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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8:51

박기준(독립운동가)

1. 정주군 출신 독립운동가2. 함경남도 독립운동가, 박기준

1. 정주군 출신 독립운동가

성명 박기준 (朴基濬)
생몰 1875년 ~ ?
출생지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박기준은 1875년경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서울에서 3.1 운동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자 정주군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3월 2일 오후 3시경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소재 예배당에서 교회 신도와 오산학교 학생 등 80여 명에게 독립만세시위운동을 독려하는 연설을 했다가 체포되었다. 하지만 만세시위는 그가 체포된 후에도 3월 5일에 발발해 약 2만 5천명에 달하는 군중이 참여했다.

박기준은 1919년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민족자결 문제가 세계열강이 공인한 것이라고 명확히 게재 공포되었으므로, 이번에 본인은 위 문제를 고향 마을 예배당에서 일반 신도 및 학생들에게 설명하였다."고 밝혔다. 출소 후 그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박기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함경남도 독립운동가, 박기준

성명 박기준(朴基俊)
생몰 ? ~ 1921년 1월 3일
출생지 미상
사망지 함경남도 삼수군 중평장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박기준은 1920년대 초 함경남도 삼수군 서기로 근무하면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면직되었다. 이후 1921년 1월 3일 화물을 운송하던 중 함경남도 중평장 경찰서 수사반에게 검사받던 중 폭탄 2개가 발견되어 취조를 받게 되었다. 이에 순사의 총을 빼앗아 저항을 시도했으나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기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