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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8 21:50:50

바실리 수리코프

Василий Суриков
바실리 수리코프|Vasily Surikov
파일:Surikov_by_Repin.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바실리 이바노비치 수리코프
Василий Иванович Суриков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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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48년 1월 24일 (탄생 [age(1848-01-24)]주기)
러시아 제국 예니세이스크 현(県)
크라스노야르스크
사망 1916년 3월 19일(향년 68세)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
묘소 러시아 모스크바 바간코보 묘지

1. 개요2. 생애3. 작품

1. 개요

바실리 이바노비치 수리코프는 러시아의 화가이다. 이반 크람스코이, 일리야 레핀 등과 함께 러시아 이동파(移動派, 러시아어: Передвижники, 영어: Peredvizhniki)를 대표한다. 사실주의적 화풍을 통해 러시아의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2. 생애

3. 작품

파일:바실리 수리코프 - 대귀족부인 모로조바.jpg
'대 귀족부인 모로조바' (Боярыня Морозова)
1884-1887년, 모스크바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
캔버스에 유화. 304 × 587.5cm
러시아의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귀족여인 페오도시아 모로조바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17세기 러시아에서는 <니콘의 개혁>으로 알려진 종교개혁으로 인해 정교회의 분열이 발생했다. 이때 개혁 이전의 믿음을 고수한 사람들을 고의식파[1]라 하였는데 모로조바 또한 이에 속했다. 고의식파는 막대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 그림에서는 사형을 언도 받고 끌려가는 모로조바 부인의 모습을 사람들이 모여 바라보고 있다. 모로조바 부인은 두 손가락을 모아 들며[2] 사람들에게 뭔가 외치고 있고,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하는 사람, 조롱하듯 웃는 사람, 안타까워 하는 사람,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사람 등 다양한 반응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림 오른편 아래 모로조바 부인을 바라보며 역시 두 손가락을 모아 손짓하는 유로지비(юродивый)[3]가 보인다.


[1] '분리파'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멸칭으로 여겨진다고 한다.[2] 고의식파는 성호를 그을 때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만 사용했고, 개혁파는 그리스 정교회나 가톨릭처럼 세 손가락을 모아서 성호를 그었다.[3] 일명 '바보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