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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51:45

박득수

파일:박득수.png
성명 박득수(朴得洙)
이명 박점수(朴点洙)
본관 함양 박씨
생몰 1909년 11월 22일 ~ 1950년 8월 13일
출생지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면 성가리[1]
사망지 전라북도 임실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득수는 1909년 11월 22일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면 성가리에서 태어났다. 1928년 1월 15일 오전 10시에 임실청년동맹회관에서 조선청년총동맹 임실청년동맹 창립대회가 열려 임시집행부를 뽑았는데, 집행위원장에 이명수(李明壽)가 선임되고, 박득수는 체육부장에 임명되었다. 오후 5시 같은 장소에서 임실청년동맹 임실지부 설치대회가 열렸는데, 집행위원장에 최일(崔一)이 선임되고, 그는 정치부 위원에 임명되었다.

이후 1928년 10월경에 전북 김제군 김제면에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한 그는 고려공산청년회의 임실면 야체이카에 속하고, 임실면에서 3회 야체이카를 조직하여 사회문제에 대해 토의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1929년 3월 12일, 임실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1929년 5월 6일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고, 1931년 5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 300일 통산)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1932년 7월 18일에 출감하였다. 이후 임실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8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박득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함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갑쇠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