨내지 못한 루뚱클럽이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 이에 불사조 남부워팀도 재가동 되었다고. 하나의 적을 상대하게 된 루뚱클럽은 붉은곰,쥬신과 동맹체결을 하니 반 불사조 성향의 붉은곰·루뚱클럽·쥬신·콜로세움 4부족 동맹체가 결성된다. 이 동맹체는 반(反) 불사조를 내세웠으며 주장과는 달리 부족 별로 외교는 차이가 있었다.

이 4부족이 동맹체라고는 하지만 부족간의 연계는 부족했다는 평도 있다. 북부의 붉은곰과 남부의 루뚱클럽은 불사조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곤 했지만 거리와 북쪽과 남쪽 끝이다보니(사이에 불사조와 동맹인 심슨가족 부족이 있었다.) 서로 연계된 전쟁을 하지 못했다. 불사조 북부 워팀과 남부 워팀이 느슨하게나마 연계를 하는것과는 대조적인 모습니다. 쥬신은 소수의 유저만이 남아 불사조의 막대한 공습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일부 유저들이 돌아와 외교 라인을 재가동 시키는 등 활동하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콜로세움은 전쟁 경험이 적은 신규 유저들이 중심인 부족답게 전쟁에 있어서는 정말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붉은곰은 심슨가족과 싸웠지만 나머지 루뚱클럽, 쥬신, 콜로세움 3부족은 심슨가족과 우호적이거나 무외교를 유지하기도 했다.

3.19. 격동하는 정세, 그리고 통일

이런 체제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붉은곰은 그러는 사이 족장 활명수36의 무리한 부족 운영으로 몇몇의 탈퇴자가 발생한다. 구 단군 시절부터 구 천지인 시절까지 북부 워팀으로 활약해 북방8인방, 또는 북부8대[56]의 일원으로 불리기도 한 윈터나이츠의 탈퇴가 대표적이다. 윈터나이츠 때문에 붉은곰 탈퇴했던 가연은 어쩌라고? 그는 탈퇴 후 그린피스라는 1인 부족을 세우기도 했다. 나중에 붉은곰 족장이 활명수36에서 진짜지구최강으로 바뀌면서 다시 친붉은곰 적인 성격을 띄고, 2012년 초여름에는 다시 붉은곰의 일원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북방8인방의 대다수가 현게탄 이 상황에서 과연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이다.

윈터나이츠의 탈퇴에 영향을 받아 메테오 구역에 살던 붉은곰의 부족원이었던 khu94도 부족 탈퇴를 선언한다. 훈민정음이라는 소수 부족을 유지하고있던 구 천지인의 BlueMooN과 감귤선생은 khu94를 부족에 가입시키고 족장 직함을 달아준다. 그리고 자신들은 부족 원로가 된다. 그리고 훈민정음 부족을 구 천지인의 적통을 표방하며 신규유저를 중심으로 천지인:복수혈전(신 천지인)이라는 부족명으로 개칭한다. 신 천지인이 설립된 것이다. 이들은 부족명에서 알 수 있듯 천지인의 계승의식을 내세운다. 구 천지인의 수뇌부들과 랭커들을 자신들의 후견인으로 명시한 것. 초반에는 막장 플레이를 내세웠지만[57] 부족원이 늘어나게 되고[58] 점차 정규 부족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된다.

정규 부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부족원들의 게임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59]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이들은 미모의 여성 유저인[60] 족장 khu94를 부족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한 때 부족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이 khu94의 인증사진으로 해놓을 정도... 그 외에 정식 부족명을 <하늘 땅 사람 그리고 여신>으로 개칭하는 등이다. 족장 본인이 개편한건 아니겠지? 근데 이 방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해서 신 천지인 부족은 정규 부족이 되었음은 물론, 1세계에서 부족원이 가장 많은 부족이 되기도 한다. 이쯤되면 무섭다. 더 무서운건 부족원들에 따르면 이 부족 내부공지에는 '여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세력을 키운다.'나 '여신의 말에 무조건 따른다.' 같은 내용의 공지가 딱 올라와있다는 것. 1세계에 남아있는 유저들이 여고생에 목마르긴 했나보다.

