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르시아 전쟁 당시 고대 그리스의 군인
1.1. 개요
마라톤 평원에 있는 그의 동상. |
1.2. 생애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의 명장으로 활약했다. 마라톤에서 페르시아군에 맞서 싸우자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주장하였으며, 이로 인해 성사된 마라톤 전투에서 칼리마코스와 함께 대승을 거둔다. 열세였던 병력으로 당대의 그리스군답지 않은 공세적 전술을 펼쳤으며, 그의 과감한 전술은 그리스군 특유 중장보병의 강력함과 시너지를 이루어 페르시아군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였다.동양과 서양 문명권간 최초의 충돌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아 군사학자인 풀러(John Frederick Fuller)는 "마라톤 전투 이후부터 세계 역사는 서양이 지배하게 되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니 밀티아데스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제국주의 시대 구미권 사학계의 입장에 불과하다.
허나 이러한 눈부신 전공에도 불구하고 밀티아데스는 훗날 공금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옥사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의 아들인 키몬 역시 페르시아 전쟁 이후 친(親) 스파르타 보수파 정치가로 활약하다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민주파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