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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1 00:31:23

배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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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1901년 11월 19일 ~ 1965년 12월 20일
출신지경상남도 창원군 웅동면 소사리 (현 창원시 진해구)
주요 활동1919년 창원 웅동면 주도 3·1 독립만세 시위
체포 및 옥고1919 징역 1년, 1921 징역 3년 6월
훈격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3·1 운동 참가 및 주도3. 체포 및 옥고

1. 개요

배종인은 창원 지역에서 3·1 운동 시위를 적극적으로 이끈 대표적 인물이다.

2. 3·1 운동 참가 및 주도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웅동면(熊東面) 마천리에서 열린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계광학교 교사 주기용, 동지 정운조, 문석주, 김병화 등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고, 주민들을 동원해 태극기를 배부하며 시위를 이끌었다.군중은 약 3,000여 명에 달했으며, 배종인은 시위를 이끌고 웅천리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3. 체포 및 옥고

시위 후 1919년 4월 4일, 헌병대에 체포되어 이튿날 진해 헌병대로 송치되었고 5월 2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 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 선고 후 옥고 이후 1921년 4월 8일, 진주지청에서 추가로 징역 3년 6월형을 받고 모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