이런 보빨형태의 부족 운영을 못마땅하게 여긴 콜로세움이나, 붉은곰 남서부의 일부 부족원들과 무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후 구 천지인 간부들의 후견으로 이런 무력 사태는 정리된다. 새 천지인 족장의 애교에 못이겨[61] 불사조는 이들과 동맹, 도끼질까지 했던 붉은곰은 NAP을 체결하는 등 '여신의 성역' 중립 부족으로 거듭나게 된다. 불사조나 붉은곰이 khu94만 보고 외교를 맺은 것 같지는 않지만 여신으로 1세계가 대동단결!, 참고로 지금까지 이랬던 부족은 전무하다. 수년 째 서로 앙숙인 불사조와 붉은곰이 동시에 인정한 부족이 새로운 천지인이고, 그 이유가 족장 khu94 때문이라는 말을 본다면 1세계는 지금 몇번의 세계전쟁과 수만 명의 유저를 거쳐 여신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듯 하다. 女神 말고 女新

그런데 족장 khu94의 넷카마설이 터졌다! 다음항목 참조 [62].


그리고 2012년 또 한 해가 밝았다. 햇수로는 5년, 한국 1세계가 열린지는 4주년 되는 해. 통일되어 끝나는 서버도 여러 곳 나오는 가운데 1세계는 여전히 치열하다.

이 치열함 속에 천지인 계열의 부족으로 서부 지역에서 나름대로 강한 세력을 자랑했던 메테오가 끝장난다. 메테오의 족장인 드래곤라자의 계정삭제와 수뇌부들의 갑작스럽지만 예상되기도 했던 현게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나머지 메테오 세력은 여신 천지인과 붉은곰으로 나누어 흩어진다. 일부 유저들은 메테오에 남고 여전히 메테오는 2개 대륙에서는 1순위를 차지한 채로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현게 유저들이라는게 정설. 부족의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는 주장이 대세를 얻고 있다. 메테오 부족 프로필은 이후에도 이미 접은 족장 드래곤라자와 수뇌부들, 그리고 타 부족으로 옮겨간 과거 간부의 이름이 써있는 상황으로 이를 증명한다.

불사조 세력과 붉은곰 세력의 전쟁은 서로간의 전선에 위치한 유저들을 유닛사살 랭커로 만들어줄 정도로 치열하고. 계속되는 엎치락 뒷치락하고 있다.

2014년 3월 신 천지인과 붉은곰간 전쟁 발발. 2014년 9월에 최대 부족이었던 불사조 부족과 천지인 부족이 통일을 위한 합병 선언을 하면서 1세계 통일, 서버 종료가 시한부 확정되었다.(9월 12일 조사기준 불사조, 아기불사조, 천지인, 청령 연합이 합병할 경우 전체 점유율의 82%를 달성) 바로 합병하는 것은 아니고 부족들을 불사조와 아기불사조, 두 부족으로 분할 합병한 뒤 여러가지 역사적 정리나 즐겜유저들을 위한 여운 풀기, 부족간 관계의 후속정리를 끝내고 올해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을 기해 마지막 합병과 함께 1세계를 통일하는 방향으로 결정된 듯하다.[63].

3.20. 1서버 종료와 한국서버 종료

2014년 12월말, "서버 오픈 이후 2,545일간 유지된 한국서버 최장기 서버, 서버 내 마을 총합(플레이어수) 415,047개의 한국서버 최대규모 서버, 서버 내 총 설립된 부족 30,096개" 등의 전무후무한 기록[64]을 남긴 1세계가 종료한다.

40만명이 넘는 유저와 3만개의 부족이 거쳐간 1세계에서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유저는111명, 끝까지 존속한 부족은 7개에 불과했다. 막장제조게임으로 불리울만큼 하드코어했던 이 게임에서 7년의 기간동안 끊기지 않고(일정기간 이상의 미접은 계삭 사유다.) 끝까지 플레이한 근성인들이 있다는 자체가 1세계만의 클래스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서버 운영진은 전통적 폐인층인[65] 1세계 유저들이 신섭에 가서 활력을 다시 불어넣어주길 바라는 듯 했으나 거의 모든 1세계 랭커들은 부족전쟁을, 최소한 한국서버를 아예 떠나버렸다.

