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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7:20:39

보르항 산

부르한 산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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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한국어 위대한 보르항 할등 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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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어 Бурхан халдун уул, түүнийг хүрээлсэн тахилгат газар нутаг
영어 Great Burkhan Khaldun Mountain and its surrounding sacred landscape
프랑스어 Grande montagne Burkhan Khaldun et son paysage sacré environnant
국가·위치
[[몽골|]][[틀:국기|]][[틀:국기|]] 헹티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1440
등재연도 2015년
등재기준 (ⅳ)[1], (ⅵ)[2] }}}

파일:external/farm3.static.flickr.com/4293439363_544ca2e131.jpg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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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ᠪᠤᠷᠬᠠᠨ ᠬᠠᠯᠳᠤᠨ, Бурхан Халдун, Burkhan Khaldun

몽골 북동부 헹티 주 및 헨티산맥에 있는 몽골족성산.

몽골어 발음상 '보르항 할등'으로 불리며 그냥 산 대신 바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영문 표기대로 발음한 '부르칸 칼둔'으로도 불리지만 이는 국내에서만 통용된다. 칭기즈 칸무덤이 있을법한 곳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2. 상세

튀르크제어로 '부르한(burkhan)'은 당나라 시대 중고한어 발음과, qan이 조합되어 '붓다' 또는 ''을 일반적으로 이르는 표현이었다.[3]

칭기즈 칸이 젊은 시절 아버지 예수게이타타르에게 잃고 이 산 근처에서 어머니 호엘룬와 함께 지냈으며, 메르키트 족에게 습격을 받아 아내 보르테까지 빼앗긴 후에도 보르항 산의 밀림 속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 그 때 문득 <영원한 하늘>이 자신을 도와준다고 느끼고, "보르항 산을 아침마다 섬겨라. 날마다 섬겨라. 내 자손의 자손들아, 이것을 잊지 말아라." 하고 맹세했다고 한다. 또한 케레이트를 쳐부수고 마지막으로 나이만 부족의 타얀 칸을 쓰러뜨리고 몽골을 통일했을 때도 보르항 산의 신령한 기운을 받아 칭기즈 칸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칭기즈 칸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지만, 그의 무덤은 아직도 어디 있는지 미스터리. 전승에 따르면 칭기즈 칸의 시신을 이 곳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마주친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였다고 하는데[4] 이걸로도 모자라 칭기즈 칸의 무덤은 묻은 후 파헤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병대가 수없이 짓밟아 평지로 만들어버렸고[5] 그 후 그 밟은 말들과 기수들까지 몰살되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전승일 뿐이라 실체성 여부는 학자 간에도 논란이 있다. 실체가 없다고 보는 쪽은, 이런 전승이 당시 몽골군에 지독한 학살을 당한 이슬람 쪽에서 나온 말로 '지상 최악의 살인마'라는 악의를 가득 담아 칭기즈 칸을 저주하기 위해 지어낸 근거없는 독설 정도로 취급한다. 사실 위의 연쇄살인(?) 방식은 데바닷타 관련 설화에도 나올 정도로 흔한 클리셰이기도 하고...

투탕카멘 왕의 분묘와 같은 사례를 들어 아직 무덤이 발굴된 게 아니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이 경우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례[6]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의 무덤이 크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유목민의 전통에 충실한 칭기즈 칸의 성격을 존중해서 무덤 또한 전통 유목민식 장례로 아주 소박하게 치렀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관광 명소로도 이름이 높은데,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2]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3] 카라한 칸국에서는 이슬람교를 믿었기 때문에 '부르한'이라는 단어를 '우상'이라는 뜻으로 썼다.[4] 심지어 입막음을 위해 무덤을 만드는 데 동원된 인마까지 모조리 몰살했다고 한다.[5] 당시 몽골의 장례식은 무덤 위로 말떼를 달려 다지는 방식이다.[6]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현대까지 대를 이어 '도굴'을 가업으로 이어오는 가문이 있을 정도로 도굴이 심하다. 반대 사례로 로마 제국의 '다키아 침공' 당시를 보면, 다키아는 로마군으로부터 보물을 뺏기지 않으려고 강의 물길을 막은 뒤 그 강바닥에 보물을 파묻고 다시 강을 흐르게 하는 등의 방식까지 썼지만, 로마군은 이걸 금방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