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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895년 7월 23일 |
|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462 (현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 |
| 사망 | 1970년 3월 5일 (향년 74세) |
| 사망지 미상 | |
| 묘소 | 대한민국 (산골) |
| 본관 | 미상 |
| 다른 이름 | 이명: 박순옥(朴巡玉), 박순옥(朴順玉), 박정옥(朴廷玉) 창씨명: 아라이 세이헤이(新井淸平) |
| 운동 계열 | 3·1 운동 |
| 관련 사건 | 청안 만세운동 |
|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 (2022년 추서) |
1. 개요
박내명은 1919년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에서 일어난 3·1운동에 참여하여 일제 경찰에 항거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2. 생애
1895년 7월 23일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1919년 3월 30일 청안시장에서는 약 2,000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은 시위 주도자들을 체포하여 청안경찰관주재소로 연행하였다.
박내명은 이러한 강제 연행에 항의하며 임초색 등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향해 돌을 던지며 연행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발포하였고, 시위대는 일시적으로 흩어졌으나 박내명은 끝까지 항거하며 돌을 던져 전화선을 파괴하는 등 항일 시위를 이어갔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8일 공소가 기각되었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11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옥고를 치르며 독립운동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202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3. 참고 문헌
- 「판결문」, 공주지방법원, 1919. 7. 7.
-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1919. 8. 8.
- 「판결문」, 고등법원 형사부, 1919. 10. 11.
- 『독립운동사자료집』 제5집,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28권, 국가보훈처,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