최장기, 최대 서버였던 1세계마저 끝난 이 상황에서 더 이상 한국서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족전쟁말고도 워낙 많은 전략 시뮬레이션, 정복 등의 메이저한 게임이 나와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1세계 종료로부터 거의 딱 1년 후인 2015년 12월. 결국 한국서버는 서비스 종료되었다. 그나마 남은 유저들은 해외서버로 이주했다.

이 시점에서 1세계 출신의 40만명에 달하는 유저들은 이미 거의 대부분이 부족전쟁을 떠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1] 여기저기에 부족전쟁을 가장 많이 홍보한 것은 바로 겜갤러들이었다.[2] Kyo 마법사 제국교향시 히틀러 등....[3] 이 시기에는 정탐병을 보내는 행위가 공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었다. 물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서버는 정탐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 전쟁은 첫 전쟁이라는 의의를 넘어서서 한국서버에 고리타분하게 자리잡을 '정탐=전쟁'이라는 황당한 공식의 조상님이 되신다.[4] 중고딩들이 오피서를 하는 경우에 벌어지는 일은 몹시 끔찍하다.(...) 부족을 말아먹기 일쑤요, 중2병이나 고2병의 고급 병맛 테이스트로 온갖 삽질을 하고 다닌다. 물론 개념 박히고 훼력 무한의 범상치 않은 아이들도 있으나, 그걸 넘어서 일단 오피서 짓하면 십중팔구 수능 망한다.[5] 레베비, 마비노기타임즈, ROME[6] 서너 명이서 수십 명의 유저들을 굴복시켰던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세인트의 핵심 오피서가 적진에 고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어에 성공하다 못해 역전하기도 하였다고.[7] 당시 익사르의 마을은 왜 그렇게 확장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2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각 군집이 서로 다른 대륙에 위치할 만큼 거리가 멀었으니 사방에서 오는 공격에 유동적으로 방어하지 못해 빠르게 퇴장당한 것으로 보인다.[8] 그러나 케이탑과 1페이지 명문 부족과의 외교 분쟁 시에는 관계가 험악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케이탑은 그들의 무력을 바탕으로 외교전에서 늘 우위에 있었다. 케이탑이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였을 시에는 전쟁이 되었으므로 1페이지 명문 부족들은 그들에게 불리한 것들을 알아서 바치면서 평화 공세를 펼쳤다.[9] 당시 신화는 20페이지(위가 아니라) 언저리에 위치한 소규모 부족이었던지라 sarada를 영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합병이라기보다 흡수에 가까웠다. 밀집도 개념도 없었고, 오피서도 sarada가 유일했다. 심지어 sarada는 부족 1위이긴 했으나 신화 부족의 부족장도 아니었으며 그 이외의 모든 전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례로 당시 sarada도 마을이 1개 상태 점수도 3천점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당시에는 3천점이 적정 노블링 시기였다. WW1에서 익사르 점수가 2만점 이상(어디까지나 이상. 정확한 점수는 기억안남)이었던 시기에 TIMES가 합병할 부족으로는 격이 맞지 않았다. 부족타임즈로의 개명도 신화와 합병 이후에 나온 이야기로, 신화와 합병 당시의 마비노기타임즈의 이름은 TIMES였다. 마비노기는 진작에 버렸다.[10] 물론 그 부족의 힘에 따라 좌우할 수 있는 정도는 달랐다.[11] 제대로나마 내놓은 대책이 세인트의 방어선인 바위의 영역을 침공하자는 것인데, 이마저도 세인트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한다.[12] 한국서버 최악의 룰. 현재는 거의 사문화 되었지만, 예전에는 이것만큼 최악이고 끔찍한 룰도 없었을 것이다. 규정으로 공식화 된 것도 아니다. 1대1의 상황에선 부족의 대응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개인적인 문제로 해결하게 냅두자라는 것이 이 룰의 내용이나 강대 부족이 약소 부족을 상대로 이 룰을 이용해 수월하게 잡아먹는데 이용되었다.