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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51:26

박두규

성명 박두규(朴斗圭)
이명 박두규(朴斗奎)
생몰 1897년 6월 4일 ~ ?
출생지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 조천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두규는 1897년 6월 4일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에 참가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김장환(金章煥)과 그의 백부 김시우(金時宇) 등의 설득을 받아들이고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했다. 그들은 3월 21일 오후 3시경 인근의 주민과 서당 생도 등 약 500~600명과 함께 조천리 동산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위대가 큰 길로 나서자, 일본군 무장대가 출동하여 박두규 외 12명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후 군중은 체포된 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22일에서 24일까지 시위를 지속했다.

박두규는 1919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출옥한 그는 1920년 10월 중순 경 제주 성내에 들어와 신일본주의(新日本主義)를 선전하던 국민협회(國民協會)의 총무 정병조(鄭丙朝)에게 협박장을 보냈다가 다시 체포되어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박두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