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수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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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히로시 (1998) | → | 타카히데 (1999~2000) | → | 다이호 야스아키 (2001~2002)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 |||||
박한이 (2001) | → | 박봉수 (2002) | → | 손주인 (2003~2004) |
박봉수 朴峰秀 | |
일본명 | [ruby(新井, ruby=あらい)] [ruby(峰秀, ruby=たかひで)] (아라이 타카히데)[1] |
출생 | 1977년 7월 16일 ([age(1977-07-16)]세) |
일본 오사카시 | |
국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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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성동초 - 휘문중 - 휘문고 - 고려대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96년 2차 10라운드 (전체 74번, 쌍방울)[2] 1998년 드래프트 7라운드 (주니치) |
소속팀 | 미쓰비시자동차[3] (1998) 주니치 드래곤즈 (1999~2000) 삼성 라이온즈 (2002) |
1. 개요
주니치 드래곤즈,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했던 재일교포 출신 야구선수. 비록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지는 못했으나, 역대 최초로 한일 양국 신인 드래프트에 모두 지명된 선수라는 희귀한 기록을 갖고 있다.2. 선수 경력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 출신이다. 박봉수의 할아버지는 제주도 오라동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이주했다. 박봉수의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일본에서 살기 어려워져 경제적인 이유로 8세 때 가족이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다만 할아버지 고향인 제주도가 아니라 서울에 정착했다.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학교에서는 또래 아이들에게 일본인 취급을 받아 따돌림을 당하다가 야구부 활동을 보고 야구를 하면 아이들과 친해지지 않을까 싶어 야구를 시작했다. 휘문고 졸업 후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되었으나 입단을 거부하고 고려대로 진학하였다. 휘문고, 고려대 시절에는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뽑혀서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1998년 고려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버지의 주선으로 사회인 야구팀인 미쓰비시자동차 팀에 입단하였다. 사회인 야구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입단 제의가 왔고, 1999년 주니치에 신인 지명되어 입단하였다.[4] 등록명은 일본명 이름만을 따온 타카히데(峰秀).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도 외국인 선수 취급을 받으면서 일본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만 경험하고 주니치에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0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여 SK 와이번스에 입단을 타진했으나 결국 무산됐고, 이후 LG와 삼성에 러브콜을 받았다가 2002년 삼성에 입단했다. 2002년 성적은 8게임 출장에 볼넷 1개. 2군에서도 2할 초반대의 타율로 부진하면서 1년만에 방출됐다.
3. 은퇴 이후
방출되면서 야구를 그만두었고 중퇴했던 고려대학교에 돌아가서 학부과정을 마친 이후[5] 군에 입대하였다. 일본 영주권자여서 군 입대가 의무가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한국 소재 일본계 기업에 취직해 직장인으로 살다가 아버지가 했던 수타우동집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성남시에 수타우동 전문점을 차렸다. 현재도 분당에서 우동전문점을 성공적으로 경영 중이다.4. 연도별 성적
역대 타자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2 | 삼성 | 8 | 6 | .000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143 |
KBO 통산 (1시즌) | 8 | 6 | .000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143 |
5. 관련 문서
[1] 현재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므로 사용되지 않는다. NPB에서는 이름 峰秀를 등록명으로 사용했다.[2] 당시는 대학교 진학 후에도 지명권이 유효했는데, 다만 박봉수의 경우 지명받은 후 고려대로 진학했다가 일본 구단에 지명받으면서 쌍방울에서 지명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국내 복귀를 타진했을 때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한 SK 와이번스에서 먼저 영입을 제안했다든지 국내 지명권이 없어졌다면 신고선수로 입단해 6월 이후(당시 기준) 1군 경기에 나올 수 있었을테지만 삼성 입단 후 2002년 4월에 1군 경기에 나온 걸 보면 주니치에 입단한 것과 별개로 KBO에서의 지명권은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3] 아이치현 소재[4] 학창 시절을 한국에서만 보냈지 일본 영주권자였기에 NPB 드래프트 참가에 문제가 없었다.[5] 그래서 2000년대 초반에 고대를 다닌 사람 중에는 학교에서 은퇴 후 복학한 박봉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애초에 야구를 은퇴했기 때문에 일반 학생으로 대학에 다니며 동아리도 다니는 등 평범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