[13] 사실 세인트와 쌈닭(FTF+엄친아)의 합병은 케이탑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부분. 세인트와 쌈닭의 관계는 합병 직전 친하기는 했지만 과거 서로에 적대하던 적이 있던 역사를 고려할 때 두 부족이 합병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남동에서 이 합병으로 케이탑은 사실상 남동 지역에 손도 못 쓰게 됐다. 또 케이탑이 합병을 방해하기도 전에 대규모의 인원이 비밀리에 또 3일만에 합병 작업을 마무리시키는 위업을 토해냈다고.[14] 헌데 3강은 개전까지 케이탑의 힘을 과대평가하였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한 언플들은 죄다 케이탑이 절대강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3강은 그보다는 못 미치는 힘을 가진 것으로 묘사됐다. 3강 지도부도 케이탑의 약체화를 전혀 몰랐다고.(...) 당시 최고 수뇌부들의 뒷소문에 의하면 54대륙을 비롯한 남서지역을 모두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타임즈가 3강 중 최약체였기도 하고, 케이탑의 엘리트들은 모두 그 타임즈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15] 거기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것은 부족타임즈. 이후 이 둘은 동맹으로 거듭났다. 반년 뒤에는 아예 혈맹이 됐다.(...) 그리고 서로 배신조차 하지 않았다. 의리가 가장 튼튼했던 동맹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16] 베어즈는 레베비의 세력이 약해지자 뒷통수를 깔 생각이있었다. 실상 베어즈의 부족구성원의 대부분이 세인트와 접경지역인 부분이 드물었던 점이 요인이었다. 베어즈의 배신으로 대대적인 반 세인트 전쟁 계획이 무너지자, 승산이 없어졌다고 판단한 엄친아는 이후 외교 노선을 친 세인트로 전환한다.[17] 베어즈쪽에서 노블을 보내 막타를 친 상태로 협상을 시작했고, 협공끝에 일어난 일이니 점유는 베어즈가 한다 라고 선포했었다. 또한 그 이후에 세인트,베어즈는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18] 세인트의 선공에 서로 중재하려고 했으나, 2~3일후 세인트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고 베어즈가 뒤늦게 대처를 했다.[19] 일진일퇴라기보다는 대부분 영농테크가 많아서 꿀곰들이 많았다. 상위랭커들은 승리하고 나머지는 탈퇴, 흡수의 길을 걸었다.[20] MTW도 이 중재에 관여했다는 말이 있다. 다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중재 당시 MTW의 비중은 상당히 낮았던 것 같다.[21] MTW와 부족타임즈는 이미 이 시점에 합병을 논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2]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서 중재를 요구한 것도 그렇고, 전쟁이 거의 일방적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휴전이 될 턱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그걸 외교에 뼈가 굵은 달 관료진들이 모를리 결코 없다. 실상 베어즈 부족과 부족타임즈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23] 선전포고문이다.[24] 노스페라투는 후에 운영자로 밝혀지고 병력과 귀족을 운영자의 권한으로 찍어내어 나중에 같은 운영자에게 걸려 회광크리 당함. 절대 굇수가아님 그냥 사기꾼임.[25] '푸른노을'이라는 이름 자체는 계정의 이름인데, 본 계정의 주인 대신에 당시에 누군가가 이 계정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부족전쟁에서는 본 주인 대신에 '푸른노을'이라 불리게 된다.[26] 케이탑 자체는 남서련 지부에 따로 소속되지 않았고, 이런 점 때문에 후일 남서련의 핵심 멤버들과 합세하여 단군 부족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자신의 지지세력들의 단물만 빨아먹고 버린 것이다.