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갑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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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23대, 29대 |
이름 | 박일갑 (朴日甲 | Park Il-kap) |
출생 | 1926년 3월 21일 |
사망 | 1987년 9월 11일 (향년 61세) |
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167cm | 65kg |
소속팀 | 육군 특무부대 축구단[1] (?-?) |
국가대표 | 14경기 4골 (1953-1956) |
감독 | 대한민국 대표팀 (1964) 대한민국 대표팀 (1967-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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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감독.2. 생애[2]
2.1. 선수 생활
박일갑의 정확한 출생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스포티비뉴스의 신명철 기자가 2018년에 실향민 출신 전 축구 선수 박경호[3]와 했던 인터뷰에 의하면 박일갑도 실향민이었다고 한다.박일갑은 육군 특무부대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1953년 4월 11일, 싱가포르와의 친선 경기를 통해 대한민국 대표팀에도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박일갑은 1골을 넣어 대한민국의 3:2 승리에 기여했다,
1954년 3월, 대한민국 대표팀은 영원한 라이벌 일본과 스위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놓고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박일갑은 일본과의 예선 2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그의 득점은 없었다.
스위스 월드컵 개막 한 달여를 앞두고 열린 1954년 아시안 게임에서 박일갑은 3경기에 출전했다. 박일갑은 결승전 대만전에서의 1골을 포함해 2골을 넣었지만 대한민국은 대만에 2:5로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박일갑은 1954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첫 경기였던 헝가리전에 인사이드 라이트 포워드로 출전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 헝가리 선수들을 상대했지만 헝가리는 대한민국의 전력으로 맞서기엔 너무 강한 상대였고 대한민국은 0:9로 참패했다. 박일갑의 FIFA 월드컵 나들이는 이 한 경기로 끝났다.
박일갑은 1956년 아시안컵 지역 예선과 1956년 올림픽 지역 예선전을 끝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더 이상 출전하지 못했다.
2.2. 이후
박일갑은 선수 은퇴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1964년 아시안컵[4]에 출전했고 대한민국은 4개팀 중 3위를 기록했다.박일갑은 1967년 10월부터 1968년 8월까지 대표팀을 다시 지휘했고 1967년 베트남 독립기념대회[5]와 1968년 메르데카컵에 출전했다.
박일갑은 감독직을 마친 후 브라질로 이민을 갔고 상파울루에서 1987년에 사망했다.
3. 수상
3.1. 선수
3.1.1. 국가대표
[1] 1954년 월드컵 당시 소속팀이었다.[2] 출처: 위키피디아, kfa[3] 1930년생으로 해주 출신이다.[4]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 아시안컵과 같은 시기에 열린 1964년 올림픽에 대표팀을 나눠 출전했다.[5] 양지 축구단 코치 자격으로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