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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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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520> 1000~1200년 보노만
1200~1482년 다그본 왕국 보노만
1482~1500년 보노만 포르투갈령 골드코스트
1500~1620년 보노만 아고나 왕국
1620~1637년 덴키라 왕국
1637~1650년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
1650~1658년 스웨덴령 골드코스트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
1658~1670년 덴마크령 골드코스트
1670~1701년 아샨티 왕국 덴키라 왕국
1701~1723년 아샨티 제국
1723~1750년 아샨티 제국
1750~1821년 아샨티 제국
1821~1850년 아샨티 제국 영국령 골드코스트
1850~1860년 영국령 골드코스트
1860~1872년 아샨티 제국 자바르마 토후국 아샨티 제국
1872~1877년 영국령 골드코스트
1877~1884년 영국령 골드코스트
1884~1897년 독일령 토골란트 아샨티 제국
1897~1902년 영국령 골드코스트
1902~1914년 영국령 골드코스트
1914~1957년 영국령 토고 영국령 골드코스트
1957~1960년 가나 자치령
1960~1966년 가나 제1공화국
1966~1969년 국가해방위원회
1969~1972년 가나 제2공화국
1972~1979년 국가구원평의회 · 최고군사위원회
1979년 군사혁명평의회
1979~1981년 가나 제3공화국
1981~1993년 가나 임시국방위원회
1993~ 가나 제4공화국 }}}}}}}}}

1. 개요2. 역사
2.1. 기원과 건국2.2. 번영2.3. 몰락
3. 주요 교역 도시
3.1. 보노 만소3.2. 베그호3.3. 본두쿠
4. 아칸족 문화에 미친 영향5. 도시 발달

1. 개요

파일:보노만지도.jpg

보노만(Bonoman) 또는 보노국(Bono State)은 아칸족 가운데 트위어를 쓰는 보노족이 오늘날 가나 중서부에 세운 교역 국가다. '보노만'은 '보노족의 나라'라는 뜻이다. 영역은 오늘날 가나의 보노주, 보노이스트주, 아하포주와 코트디부아르 동부에 걸쳐 있었고, 보노주라는 이름도 보노족에서 비롯되었다.

12세기 무렵부터 일어난 금 무역은 중세 이래 이 지역 아칸 세력이 지닌 힘과 부의 원천이 되었다. 보노만은 금을 찾아 여러 차례 이주하며 새로운 아칸 국가들을 세운 아칸족 하위 집단들의 기원지로 널리 받아들여지며, 아칸 문화의 여러 요소도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1723년 아샨티 제국에 정복되었다.

2. 역사

2.1. 기원과 건국

파일:보보보보노만!.jpg

보노족의 전승은 자신들의 기원을 은코란자 부근의 아모위에서 찾는다. 조상들이 아모위의 구멍에서 나왔고, 여왕 아메야가 사람들을 가까운 정착지로 이끌었으며, 그 아들 아사만이 첫 번째 통치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사만은 이후 약 17km 떨어진 곳으로 옮겨 수도 보노 만소를 세웠다. 고고학적으로도 이 일대에는 5세기 무렵부터 원(原)아칸계 사람들이 바위 그늘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보노 만소는 1000년 무렵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1]

한편 보노만을 세운 아칸족이 북쪽에서 내려왔다고 보는 설명도 있다. 이에 따르면 고대 가나 제국 시기에 아칸족이 남쪽으로 이주해 모계 씨족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를 세웠고, 그 첫 나라가 11세기에 세워진 보노만이었다. 아샨티, 아크와무, 아킴, 판테 등 후대의 아칸 국가들도 보노 만소의 초기 정착지에 뿌리를 두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2.2. 번영

보노만의 번영은 금 무역에 바탕을 두었다. 수도 보노 만소는 남쪽 숲 지대의 금과 콜라 열매가 북쪽의 사하라 횡단 무역로와 만나는 곳이었고, 14~15세기에는 교역과 종교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15세기 후반 아메야우와 오부누만코마 왕 때 보노만은 영역을 크게 넓혔다.

2.3. 몰락

보노만은 17세기부터 가뭄과 왕위 다툼, 교역 흐름의 변화로 기울기 시작했다. 주변에 아칸족 국가들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보노만의 아칸족 인구가 대거 빠져나갔고, 지배층 내부의 갈등과 세금 문제도 국력을 갉아먹었다. 무엇보다 보노만은 내륙에 머물러 해안으로 직접 나갈 길이 없었던 반면, 아킴, 덴키라, 그리고 뒤이은 아샨티 같은 남쪽 국가들은 해안 무역으로 화기를 손에 넣으며 영향력을 키웠다.

결국 아샨티 제국의 오포쿠 와레 1세는 1722년 보노만을 침공해 이듬해인 1723년 수도 보노 만소를 함락했다. 보노의 마지막 독립 군주는 아메야우 콰크예 1세였다. 왕과 여왕은 쿠마시로 끌려갔고, 피난민 일부는 북서쪽의 갸만 왕국으로 옮겨 갔다. 보노 왕실은 이후 테치만(타키만)에서 다시 세워져 19세기 말까지 아샨티의 속국으로 명맥을 이었다.