[27] 외섭에서 이후 시나(sina)의 유지를 받들어, "for sina!"를 외치며 활약한 용자들이 있다.[28] 오죽하면 신 시나브로의 모 랭커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북삼련 사이에서 그가 부족전쟁으로 인한 과로로 입원했다는 소식이 퍼질 정도. 상대도 한 수 물러주는 센스가 있었다.[29] 북부 최대의 격전지로 여러 대륙들이 특정 부족의 세력권이 되는 동안 이 대륙 지역은 2009년 말에 이르기까지 거대부족과 중소부족을 막론하고 십수개의 부족이 전투에 참여한 전국시대였다. 그런 대륙인만큼 15대륙군의 이탈은 타격이 컸으며 이를 판데모니엄연방 몰락의 시초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홍우로 넘어간 이들은 활약하여서 판데 코어대륙이었던 16대륙과 25대륙,26대륙,35대륙 등으로 진출한다.[30] 엔젤하이로는 북서에 주 세력이 근거하고 있었지만 대고구려 등에 의해 축출되었다. 타임즈는 그들을 흡수하려고 했지만 대고구려, 고구려제국의 방해로 성과를 못 이룬다. 이후 타임즈의 ‘sarada’는 이를 미안하게 여겨서 엔젤하이로는 각별히 돌보았다. ‘sarada’는 이런 식으로 남서 부족들을 돌보려고 했다.[31] 여담으로 부족장이 이 항목에 사과문을 써놨으나 사칭으로 밝혀졌다[32] 사실 달과 불사조 멤버들은 어떻게든 케이탑 때려잡고 현게 탈 요량이었다고 다수가 회고했다. 실제로 케이탑이 코어에서 철퇴당한 이후에 많은 유저들이 현게를 탔다.[33] 넷 상으로 임명되어 관리했다. 여성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폴란드 인이라고 한다.[34] 어드민 레벨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최하위의 어드민은 밴도 못한다고.[35] ‘푸른노을’이나 ‘블러드윈드’ 모두 규정 위반으로 밴 먹었다. 그 외에 온갖 랭커들은 밴 경험을 한 번은 지니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게 다 정당한 사유는 아니다.[36] 어드민 ‘카브놋’은 대규모 밴을 하려면 해당 계정의 이름들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수 만 명을 일일이 적기에는 무리였으니, 각 부족의 오피서들이 전체 메일을 보낼 수 있는 기능을 악용하였다. 전체 메일 기능에는 부족원 명단이 모두 뜨게 되는데, 이것을 긁어다가 밴 목록에 올린 것. 어드민들은 어드민툴로 모든 계정을 해킹할 수 있었으며 ‘카브놋’은 해킹 계정과 ‘sarada’ 등의 소수에게만 밴을 하지 않았다.[37] ‘카브놋’은 오게임 유저였다. 디시 오겜갤에서도 나름 활동하던 유저였다고 한다.[38] 연방장, 부연방장을 비롯해 판데모니엄의 중요 수뇌는 HKK 출신들이 꿰찼으며 HKK출신 간부진은 판데모니엄 부족명을 HKK로 바꾸는 논의까지 실제로 했다.[39] 사실 판데모니엄과 그 연방 부족 수뇌부는 청령을 한수 아래의 하부 부족으로 보았다. 물론 청령 간부진은 1:1 로 대등한 동맹-또는 혈맹 관계로 보았고. 그래도 중학생 간부진들의 그 짓거리는 좀 심한 감이 있다.[40] 특히 불사조로 이동한 판데모니엄 남부 지역 유저들과 붉은곰으로 이동한 북부 지역 유저들의 상당수는 각각 지역에서 간부나 최전방 유저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신의명가로 이동한 부족원은 소수였지만 신의명가에서 점수로 초상위 랭커를 했다. 하지만 신의명가로 간 사람들의 경우엔 판데에 있을때와는 달리 활동은 적었다고.[41] 일부에서는 최종 전쟁이라는 표현 대신에 WW3나 WW4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사용하기가 부적절하다. WW2 이후 전쟁들은 모두 3강 세력권과 케이탑 세력권의 대립이었다. 때문에 이 위키 항목에서만이라도 WW3나, WW4의 사용은 자제를 요청한다.[42] 아미쿠스들은 부족 구분을 알파벳으로 했다. 이것은 이후 연방 부족의 표준이 됐다.[43] 붉은곰 부족의 전신 중 하나인 북극곰은 그 유명한 자유인 jackass를 비롯해 판데모니엄을 공동으로 상대하면서 불사조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무 외교 상태이지만 우호적으로 보았다고 한다.[44] 남동 방위를 장악하고 66대륙 일대는 단군과 아예 붙을정도로 활발했던 쥬신 부족이었지만 동서남북 4방위에서 몰아치는 불사조의 공격에 버티긴 힘들었나보다. 쥬신의 아카데미 부족이었던 신라가 먼저 해체를 하고 쥬신의 대부분 유저들은 단군으로 넘어온다. 