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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프 더용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0m 우승자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요험 아위트데하거
(2002)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보프 더용
(200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훈
(2010)

<colbgcolor=#66ccff,#141425><colcolor=#ffffff> 보프 더용
Bob de Jong
파일:/image/117/2014/02/19/201402190006302288_1_59_20140219000702.jpg
본명 보프 요하너스 카롤뤼스 더용
Bob Johannes Carolus de Jong
출생 1976년 11월 13일 ([age(1976-11-13)]세)
자위트홀란트 카흐엔브라섬 레이마위던
국적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0cm, 77kg
종목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0000m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생애 및 주니어 시절2.2. 1996-97 시즌2.3. 1997-98 시즌2.4. 1999-00 시즌2.5. 2000-01 시즌2.6. 2001-02 시즌2.7. 2002-03 시즌2.8. 2003-04 시즌2.9. 2005-06 시즌2.10. 2005-06 시즌2.11. 2006-07 시즌2.12. 2007-08 시즌2.13. 2008-09 시즌2.14. 2009-10 시즌2.15. 2010-11 시즌2.16. 2011~13 시즌2.17. 2013-14 시즌
3. 코치 경력
3.1. 2017년, 2018년3.2. 2018년~
4. 수상 기록

[clearfix]

1. 개요

1995년부터 2016년까지 활약한 네덜란드의 전직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이며, 5000m와 10000m가 주종목이었다. 독일의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선수인 클라우디아 페흐슈타인과 더불어 세계 정상급 기량을 20여년 간 그대로 유지했던 살아있는 전설이다. 한국에서는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은 박대용 밥데용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네덜란드어로 읽으면 '보프 더 용'이 맞다.

2. 선수 경력

2.1. 생애 및 주니어 시절

1976년 11월 네덜란드 남부의 레뮤덤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처음 스케이팅을 시작했으며, 레뮤덤의 IJsclub Nut en Vermaak[1]에서 스케이팅을 배웠다. 1994년에 린 프로머 코치가 그를 주니어 팀에 합류시켰다. 1995년과 1996년에 올라운드 주니어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6년에는 5000m에서 6분 37초 55로, 3000m에서 3분 53초 06으로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는데 3000m에서 작성한 기록은 시니어와 주니어를 통틀어서 세계신기록이었다.

2.2. 1996-97 시즌

시니어 월드컵에서 뛰기 시작했으며, 1996년 12월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10000m에서 3위를 차지해 시니어 무대 첫 메달을 따냈고, 1997년 1월 이탈리아 바셀가 디 피네에서 열렸던 월드컵 7차 대회 10000m에서 트랙레코드를 경신하며 시니어 무대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97년 3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 10000m에서는 동메달을 차지하며 시니어 데뷔 첫 해부터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3. 1997-98 시즌

21살에 처음 출전한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5000m 4위[2]와 10000m 이때부터 풍차국 독주의 징조가 은메달을 기록하면서, 첫 올림픽 치고는 무난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2.4. 1999-00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종합 3위를 기록했다.

2.5. 2000-01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종합 2위를 기록했다.

2.6. 2001-02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종합 2위를 기록했고, 무엇보다도 25세라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전성기의 정점을 찍는 와중에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며 맞이했던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의외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첫 경기 5000m에서 마지막 16조에 배정된 밥 데용은 유타 올림픽 오벌에 적응을 하지 못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 함께 탔던 일본의 도시히토 이토카와에게 16초나 밀리는 기록을 하면서 꼴찌에서 3번째를 차지했으며, 동료였던 요험 아위트데하거에게도 29초 31 뒤지면서 그의 우승을 바라만 봐야 했다.

이 여파로 인하여, 10000m 경기에서도 요험 아위트데하거와 지아니 로메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가져가는 동안 1위에 50초나 뒤진 15위를 기록했다. 정말 잊고 싶은 올림픽을 마치게 되었다.

2.7. 2002-03 시즌

에는 월드컵 랭킹 2위를 기록했고, 2003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5000m 2위, 100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부활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8. 2003-04 시즌

2004년 서울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5000m 6위, 10000m에서 라이벌인 칼 베르하연에 이어서 2위를 차지했다.

