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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18F92,#010101><colcolor=#EDD25E,#DDDDDD> 미움받을 용기 [ruby(嫌, ruby=きら)]われる[ruby(勇, ruby=ゆう)][ruby(気, ruby=き)] | |
장르 | 자기개발서 |
작가 | 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 |
번역가 | 전경아 |
출판사 | [[일본| ]][[틀:국기| ]][[틀:국기| ]]다이아몬드사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인플루엔셜 |
발매일 | [[일본| ]][[틀:국기| ]][[틀:국기| ]]2013. 12. 13.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2014. 11. 17. |
쪽수 | 336쪽 |
ISBN | 9788996991342 |
[Clearfix]
1. 개요
심리학 3대 거장 '아들러'의 진짜 내 인생을 살게 하는 용기의 심리학[1]
책 소개 문구
책 소개 문구
2015년 상반기 국내 베스트셀러. 인터파크 기준으로 2015년 2월부터 오랫동안 월간랭킹을 싹쓸이 한 자기계발서.
작가 기시미 이치로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목적론의 전도사격 인물로, 아들러의 철학이 그 의미에 비해 대중에 덜 알려졌다고 생각하여 그의 철학을 쉽게 다룬 내용의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제점 문단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과 저자는 아들러의 이름을 도용해 사기를 치고 있다. 목적론을 포함, 아들러의 철학과 전혀 상관이 없거나 정 반대되는 기시미 이치로 자신만의 주장을 왜곡과 날조를 통해 아들러의 말인 양 퍼트린 것이다.
2. 줄거리
≪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의 사상을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에 아들러 심리학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일본 제일의 철학자의 통찰력 있는 해석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맛깔스러운 글이 잘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책으로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쉽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철학자의 주장에 반박하는 청년의 의견이 한껏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구체적인 처방전을 접한 이후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 바로 책 속의 청년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보자.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구체적인 처방전을 접한 이후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 바로 책 속의 청년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보자.
3. 등장인물
- 청년
문답형식의 이야기 구조에서 학생 역할,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주인공이다. - 철학자
젊은이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인물.
4. 설정
아들러의 목적론을 책에 등장하는 젊은이의 비판적 질문[2]을 통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아들러 철학을 설파하려는 철학자와, 이에 대해 의문을 계속적으로 제기하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청년이 철학자의 주장을 수긍하고, 스스로의 사고를 변화시킬 것을 선언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아들러 철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교수와 학생처럼 답정너스러운 전개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하며, 지금까지 계속 부정적이었던 청년이 막바지에 이르니까 갑자기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사실 감수자 김정운도 그렇고 심지어 저자도 말미에 현실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거라는 한계를 언급한다.
5. 내용
본 책에서는 아래의 내용이 모두 청년과 철학자가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문답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원본을 직접 읽는 것을 추천한다.시작하며
- 철학자는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세계는 단순하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와 같은 언뜻 이상론으로 들리는 주장을 한다. 이에 대해 청년은 반발심을 느끼고 반박을 하려고 한다. 둘은 본격적인 문답을 시작하기 전에 '세계는 단순하고 인생 역시 단순하다'는 명제부터 우선 이야기를 나눈다.
- 청년: 아이의 눈으로 보면 세계가 단순할 수 있지만, 어른이 되면 본성이 드러난다. '너는 그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이라고 매도하고 온갖 차별과 빈부격차가 넘치는 세상을 단순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철학자: 세계가 혼돈으로 가득 차 보이는 건, '세계'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세계를 복잡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고, 그 때 받는 주관은 개인에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된다. 그렇기에 개인이 변한다면 세계도 단순하게 바뀐다. 그리고 그러한 건 바로 용기가 결정한다.
첫 번째 밤 -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 청년: 앞으로의 주장은 어떤 학문에서 기인하는가?
철학자: 철학자 본인은 그리스 철학 전문가이지만, 앞으로의 주장은 '아들러 심리학'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둘은 사실 뿌리가 같다. 또한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과는 좀 다른 '개인심리학'의 이론을 띈다. 프로이트보다는 덜 유명해도, 아들러의 사상은 사람들의 상식이나 성공 조언으로 자리잡은 상태.
