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지재 裵頲 | 배정 |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미상 |
국적 | 발해 |
가족 관계 | 아들 배구 |
1. 개요
9세기 말~10세기 초에 활동한 발해의 시인.2. 생애
문적원에서 관직을 지냈으며, 882년과 894년 두 차례에 걸쳐 발해 사절단의 정사(정식 외교사절)로 일본에 파견되었다.3. 일본에서 그의 입지
일본 체류 기간 동안에는 시 창작과 교류에 굉장히 적극적이었으며, 그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인해 일본 현지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심지어 일본의 문인들과 관료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으로서 존경받는 위치에 올랐다.배정의 시를 접한 당시 일본 문인들과 학자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를 “칠보지재(七步之才)”라고 불렀다.[1]
단순히 글만 잘 쓴 게 아니라, 지식도 해박했고 외모도 출중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일본 조정에서는 용모가 뛰어나고 재능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발해 사절단을 맞이하게 했는데, 배정은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일본 왕 역시 배정의 재능과 품격 있는 외모를 높이 평가해 직접 상을 내린 일화도 있다.
4. 여담
- 《발해국지장편》에 따르면 배정이 일본 관료 도진 등과 주고받은 시들을 모은 시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없다. 다만, 《손으로 찾아온 시랑 관기전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이 기록에 남아 있다고 한다.
[1] 이는 "일곱 걸음 안에 훌륭한 시를 짓는 천재적인 재능"을 뜻하는 표현으로, 삼국지의 조비가 조식을 시험할 때 쓰인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쉽게 말해, “시적 재능이 미쳤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