2.9. 2005-06 시즌

2005년 독일 인첼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5000m 2위, 10000m 우승을 차지하며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2.10. 2005-06 시즌

월드컵에서는 자국의 헤이렌베인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팀추월에서 3위를 기록한 것 외에는 참가했던 4번의 월드컵 개인 종목에서 모두 입상에 실패하며 올림픽 우승 후보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파일:external/photos1.blogger.com/bob%20de%20Jong%20Gold.0.jpg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10000m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의 모습
그리고 맞이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5000m에서는 채드 헤드릭[3], 당시 떠오르던 신성 스벤 크라머에게 밀려 6위를 기록했지만, 10000m에서 4조에 배정되어 노르웨이의 웨스데인 그뢰덤을 상대로 자신의 개인 최고 기록인 13분 01초 57을 기록하며, 채드 헤드릭과 동료인 칼 베르하연을 제치고 당시 극악의 빙질을 가진 오벌 링고토에서 트랙레코드를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올림픽에서 우승한 공로로 여자 3000m 경기에서 우승한 이레인 뷔스트와 함께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으로부터 네덜란드 사자 훈장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으며, 생애 첫 아르트 스헹크상을 수상했다.[4]

2.11. 2006-07 시즌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10000m에서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달 뒤, 밥 데용은 소속팀 Telfort와 잉그리드 폴 코치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게 된다. Telfort는 재계약이 불가한 이유로 향후 팀이 장거리보다는 중거리와 올라운드에 주력할 생각이며, 올림픽 챔피언이 된 밥 데용의 연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당시 독일 남자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바트 슈텐 코치와 함께 하기로 결정하고 이 시즌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독일 국가대표팀의 비공식 멤버로 훈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6년 여름에 출연했던 Peking Express[5]라는 TV쇼에서 12일간 인도에 갔다가 8kg이 빠져서 돌아온 그는 2006-07 시즌에 출전한 모든 월드컵에서 입상에 실패했고, 그 결과 종목별 세계선수권에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2.12. 2007-08 시즌

월드컵 최고 성적이 3위에 그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13. 2008-09 시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에서 10000m 우승을 차지하고 2008년과 2009년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 10000m에서 2년 연속 동메달을 차지하는 등 서서히 부진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14. 2009-10 시즌

파일:이승훈 보프더용.jpg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10000m 시상식 (이승훈 금메달, 보프 더용 동메달)
그리고 맞이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등 부상으로 3분 이상 스케이팅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상태였지만, 테이핑과 진통제에 의지해 출전을 감행했다. 5000m에서는 6위를 차지했지만, 10000m에서 스벤 크라머의 크나큰 코스 방향 이탈 실수 덕분에 이승훈, 그리고 러시아의 이반 스콥레프와 함께 메달을 차지하면서, 플라워 세레모니 당시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그리고 박대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4년간 함께했던 바트 슈텐 코치가 독일을 떠나 캐나다 국가대표팀을 지도하게 되면서 밥 데용은 또다시 새 코치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는 심지어 스키 크로스로 종목을 변경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에 도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0년 4월 노르웨이 노어프젤에서 열린 노르웨이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크로스 컨트리 스키어로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16위를 기록한 바 있다.

2.15. 2010-11 시즌

마음을 다잡고 요리트 베르스마가 속해있던 BAM팀에 합류해 질레트 아네마 코치의 지도를 받게 된다. 올림픽 이후 월드컵 랭킹은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여 2011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5000m와 10000m에서 우승했다.

2.16. 2011~13 시즌

2012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10000m 우승, 2013년 10000m 동메달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특히 2011년 3월에 독일 인첼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 10000m에서 유럽에서 가장 빠른 12분 48초 20으로 우승한 것이 높게 평가받아[6] 2011년에 생애 두번째 아르트 스헹크상과 Oscar Mathisen상[7]을 수상했다. 2011-12 시즌에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 5000m에서는 6분 21초 23을 기록하면서 6분 21초 87에 들어온 해당 종목 최강자로 꼽히는 스벤 크라머를 0.64초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17. 2013-14 시즌

