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목수로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07년 6월 19일 서울특별시용산구에서 태어나 용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하고 만14세 무렵인 1921년 무렵 일본인 목수 '오다'밑에서 일을 시작하여 3년 뒤인 1924년 조선인 목수이자 대목장인 최원식[1]의 제자로 들어가 한식목공을 시작하였다.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스승에게도 인정받고 20살 무렵에는(1927년 내외) 도편수로 일을 진두지휘할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고 한다.
대한민국 건국 초창기 대궐목수로 문화재 수리에 수없이 활약했지만, 지금처럼 무형문화재 제도나 전통문화에 대한 배려가 없던 시대에 활동하던 터라, 1981년에 그의 육성을 녹음하여 책으로 냈던 <이제 이 조선톱에도 녹이 슬었네>의 편집자 서문에 의하면, 해방이후부터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지는 못하여 유일한 재산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허름한 집 한채에, 아들에게 집한칸 못해준 것이 여한이었다고 할 정도라 한다. 위 책에 의하면, 딱히 제자는 없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1960년 정기용 박사 고택 보수공사 때에 대목장 고택영(2004년 작고)을 교육한 바 있고 그밖에도 송의동과 이동호 등이 있었다. 다만, 앞선 책에서 스스로는 이사람들을 제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한 늬앙스로 회고하고있다.
1997년 11월 5일 사망하였다. 향년 90세 그가 수리에 참여하였던 건축물은 아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