- 청년: 인간은 변하고 싶어하지만, 변할 수 없는 존재이다. 친구 한 명이 방 안에서 틀어박혀 있다고 치자. 그 친구는 바깥으로 나오고 싶어함에도 밖으로 나오려면 몸에 이상 증상이 생겨 나오지 못한다. 그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걸 어떻게 바꿀 것인가?
철학자: '과거'의 사건이 인간의 '현재'를 규정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 학대를 해도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친구는 '불안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원인론)이 아니다. 친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까 불안한 감정을 지어내고 있으며, 이는 아들러 심리학에서 '목적론'으로 불리고 있다.
- 청년: 원인론과 목적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철학자: 청년이 감기에 걸렸다고 가정하자. 청년이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면, '옷을 어제 얇게 입어서 감기에 걸렸습니다'로서 진단이 끝나면 어떻게 느낄까? 말도 안 됨을 느끼고 의사에게 약이든 주사든 처방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원인론'에 입각한다면, 정신과 의사는 '과거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지금 힘든거다', '너에게는 잘못이 없다' 이런 소리만 하게 된다. 하지만 '목적론'에 입각한다면, 애초에 트라우마라는 건 없다. 우리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지금 내가 경험한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 뿐이다.
- 청년: 다른 예시를 들어보겠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누가 커피를 쏟았다고 치자. 그래서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는데, 여기에도 '목적'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가? 누가 봐도 커피를 쏟아서 화를 내는, '원인'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닌가?
철학자: 오히려 정반대다. 청년은 '큰소리를 내기 위해 화를 낸 것'이다. 말로 차근차근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런 과정이 귀찮아서 분노라는 감정을 동원한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엄마와 딸이 큰소리로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딸의 담임선생에게 전화가 왔다고 치자. 그러면 십중팔구 엄마는 분노를 확 가라앉히고 선생님과 조곤히 대화한다. 이러한 예시는 분노라는 게 언제든 넣었다 빼서 쓸 수 있는 '도구'라는 걸 의미한다.
- 청년: 감정을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기면, 그건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철학자: 감정에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감정에 저항할 수 없는 존재다'라는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과거에 저항할 수 없는 존재다'라는 의견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과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 결국 세계에 절망하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어야 한다.
- 청년: 그럼 비뚤어진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밝고 사교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철학자: 처음부터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럴려면 진정으로 아들러의 심리학을 이해하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남이 던져준 답은 원인은 무시하고 증상만 처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아들러는 정보를 남에게 알리는 저술활동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무작정 답을 수용하는 게 아닌, 대화를 통해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 청년: 사람은 각각의 성격과 가정환경을 타고 태어난다.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주목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철학자: 탁상공론은 오히려 그런 성격과 가정환경 위주로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에 집착한다고 현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행이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 사람이 불행함을 느낀 건 본인이 스스로 '불행한 상태'를 선택했기 때문. 그뿐만 아니라, 그런 불행한 상태를 스스로에게 '선(착할 선)'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 청년: 그렇다면 꼬인 성격도 타고난 게 아니라 본인이 선택했다는 건가?
철학자: 애초에 성격이 아니라 생활양식의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관적인 성격'을 가진 게 아니라 '비관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생활양식을 10살 전후에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성격이나 세계관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세계관으로 본다면 이것은 다시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사람의 환경을 부러워하는 것에 끝나서는 안되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 청년: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들, 생활양식 또한 당장 그 자리에서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철학자: 그렇지 않다. 인간은 언제든, 어떤 환경에 있든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건 그 사람이 지금까지의 생활양식이 익숙해져 바뀌지 않겠다고 (무의식적으로라도) 끊임없이 결심해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활양식이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없으니 그에 대한 내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변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다.
- 청년: 그런 생활양식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철학자: 간단하다. 바로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만약 밝아지고 싶다면, 밝아지겠다는 결심과 하나씩 바꿔나가면 된다. 그러다 좌절을 겪게 되면 좀 어떤가? 그걸 계기로 더 성장하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는 거다. 중요한 건 시도를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청년: 철학자의 주장은 지나치게 잔인하다.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아, 환경도 관계없어, 모든 게 자업자득이고 불행한 것도 다 네 탓이라고 뒤집어씌우는 게 아닌가?
철학자: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들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건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순간이다.
두 번째 밤 -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 청년은 머리를 식히고 일주일 뒤 다시 대화에 참여한다. 생각을 궁리해본 결과 역시 철학자의 말은 말이 안 된다고 결론내린 상태. 다시금 철학자의 지론을 깨뜨리기 위해 자리에 섰다.
