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00:54:58

미하엘 콘젤

오스트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Konsel_Profile.jpg
<colbgcolor=#eeeeee> 이름 미하엘 콘젤
Michael Konsel
출생 1962년 3월 6일 ([age(1962-03-06)]세)
오스트리아
국적
[[오스트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소속 포르투나 05 (1968~1978 / 유스)
크리첸도르프 (1978~1982 / 유스)
피르스트 비에나 FC (1982~1984)
라피트 빈 (1984~1997)
AS 로마 (1997~1999)
베네치아 FC (1999~2000)
국가대표 43경기(오스트리아 / 1985~1998)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수상 경력
5.1. 선수
5.1.1. 클럽5.1.2. 개인

[clearfix]

1. 개요

파일:Konsel_Roma.webp

오스트리아의 前 축구선수.

80~90년대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를 대표했던 수문장이자 13년간 활약했던 라피트 빈의 레전드이다.

2. 플레이 스타일

루디 하이덴, 발테르 제만과 더불어 20세기 가장 위대한 오스트리아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그는 팬서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훌륭한 반사신경을 지녔고 젊었을 때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모두 소화한 경험을 통해 후방 빌드업 능력 또한 발군이었으며 라인을 빠져나갈 때의 속도와 능숙함이 돋보인 스위퍼 스타일의 골키퍼였다. 이러한 성향은 80년대 축구계의 변화로 골키퍼에게 선방능력 뿐만 아니라 스위퍼 능력 등을 요구하게 됐는데 콘젤은 그에 적합한 현대적인 골키퍼였다.

경기 중 크로스 또는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기 위해 돌진할 때나 특히 높은 수비 라인, 오프사이드 트랩 및 구역 표시 시스템에 의존하는 팀에서[1] 그는 스위퍼 키퍼 롤을 훌륭히 수행했다.

또한 콘젤은 당대 최고의 골키퍼인 디노 조프를 롤모델로 삼았고 그의 플레이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3. 클럽 경력

콘젤은 피르스트 비에나 FC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1985년에 지역 라이벌인 라피트 빈으로 이적했다. 그 후 그는 1980년대 라피트 빈의 황금기에 일원으로 활약하여 2번의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과 3번의 오스트리아 컵과 오스트리아 슈퍼컵을 거머쥐며 리그 수위급 골키퍼로 활약했다.

자국리그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콘젤은 빛났는데 1985년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비록 에버튼에게 패했지만 그는 대회내내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는 12년 동안 라피드에서 머물렀고 마지막 두 시즌 동안에는 팀의 주장을 맡았다. 1996년에 그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열린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 출전하며 자신의 2번째 위너스컵 결승전을 치렀는데,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에서 그는 경기내내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팀은 이번에도 1-0으로 패하며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7년, 35세의 늦은 나이에 콘첼은 해외 무대로 자리를 옮겨 즈데넥 제만 감독이 이끄는 세리에 A의 명문 AS 로마로 이적했다. 비록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클럽에 합류한 첫 해에 리그 최고의 골키퍼와 최고의 외국인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로마에서의 두 번째 시즌은 다소 아쉬웠고 그는 베네치아 FC로 이적한 뒤 한 시즌 동안 머무른 뒤 선수생활을 마쳤다.

4. 국가대표 경력

1985년 10월 유고슬라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A대표팀 데뷔했으며, 1990년과 1998년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1990년 월드컵에서는 클라우스 린덴베르거의 백업 역할을 하였으나 1998년 월드컵에서는 마침내 주전으로 나서며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출전했지만 팀은 부진한 경기력으로 B조 3위를 기록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1998년 8월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가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으며, 그 경기에서 그는 그의 서브였던 프란츠 볼파트와 교체되었다.

5. 수상 경력

5.1. 선수

5.1.1. 클럽

5.1.2. 개인


[1] 화끈하고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했던 즈데넥 제만은 수비라인을 극히 끌어올렸는데 이로 인해 골키퍼는 스위퍼 키퍼롤을 수행할 수 있어야 했고 스위퍼 키퍼의 성향을 지닌 콘셀은 무난하게 롤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