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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8-01 12:41:23

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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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바웅 왕조 제7대 국왕
바지도
ဘကြီးတော် | Bagyidaw
<colbgcolor=#53D9C4><colcolor=#fff> 출생 1784년 7월 23일
꼰바웅 왕조 아마라푸라[1]
사망 1846년 10월 15일 (향년 62세)
꼰바웅 왕조 만달레이주 아마라푸라
재위 기간 제7대 국왕
1819년 6월 5일 ~ 1837년 4월 30일
전임자 보도파야
후임자 타야와디 민
부모 아버지: 더도 민소(သတိုးမင်းစော)
어머니: 민 께
종교 상좌부 불교

1. 개요2. 생애

1. 개요

바지도(ဘကြီးတော်)는 꼰바웅 왕조의 7대 국왕이다. 신뷰신 시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꼰바웅 확장의 마지막 시기이자, 대영제국과 첫번째 결정적인 패배를 동시에 겪은 시대를 대표했다.

2. 생애

바지도가 즉위했을 때 꼰바웅 왕조는 최전성기에 있었다. 동쪽으로는 신뷰신기에 시암의 아유타야 왕국을 무너뜨렸고, 서쪽으로는 바지도가 이 업적을 이어받아 마니푸르, 아삼 방면으로 팽창해나가고 있었다.

재위 전반기의 바지도는 1819년 마하 반둘라 장군의 지휘 하에 마니푸르를 복속했다. 아삼의 아홈 왕국(Ahom kingdom)의 왕 찬드라칸타 싱하가 벵골군을 등에 업고 미얀마에 대항하려고 하자, 바지도는 1822년 아삼 왕국을 해체하고 마하 반둘라를 아삼 총독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이 정복이 화근이었으니, 이때부터 영국의 영향권과 대대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찬드라칸타 싱하는 영국령 벵골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때까지도 영국은 단지 국경 수비대를 강화할 뿐 버마와 대대적 전쟁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라칸, 아삼, 마니푸르 지역에서 잇따라 반란이 일어나자 버마군은 이들을 추격해 영국령 벵골 내까지 진입했다. 결국 1824년 3월 5일, 제1차 영국-버마 전쟁이 발발한다.

초기에는 마하 반둘라가 지휘하는 버마군은 라무에서 영국군을 격파하고 성과를 냈지만, 5월에 영국이 양곤을 통한 해상 원정을 시도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1825년 4월 1일 다누뷰(Danubyu) 전투에서 마하 반둘라가 사망하고 버마는 몇 달동안 항전을 계속했지만 실패한다. 결국 1826년 2월 24일 영국에게 버마 서부 영토 할양, 전쟁배상금 및 자유 통상권을 양보하는 얀다보 조약을 맺는다.

이후 바지도는 조약을 개정하여 영토 일부를 반환받고, 영국 동인도 회사가 아닌 영국 국왕과 직접 교섭하고자 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낙담한 정사에서 손을 놓았고, 대신 메 누 왕비와 그녀의 동생인 마웅 오(စလင်းမင်းသားကြီး မောင်အို)가 왕국을 주도했다. 결국 1837년 일어난 타야와디 민의 궁정 반란에 바지도와 외척 세력은 모두 척결당한다.
[1]미얀마 만달레이주 아마라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