- 청년: 사람이 스스로를 싫어한다면 그건 장점이 없어서지, 본인에게 이익이 있어서 스스로를 싫어할 수는 없다.
철학자: 단점만 눈에 들어오는 건 그 사람이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라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부정적인 생각을 낳음에도 그런 결심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의 사실을 단점이라고 규정하면 더 이상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여자가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생각해,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도 못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녀는 '남자에게 차일 경우'를 두려워하여 본인을 못생겼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못생기지 않은 것, 심지어 현재 얼굴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못생겼어'라고 인식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더라도 그 인식은 다시금 용기를 못 내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가는 그 증상을 고칠 게 아니라, 마음 속의 공포심을 극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남자에게 차일 경우', '원하는 회사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등등은 모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관계에 발을 들이면 사람들은 모두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에 관해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말할만큼,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청년: 아무리 그래도 모든 고민을 그렇게 치부하는 건 말이 안된다. 개인이 개인으로서 몸부림치는 고민, 자기 내면을 향한 고민은 모조리 부정하는 건가?
철학자: 그렇다. 내면의 고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탐구해온 주제조차도, 모두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들이다. 주제를 조금 바꿔보자. 열등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청년: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거나, 주근깨로 가득한 얼굴을 보면 열등감을 느낀다. 이런 건 어떻게 봐야 하나?
철학자: 나는 키가 155cm이다.[3] 하지만 나의 키는 열등한 게 아니다. 평균보다 작다고 하더라도, 내가 내 키에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건 주관적인 감정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가치 판단'인 것인데, 이런 가치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의 문제도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 환원된다.
- 청년: 인간은 왜 열등감을 느끼는 건가?
철학자: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기력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보편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 아들러는 이를 '우월성 추구'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못하던 갓난아기가 의사소통을 하게 되기까지나 인류사 전체서 일어난 과학의 진보도 우월성 추구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열등감은 이와 대조적으로, 우월성을 추구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 느끼는 부족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등감은 나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하기 위한 자극이다.
- 청년: 그러면 열등감은 정상적인 거니까 "어차피 나 같은 건", "어차피 열심히 해봤자"하면서 포기해도 되나?
철학자: 그건 열등감이 아니라 열등 콤플렉스다. 콤플렉스 단어 자체는 복잡하게 얽혀 어그러진 심리 상태로 열등감과 큰 관련이 없다. 열등감은 노력과 성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할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나 "나는 못생겨서 결혼을 할 수가 없다"는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나 열등 콤플렉스다.
- 청년: 하지만 학력이 낮으면 취직자리도 줄고, 못생기면 이성의 선택도 덜 받는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철학자: 그렇지 않다. 아들러는 이러한 인과관계를 '무늬만 인과법칙'이라는 용어로 정의내린다. 원래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는 것을, 마치 중대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납득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학력이 높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그런 현실을 어떻게 직시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 그건 성공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면서까지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다소 부자유스러움에도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도록 한다.
"A라서 B를 할 수 없다"는 "A만 아니라면 B를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A만 아니면 유능하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걸 암시한다는 것. 누구나 열등감을 갖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 상태를 참고 견딜 수는 없다. 그래서 보통은 노력과 성장으로 열등감을 채우려고 하지만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A만 아니라면'을 외치게 된다.
- 청년: 'A만 아니라면 다 할 수 있다'는 열등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허세 아닌가?
철학자: 맞는 말이다. 열등 콤플렉스는 또 다른 특수한 심리 상태인 우월 콤플렉스를 불러일으킨다. 못난 나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값싼 행동으로 보상받으려 하고, 이는 '거짓 우월성'을 불러일으킨다.
거짓 우월성의 대표적인 예시는 '권위 부여'이다. '권위 부여'는 권력자와 가까운 사이임을 어필하거나, 브랜드 제품을 과시하는 것과 같은 행동으로 '나'와 권위를 연결시켜 마치 스스로가 우월한 사람인 듯 꾸며낸다. 그러나 이는 거짓된 우월성으로, 권위의 힘을 빌려 포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맞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다.
- 청년: 거짓 우월성의 또 다른 사례가 있을까?
철학자: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도 거짓 우월성의 발로이다. 아들러는 "만약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열등감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랑이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아무도 '이런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거 같아 겁을 느끼는 심리상태, 이 또한 완벽한 우월 콤플렉스라고 볼 수 있다.
