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12 21:35:58

박종협

<colbgcolor=#0047a0> 출생 1901년 9월 30일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면 교동
사망 1943년 10월 8일
전라남도 진도군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종협은 1901년 9월 30일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면 교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경 고향의 서당에서 교육받았다. 그러던 1919년 12월 10일, 그는 정경옥(鄭景玉)·박석현·김인수(金仁洙) 등과 함께 비밀결사 보향단(補鄕團)을 조직했다.

보향단은 각처의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모방하여 서당내에서 격문 백수십매를 작성한 후 동년 12월 30일 진도 읍내에 배포하였다. 또한 1920년 1월 1일을 기해 만세시위운동을 펼 것을 계획하였으나 격문이 발견되어 일경에 붙잡혀, 며칠간 고초를 겪었다.

이후 그는 진도지방 청년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는데 진도기독청년회 총무를 역임하는 한편 소작인회의 총무로서 1925년 소작쟁의를 주도하였다. 1926년에는 진도신흥천년회(珍島新興靑年會)를 조직하였고 작부취체해방운동(酌婦取締解放運動)에 관여하였다가 1927년 소위 출판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조선적화당사건(朝鮮赤化黨事件)에 연루되어 1929년 10월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조규선(曺圭先)·박동인(朴東仁)·곽재필(郭在必) 등과 더불어 1933년 1월 진도에서 사회주의 비밀결사 자각회(自覺會)를 조직하여 조사부장을 맡아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토론하며 항일정신을 고취하였다.

자각회가 1933년 4월 해산되자, 중앙일보(中央日報) 진도지국 지국장을 지냈으며 1934년 4월 조규선·곽재필·곽재술(郭在述) 등과 함께 진도농민조합을 결성하고 교양부 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진도농민조합은 농민들의 일상생활에 관련한 여러 문제를 해결한다는 행동강령을 정하고 야학을 개설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그러나 1934년 8월 조합원 곽재술의 구타사건으로 인해 진도농민조합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어 그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일경에 붙잡혔다. 이후 1936년 1월 목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43년 10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종협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