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밀양 박씨 |
출생 | 1891년 7월 7일 |
경상도 영산현 계성면 명리 (現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명리[1] 745번지) | |
사망 | 1943년 4월 30일 (향년 51세)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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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91년 7월 7일 경상도 영산현 계성면 명리(現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명리 745번지)에서 태어났다.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면에서 구중회·신암우·장진수(張振秀)·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고 맹세하며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했고,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한 뒤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을 제작했다. 이후 700여 명의 시위대를 모아 제작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주민들에게 배부한 뒤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전진가, 창가 등을 부르는 등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제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공소하여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약간의 감형이 있었을 뿐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받다가 1943년 4월 30일 사망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