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142E83><colcolor=#fff> 근대 6대가 한국화 화가 박승무 朴勝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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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 심향(深香) |
| 출생 | 1893년 8월 25일 |
| 충청북도 옥천군 | |
| 사망 | 1980년 7월 25일 (향년 86세) |
| 대전광역시 중구 대오동 | |
| 직업 | 한국화 화가 |
| 본관 | 반남 박씨 |
1. 개요
대한민국의 전통화가.심향 박승무는 근대 6대가 중 1명으로 6대가 중에서 가장 오래 생존했다. 사계절의 산수를 주로 잘 그렸고, 사계절 중에서도 설경산수의 대가였다.
2. 생애
1916년 서화미술회를 졸업하고 이듬해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갔으나 3·1운동으로 중국내 한국인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1920년 일본 경찰에 의해 압송되어 귀국하였다. 2년간 옥천경찰서의 감시와 연금 하에 지내다가 서울로 올라왔다.이후 서화협회(書畵協會) 회원이 되어 서화협회 전람회와 초기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 사실적인 수법의 향토적 풍경을 출품하면서 전통 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1933년부터는 선전에는 거리를 두고 서화협회전에만 출품하였다.
1930년대 중엽부터는 사의(寫意)의 전통적 산수경(山水境)으로 회귀하는 변화를 나타내면서 부드럽고 자잘한 점선을 구사하는 특징적인 화풍을 형성해 나갔다. 그것은 현실경(現實景)과 관념적 화취(畵趣)주2를 절충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1940년에는 조선미술관이 기획한 『십명가산수풍경화전(十名家山水風景畵展)』에 초대되어 작품을 전시하였다.
50대에 접어들어 완전히 옛 법에 충실한 안정된 기법의 전통 산수로 독자적인 양식을 정립시켰다. 그러나 화면에 등장하는 민가(民家)와 움직이는 점경인물(點景人物)주3의 표현에서는 한국적인 풍정보다는 중국풍의 관념적 형식을 반복하는 한계를 보였다.
박승무는 광복 후 춘곡 고희동이 주도하는 미술계와 거리를 두고 홀로 작가생활을 하였다. 1949년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가 시작되어 추천 작가 · 초대 작가로 추대되었으나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6·25 전쟁 뒤에는 대전에 정착하여 외롭고 곤궁한 화필 생활을 하면서 만년을 보냈다. 1971년 서울신문사 주최의 『동양화6대작가전』과 197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한국동양화대전』에 초대되었다. 대표작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설청(雪晴)」이 있다.
3. 여담
- 말년에는 대전에 있는 조카집에서 살았는데, 고려대 이장열 박사가 인사동 등지에서 거래되는 박승무의 가짜그림을 들고 종로경찰서 형사 두 명과 대전에 내려가 그림을 들이밀었는데, 고령이여서 그런지 자기 그림을 잘 못알아보았다고 한다. 마침 남농 허건이 여제자 몇명과 함께 박승무의 집을 방문하고 있었는데, "형님 그림을 형님이 못 알아봐요?" 하더니, 도장 낙관을 보고 "형님 그림이 맞네." 하고 이야기 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장열 박사와 형사들은 그림을 그린 당사자가 자기 그림이 맞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