네덜란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5000m는 얀 블록하위선에게 밀려 탈락하였으나, 10000m 3위로 진출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10000m에서 13분 07초 09로 뒷 조의 베르스마가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고, 마지막 조의 이승훈스벤 크라머가 베르스마의 기록을 의식해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이승훈을 4초 차로 제치고 동메달을 기록하여 1998년 올림픽 10000m에 이어서 네덜란드의 금, 은, 동 싹쓸이에 공헌하였다.[8] 이 메달로 그는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의 한 개인 종목(10000m)에서 4개의 메달을 따낸 첫번째 남자 선수가 되었으며,[9] 4번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첫번째 네덜란드 선수가 되었다.[10] 또한 그는 37살의 나이로 메달을 따면서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86년만에 등장한 최고령 남자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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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하이네켄의 집에서 스벤 크라머, 요리트 베르스마와 함께 축하 연회를 즐기는 장면
2014년 3월 12일 밥 데용의 담당 코치였던 질레트 아네마가 BAM팀에서 Clafis팀으로 이적하면서, 리빌딩 차원에서 밥 데용의 이적설이 나오고 있다. 올 시즌에 나이 및 체력의 한계로 월드컵 랭킹 7위에 그치고 있고, 올림픽 10000m에서 후배들이 12분대로 금, 은을 차지하는 동안, 13분 07초로 이승훈을 겨우 제치고 동메달을 획득했으니, 과연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올림픽 전부터 질레트 아네마 코치와 불화가 있었다고 하며 5월 8일, 팀을 새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마라톤스케이팅과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를 계속 병행하겠다고 한다. 6월 16일, 밥 데용은 New Balance라는 팀과 계약을 맺었다.

2015년 6월 26일, 2015/16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결정하고 2006년부터 4년간 함께했던 바트 슈텐 코치가 있는 캐나다 캘거리로 넘어가 캐나다 국가대표팀과 여름동안 함께 훈련했다. 2015년 10월, 캐나다에서 돌아온 그는 팀 Corendon에서 피터 콜더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맞이한 2015/2016 시즌에 독일 인첼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에서 12위를 기록했고, 자국의 헤렌벤에서 열린 네덜란드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는 10000m에서 13분 24초 57을 기록하며 입상에 실패한 것 뿐만 아니라 레이스 도중 암밴드를 벗어던졌다가 실격당했다.[11] 39살의 밥 데용은 2016년 2월 자국의 하를럼에서 자신의 90번째이자 마지막 10000m 경기를 14분 43초 06에 마친 것을 끝으로 20여년간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16년 3월, 밥 데용은 네덜란드 왕립 스케이팅 연맹으로부터 20여년간 올림픽 4회 입상, 세계선수권 대회 7회 우승, 네덜란드 선수권 대회 20회 입상 등의 훌륭한 성적으로 스케이팅 스포츠에 크게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Oeuvre상을 수상했다.[12]

스케이팅 외에 건축 일에도 관심이 많았던 밥 데용은 건축 관련 인턴십을 받았으며, BAM팀에서 스케이터로 활약하던 당시에도 헤렌벤 티알프 경기장의 신축에 BAM팀을 대표해서 참여했다.

은퇴 이후, 보프 더 용은 스케이팅에서 한동안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에 1년동안 네덜란드 프리슬란드에서 주 20시간 목수로 일하면서 해외 봉사활동과 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다가 다시 스케이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017년 초에 네덜란드 왕립 스케이팅 연맹을 통해 스케이터 트레이닝 과정을 밟았다. 이후, 여러 곳에서 오퍼가 들어와 어디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까 고민하던 차에 한국빙상연맹에서도 연락이 왔고, 아시아 국가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없어서 잠시 망설였지만,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잠재력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에 친분이 있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한국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코치를 지낸 에릭 바우만 코치 등의 조언을 얻어 한국행을 결정했다.

2017년 4월 26일,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5월부터 평창 올림픽때까지로, 빙상연맹은 단거리, 매스스타트, 팀추월같은 종목에 비해 1500m, 5000m, 10000m 등 장거리 개인종목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하고 있기에 보프 더 용을 영입했다고 발표하였다.

3. 코치 경력

3.1. 2017년, 2018년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했다. 30대 후반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 갔던 만큼 체력 관리의 노하우, 네덜란드빙속 기술 등을 전수해 줄 것으로 기대했고, 실제로 효과를 입증했다. 처음 빙상연맹에서 제의가 왔을 때 망설였다고 하는데, 망설이던 그를 대한민국으로 이끌게 한 사람이 거스 히딩크였다고 한다.