일부는 쥬신이라는 부족명을 지켰으며 일부는 불사조로 투항한다.[45] 불사조와 로아, 신의명가는 공유 포럼을 갖추고 싸운다. 다만 로아의 경우 어린 유저들이 주축이라 적대 부족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했다는...[46] 구 단군 출신들은 청령을 배신자라고 욕했고, 구 불사조는 임모탈(특히 신의명가)을 배신자라고 욕한다. 청령의 경우엔 전통적인 외교 노선대로 중립 부족으로 남았어야지, 불사조에 흡수당한건 미스였다. 족장을 제외한 대부분 전방 유저가 파먹히거나 현게 탔다.[47] ONE 부족은 이후 남동 방위의 류카시엔이 홀로 지킨다. ONE 부족의 프로필에는 푸른노을의 이름이 여전히 남아있다. 나중에 류카시엔 유저는 불사조 연방에 가입했다가, 탈퇴. 현재 남동 방위의 무소속 고랭커로 남아있다.[48] 사실 천지인 초기 수 개월간은 천지인이 스코어에 앞섰으나, 이후 불사조에게 너무 큰 폭으로 뒤쳐졌다.[49] 이후 천지인이 패전 선언을 하게 되면서 단군 출신의 족장 푸른노을은 은하수와 ROA(아미쿠스) 출신 유저들에 대한 분노를 표시했다.[50] k6에서 k45에 이르는 북부 천지인은 구 달-신의명가 출신 유저들과 붉은곰-단군 출신 유저들이 어우러져 불사조가 심각한 위기 지역으로 판단할 정도로 전쟁을 펼쳐나갔다. 이에 밀린 불사조 유저는 운영툴로도 의심받는 심각한 버그를 이용하기에 이른다.[51] http://forum.bujokjeonjaeng.org/showthread.php?t=13536 관련글 링크[52] 푸른노을이 갈아탄 계정의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르고 갈아탄 것이 아니라 운영팀에게 프레미엄 점수를 주고 단순히 닉네임 변경한 아이디이다.[53] 많은사람들의 예상과 우려와 기대와 달리 부족전쟁이란 게임이, 특히 수만 명의 노예와 수십 만의 사람들이 오간 1세계는 이렇게 끝날 곳이 아니긴 했다.[54] MooN(달)은 진짜 말그대로 부족명 유지만 한다.[55] 1위는 부족명만 지켜지고 있다가 일부 구천지인 랭커들이 몸담게 된 SAINT다. 2008년부터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나 명예의전당,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전범 수용소 같은 개념이라 정세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사실상 쌈닭 이들이 평균 부족 1위라고 봐도 된다.[56] 윈터나이츠 본인의 개인 텍스트에 따르면 윈터나이츠, 진짜지구최강, 활명수36, Helmin200, 하늘, rmflssns, 한승연, 빨간따그닥이 이들이다. 이 중에서 빨간따그닥을 빼고 옥빌간쥐, 이화에월백 등을 넣는 경우도 있다.[57] 중반기에는 중소부족의 甲이 되겠다는 포부도 내세운다.[58] 계속 늘어가서, 이들은 현재 1세계에서 부족원 숫자는 가장 많은 부족이다.[59]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여기 부족원들은 사실 구 천지인 계승 의식도 그렇게 갖고 있지 않았고, 신규 부족원이나 다른 서버를 중심으로 플레이 하는 유저들이 대다수였다.[60] 그냥 여성유저가 아니라, 나름대로 미모를 갖춘 여고생 유저라고 한다. 인증도 했다. 과거 부족전쟁의 수많은 남정네들을 울게한 넷카마들과는 달리 진짜 여고생이다[61] 확인불가다.[62] https://forum.bujokjeonjaeng.org/showthread.php?19163-khu94%EC%9D%98-4%EB%85%84%EA%B0%84%EC%9D%98-%EB%84%B7%EB%A7%88%EC%B9%B4%EC%A7%93%EA%B3%BC-%EC%B2%9C%EC%A7%80%EC%9D%B8-%EA%B0%84%EB%B6%80%EC%A7%84%EB%93%A4%EC%9D%98-%EC%9D%B4%ED%95%B4%ED%95%A0%EC%88%98%EC%97%86%EB%8A%94-%ED%96%89%EB%8F%99%EB%93%A4%EC%9D%84-%EC%95%8C%EC%95%84%EB%B3%B4%EC%9E%90 링크 폭파됨[63] 부족 합병 선언문[64] 부족전쟁의 고향인 독일, 미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거대 서버는 찾아볼 수는 있지만, 그런 거대 서버가 이 정도로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65] 이 게임에 막장제조 게임 명칭을 부여하게 된 게 1세계의 폐인스러운 전쟁 때문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