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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바웅 왕조 제7대 국왕 바지도 ဘကြီးတော် | Bagyidaw | |
| <colbgcolor=#53D9C4><colcolor=#fff> 출생 | 1784년 7월 23일 |
| 꼰바웅 왕조 아마라푸라[1] | |
| 사망 | 1846년 10월 15일 (향년 62세) |
| 꼰바웅 왕조 만달레이주 아마라푸라 | |
| 재위 기간 | 제7대 국왕 |
| 1819년 6월 5일 ~ 1837년 4월 30일 | |
| 전임자 | 보도파야 |
| 후임자 | 타야와디 민 |
| 부모 | 아버지: 더도 민소(သတိုးမင်းစော) 어머니: 민 께 |
| 종교 | 상좌부 불교 |
1. 개요
바지도(ဘကြီးတော်)는 꼰바웅 왕조의 7대 국왕이다. 신뷰신 시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꼰바웅 확장의 마지막 시기이자, 대영제국과 첫번째 결정적인 패배를 동시에 겪은 시대를 대표했다.2. 생애
바지도가 즉위했을 때 꼰바웅 왕조는 최전성기에 있었다. 동쪽으로는 신뷰신기에 시암의 아유타야 왕국을 무너뜨렸고, 서쪽으로는 바지도가 이 업적을 이어받아 마니푸르, 아삼 방면으로 팽창해나가고 있었다.재위 전반기의 바지도는 1819년 마하 반둘라 장군의 지휘 하에 마니푸르를 복속했다. 아삼의 아홈 왕국(Ahom kingdom)의 왕 찬드라칸타 싱하가 벵골군을 등에 업고 미얀마에 대항하려고 하자, 바지도는 1822년 아삼 왕국을 해체하고 마하 반둘라를 아삼 총독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이 정복이 화근이었으니, 이때부터 영국의 영향권과 대대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찬드라칸타 싱하는 영국령 벵골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때까지도 영국은 단지 국경 수비대를 강화할 뿐 버마와 대대적 전쟁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라칸, 아삼, 마니푸르 지역에서 잇따라 반란이 일어나자 버마군은 이들을 추격해 영국령 벵골 내까지 진입했다. 결국 1824년 3월 5일, 제1차 영국-버마 전쟁이 발발한다.
초기에는 마하 반둘라가 지휘하는 버마군은 라무에서 영국군을 격파하고 성과를 냈지만, 5월에 영국이 양곤을 통한 해상 원정을 시도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1825년 4월 1일 다누뷰(Danubyu) 전투에서 마하 반둘라가 사망하고 버마는 몇 달동안 항전을 계속했지만 실패한다. 결국 1826년 2월 24일 영국에게 버마 서부 영토 할양, 전쟁배상금 및 자유 통상권을 양보하는 얀다보 조약을 맺는다.
이후 바지도는 조약을 개정하여 영토 일부를 반환받고, 영국 동인도 회사가 아닌 영국 국왕과 직접 교섭하고자 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낙담한 정사에서 손을 놓았고, 대신 메 누 왕비와 그녀의 동생인 마웅 오(စလင်းမင်းသားကြီး မောင်အို)가 왕국을 주도했다. 결국 1837년 일어난 타야와디 민의 궁정 반란에 바지도와 외척 세력은 모두 척결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