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olyai János[2]
1802년 12월 15일 ~ 1860년 1월 27일
1. 개요
보여이 야노시는 헝가리인 수학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개념을 정립한 학자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2. 생애 및 업적
Veritasium의 평행선 공준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영상. 보여이에 대해서는 6분대부터. |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에 있는 평행선 공준에 대한 증명을 시도했으나 계속 실패하던 도중,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4]
제발 포기하려무나. 그것을 기피하거라. 평행선 공준 증명에 매달리는 것은 네 건강과 복과 평온을 앗아갈 뿐이란다.
그러나 그는 평행선 공준이 다른 공준들과 독립적인 무언가라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 공준과 이론에 기초한 것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인 것이다.
물론 정리 이후 아버지께 답장이 갔다.
아버지. 저는 무(無)로부터 또다른 신세계를 창조하였습니다.
1820년부터 1823년까지 논문이 집필되었고 그의 논문은 1832년 보여이 파르커시가 집필한 교과서에 첨부되기도 하였다. 나중에 가우스에게도 보여이의 논문이 전해졌다. 가우스는 " 기하학계의 일류가 아닐 수 없는 젊은 천재" 라고 보여이를 칭찬하였으나 "이미 내가 진행한 연구가 그와 매우 비슷하였다"라고 덧붙였다.[5]
게다가 1848년 지나가던 보여이는 논문을 발표한 해로부터 이미 3년 전에 연상의 어떤 러시아 수학자가 자신의 논문과 비슷한 것을 발표했음을 알게 된다.[6]이후 그는 화가 나고 낙심해서 논문 발표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1860년 트란실바니아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그의 집에는 2만장 내외의 미출간 논문들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유일하게 출간된 그의 저작물은 아버지의 교과서에 곁가지로 낀 24장의 논문이 전부이다.
2.1. 천재
생애와는 별개로 장교까지 지내고 13살에 미적분학을 마스터한 엘리트. 거기다가 모국어인 헝가리어 이외에도 중국어와 티베트어[7]를 포함한 9개 외국어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했고 바이올린에도 소질이 있어서 빈에서 연주회까지 연 적이 있다.거기다가 군 시절 자신에게 시비를 건 자기 부대원 13명과 차례로 결투해서 모두 부상을 입히거나 무장해제시키는 무시무시한 실력을 발휘하였으며, 한 명을 쓰러뜨릴 때마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뒤 다음 상대를 쓰러뜨렸다고 한다. 물론 일이 더 커지는 걸 막기 위해 사건 이후 어찌저찌 그럭저럭 바로 전역했다. 최종 계급은 대위.[1] 위 초상화는 생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이전 자료를 토대로 2012년 같은 헝가리의 화가 머르코시 페렌츠(Márkos Ferenc)에 의해 그려진 작품이다.[2] 성이 보여이다. 헝가리는 한국과 일본처럼 인명을 적을 시 성이 이름 앞에 오는 몇 안되는 나라이다. 영문 표기는 Johann Bolyai.[3] 현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 트란실바니아는 현재 루마니아 영토이나 당대에는 헝가리 영토였다. 다만 당대에는 독립심이 강한 헝가리인을 견제하기 위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분리 정책으로 인하여 헝가리 왕국과 지벤뷔어겐 대공국이 분리되어 있었다.[4] 편지를 받았을 당시의 보여이는 군 장교였다고 한다.[5] 사실 그는 이미 연구를 마쳤고 다 알고 있었다. 그냥 불확실성과 비판이 두려워서 발표를 미루어 왔을 뿐이다.[6] 다만 먼저 나왔다는 그의 논문은 쌍곡 기하학 위주로 저술되어 있었다.[7] 중국어나 티베트어는 당시만 해도 헝가리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떡밥때문에, 당대 헝가리 지식인들 사이에서 관심이 많긴 했다. 물론 관심이 있다는 거랑,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다른 얘기지만. 사족으로, 중국어, 티베트어와 헝가리어는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다. 전자는 중국티베트어족, 후자는 우랄어족으로 소속된 어족이 서로 다르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