3. 주요 교역 도시

3.1. 보노 만소

보노 만소(보노 만수라고도 한다)는 보노만의 수도이자 시장과 종교의 중심지로, 오늘날 보노이스트주 테치만 북쪽에 있다. 블랙볼타강 남쪽, 타노강 가까이에 자리해 사하라 횡단 대상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는 남쪽 끝에 해당했다. 그보다 남쪽에서는 체체파리 때문에 짐을 나르는 가축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젠네와 팀북투 등에서 온 대상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금, 콜라 열매, 소금, 피혁, 옷감이 거래되었다. 남서쪽에는 드와비렘이라는 큰 시장이 있었고, 무슬림 디울라 상인들도 몰려들었다. 넓이는 150~230헥타르, 인구는 약 5,000명으로 추정된다.

3.2. 베그호

베그호(비구, 비투라고도 한다)는 오늘날 보노주의 하니 마을 바로 남쪽에 있던 교역 도시다. 블랙볼타강 남쪽에 자리해 1100년 무렵부터 북쪽에서 내려오는 대상들의 중계지가 되었고, 말리 제국에서 온 만데계 무슬림 상인들이 일찍부터 드나들었다. 15세기에는 소닝케계 왕가라 출신의 디울라 상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름도 '시장'을 뜻하는 소닝케어 '비루'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금, 콜라 열매, 노예, 상아, 소금, 피혁이 거래되었고, 놋쇠 제품과 직물로도 이름났다.

1970년대 가나 대학교와 UCLA의 발굴로 적어도 다섯 개 구역에 걸친 1,000~1,500채의 집터와 가락바퀴, 염색 구덩이 등이 드러났고, 북서쪽 4.2km 지점에서는 15~17세기 무렵의 제철 유적도 나왔다. 다만 성벽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인구는 최대 7,000~1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15세기에 1만 2천 명을 넘었다고 보는 자료도 있다. 1471년 포르투갈인이 해안에 닿았을 무렵 베그호는 서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큰 도시였다.

16세기 중반 말리가 베그호에 징벌 원정을 보냈다는 이슬람 측 기록이 있지만, 현지 구전은 베그호와 브롱 군대가 침입자를 물리쳤다고 전한다. 베그호는 16~18세기에도 번성하다가 18세기 중반 아샨티 제국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전해지며, 19세기 초까지 작은 규모로 명맥을 잇다가 버려졌다. 지금은 키 3m에 이르는 풀이 유적 대부분을 덮고 있다.

3.3. 본두쿠

본두쿠(오늘날 코트디부아르의 본두쿠)는 베그호가 무너진 뒤 그곳의 디울라 상인들이 옮겨 와 중심지로 삼은 교역 도시다.[2] 이후 보노 계열 국가인 갸만 왕국의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 갸만 왕국은 17세기에 도르마에서 온 아두아나 씨족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로, 1740~1741년 아샨티에 정복되어 조공국이 되었고, 1895년과 1897년에 동부는 영국, 서부는 프랑스에 나뉘었다.

4. 아칸족 문화에 미친 영향

아칸 문화의 여러 요소가 보노만에서 비롯되었다. 왕이 쓰는 의례용 우산과 국가의 칼, 왕좌 역할을 하는 의자, 금세공과 대장장이 기술, 켄테 천 직조, 금 계량법 등이 그 예다.

종교는 통치의 중심에 있었다. 보노인들은 최고신 냐메와 그 아래의 여러 신(아보솜), 타 코라를 비롯한 타노강의 신들, 대지의 여신 아사세 야아를 섬겼다. 보노의 왕은 성스러운 아모위의 구멍을 찾아갈 수 없었고, 금요일에 농사를 짓는 것은 금기였으며, 아포 축제도 금요일에 절정을 맞는다. 초기 보노 정착지는 모계 씨족이 아니라 거리와 구역 단위로 조직되었다. 직조, 대장일, 도기, 금세공, 구슬 만들기가 중요한 생업이었고, 사금과 개오지 조개껍데기가 화폐로 쓰였다.

5. 도시 발달

에파-겜피(K. Effah-Gyamfi)는 발굴과 탄소 연대 측정, 현지 구전을 바탕으로 보노 만소의 도시 발달을 단계별로 정리했다. 13~15세기의 첫 단계에는 도심이 비교적 작았고, 수천 명의 인구가 한곳에 몰리지 않고 흩어져 살았다. 건물은 나뭇가지 틀에 진흙을 바른 초벽 구조였고, 채색 토기가 도심 반경 3.3km 안팎에 퍼져 있었다. 16~17세기의 두 번째 단계에는 도심이 훨씬 커졌고, 고르게 퍼진 주거지를 중심으로 시장이 들어섰다. 유리구슬, 운모를 입힌 토기 같은 수입품이 들어온 것으로 보아 이 시기부터 장거리 무역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보노인들은 기름진 땅과 사냥감, 물을 얻기 쉬운 곳, 수도와의 거리를 따지고 주신에게 물어 정착지를 골랐다. 정착지는 해의 움직임에 맞춰 큰길이 남북으로 뻗도록 배치되었다. 보노 만소에는 거리가 177개쯤 있었고, 담으로 둘러싼 왕궁은 여러 안뜰과 구역으로 나뉘었다. 평지붕 집(아밤)은 왕과 고위 귀족만 지을 수 있었다.


[1] 영어 위키백과는 아모위의 초기 거주를 440년경, 보노 국가의 성립을 11~13세기로 적는다.[2] 영어 위키백과의 본두쿠 문서는 이 도시를 18세기 중반 왕가라 상인들이 세웠다고 적으면서도, 아칸계 아브론족이 17세기 초 이 도시를 정복했다고 적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