김민석대한민국 선수 중 최초로[13] 1500m 올림픽 동메달을 따고, 차민규가 500m 은메달, 이승훈이 10,000m에서 본인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팀 추월 2연속 은메달, 매스스타트 올림픽 초대 우승 등의 호성적을 거뒀고 여자부 역시 김보름의 매스스타트 은메달 입상 및 노선영 등의 개인 기록을 6초가량[14] 향상시키는 등 코칭 능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밝은 모습과 더불어 어두운 모습까지 마주해야 했다. 김보름과 노선영 사이에서 난처해하는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팀 추월 경기가 끝난 뒤에는 준준결승에서 탈락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노선영달래 주었다. 그 때 한창 노선영과 같이 뛰었던 동료들이 논란에 휩싸여 공분을 일으켰던 터라 밥 코치의 모습이 인상깊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승훈의 말에 의하면 보프 더 용 코치는 경기 전에 옷을 몇 분에 입으며 스케이트는 언제 신어야 할 지까지 분단위로 챙겨줄 정도로 섬세하였다고 한다. 또한 레이스 끝까지 체력을 관리하는 법 등을 전수하며 이승훈이 매스 스타트에서 첫 금메달을 따는데 일조하였다. 그가 빙속 강국인 네덜란드의 노하우를 한국팀 속에 녹아들게 했음은 중장거리 선수들의 선전을 통해 알려주었다.

일단 계약이 만료되면서 3월 2일에 출국했다. 하지만 빙상연맹과 재계약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 갈 예정이라고 한다. 보프 더 용 코치는 트위터를 통해 "이승훈의 금메달을 비롯해 7개의 메달이 나오게 돼서 정말 좋았다"며 소회를 밝혔다. 선수들 역시 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4월 26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3.2. 2018년~

그런데 2018년 5월 3일에 올라온 기사에 따르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중국 대표팀 코치를 맡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 대표팀 재계약은 완전히 물건너갔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2006 토리노 10000m
은메달 1998 나가노 10000m
동메달 2010 밴쿠버 10000m
동메달 2014 소치 10000m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9 헤이렌베인 10000m
금메달 2001 솔트레이크시티 5000m
금메달 2003 베를린 10000m
금메달 2005 인첼 10000m
금메달 2011 인첼 5000m
금메달 2011 인첼 10000m
금메달 2012 헤이렌베인 10000m
은메달 1998 캘거리 10000m
은메달 2000 나가노 5000m
은메달 2000 나가노 10000m
은메달 2001 솔트레이크시티 10000m
은메달 2003 베를린 5000m
은메달 2004 서울 10000m
은메달 2005 인첼 5000m
은메달 2012 헤이렌베인 5000m
동메달 1997 바르샤바 10000m
동메달 1999 헤이렌베인 5000m
동메달 2008 나가노 10000m
동메달 2009 밴쿠버 10000m
동메달 2013 소치 10000m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5 세이네요키 종합
금메달 1996 캘거리 종합


[1]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에스메이 피서르도 같은 클럽 출신이다.[2] 1~4위가 모두 네덜란드 선수들이었다고 보는 게 무방한 것이, 바트 벨드캄프는 네덜란드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이후 벨기에로 귀화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는 인라인과 병행하고 있으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은메달리스트인 바트 스윙스의 개인 코치를 맡고 있다.[3] 스피드 인라인 스케이팅 세계센수권 대회 우승자로, 동계 올림픽 출전을 위해 빙상을 병행했다. 한국에도 여러 번 왔었고 인라인 스케이터에겐 더블 푸시 주법으로 유명하다.[4] 매년 네덜란드에서 가장 우수한 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5] 3주동안 하루 50유로센트의 예산만 가지고 인도 북부에서 남부까지 4000km를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는 프로그램[6] 참고로 이 경기에서 밥 데용과 함께 레이스를 펼친 선수가 이승훈이다. 이 경기에서 이승훈은 13분 08초 83으로 4위를 차지했으며, 함께 레이스를 펼친 선수에게 진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7] 매년 해당 시즌에 가장 우수한 경기력을 보여준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스케이팅의 오스카상으로도 불린다.[8] 밥 데용은 폐회식에서 네덜란드 기수를 맡았다.[9] 두번째 선수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부터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4개 대회 연속 5000m 메달을 딴 스벤 크라머이다.[10] 그 뒤를 이어 스벤 크라머와 이레인 뷔스트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서 4번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네덜란드 선수가 되었다.[11] 실격당하지 않았다면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12] 네덜란드 왕립 스케이팅 연맹의 125주년을 기념해 2007년 만들어진 상으로, 밥 데용은 아르트 스헹크, 샤우크여 데이크스트라에 이은 세번째 수상자이다.[13] 남자부의 경우 아시아 최초 기록이기도 하다.[14] 올림픽에서 노선영이 올림픽에서 기록하지 못했던 1분대 기록을 보여주었다. 항상 컨디션이 좋은 날에도 2분 03초나 02초를 기록했지만 올림픽에서 1분 58초 75라는 기록을 세우며 기량이 급상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