철학자: 자랑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불행 자랑이 있다. 불행 자랑이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불행을 마치 뽐내듯 말하거나, 타인이 변화를 권하면 "너는 내 심정이 어떤지 몰라"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는 걸 가리킨다. 불행 자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행함을 내세워 오히려 남보다 위에 서려고 한다. 남의 조언을 강하게 거부하면서, 사람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불행함을 주장하던 사람은 오히려 남들보다 '특별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 청년: 아들러는 '우월성 추구'는 보편적인 욕구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막상 사람들이 우월감에 대해 느끼는 것에는 경종을 울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철학자: 우월성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면서까지 위로 올라가려는 걸 떠오르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한 걸음 성장시키려는 의지를 뜻하지, 남들보다 높이 올라가려고 경쟁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경쟁이 아니며, 다른 사람과 억지로 비교하며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열등감 또한,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이상적인 나'와 비교하는 게 타당하다.
- 청년: 열등감과 우월감에 대해서는 이정도 얘기하면 될 것 같다. 애초에 왜 열등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는가?
철학자: '경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쟁은 승자와 패자가 있고, 이런 것을 의식하면 필연적으로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면서 세계를 적으로 취급하게 된다. 세계를 적으로 넘치는 위험한 장소로 본다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타인을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경쟁에서 벗어난다면, 사람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게 되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 청년: 1부에서 얘기한 '인간은 분노라는 감정을 지어낸다.'는 말이 잘 납득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선생님을 별 이유도 없이 매도하면 화가 나지 않는가?
철학자: 화나지 않고 그 사람의 숨겨진 목적을 생각해봤을 것 같다. 상대의 말 때문에 화가 난다면, 그 사람은 '권력투쟁'을 위해 싸움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해라. 즉, 상대방은 나에게 비난하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평소 못마땅한 나를 굴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화를 같이 내면 권력투쟁에 휘말리는 것이고, 설령 이긴다고 해봤자 상대방은 '복수'를 계획하기 때문에 여기에 말려서는 안 된다.
- 청년: 그러면 누가 인신공격을 하면 그저 참아야 하는가?
철학자: 참는다는 발상 자체가 권력투쟁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럴 때는 서둘러서 싸움에 물러나야 한다. 또한, '참는다'는 건 분노를 제어하는 걸 뜻하므로, 애초에 분노라는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말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고, 상대방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한다.
아들러의 '행동의 목표'와 '심리의 목표' |
- 청년: 앞의 말은 그럭저럭 알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들러가 왜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나온다고 할만큼 인간관계를 중요시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아들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철학자: 아들러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 양 측면에서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행동의 목표로는 '자립할 것'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심리의 목표로는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과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는 의식을 갖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인생의 과제를 직시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세 번째 밤 - 타인의 과제를 버려라
네 번째 밤 -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다섯 번째 밤 -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6. 평가
원작의 제목 '嫌われる勇氣 自己啓發の源流「アドラ-」の敎え'[4]에서 드러나듯, 책의 성격 자체가 인문학을 가장한 자기계발서이지만, 기존의 자기계발서의 문제점들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김정운 교수가 이에 대해 호의적인 서평을 남겼다. 특히 책 내의 청년이 계속적으로 토로하듯이 '단호하고, 때로는 매정하게까지 보이는' 아들러 철학의 내용을 고통과 불행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어 기존 자기계발서에 염증과 피로감을 느낀 대중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받았다. 주로 프로이트 철학의 내용적 중심인 원인론을 부정하고, 알프레트 아들러의 목적론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히키코모리의 원인은 대인관계의 상처 때문이 아닌 상처를 더 이상 받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그렇다면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의도의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이에 그것은 자존감 즉 자신을 유지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로 인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적론이라고 원인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5]이 책에서 저자를 포함한 철학자와 아들러의 요지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 인가이다. 즉, 어떤 원인으로 어떤 상태에 이르렀다 한 들 원인(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현재 상태와 해결책(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책 표지 뒷면에도 보면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라" 는 글귀가 써져있다.
그러나 후술할 기시미 이치로의 악질적인 왜곡 등 여러 비판점이 터져나오면서 2023년 현재는 불쏘시개라는 비판을 받으며 평가가 추락하고 있다.
6.1. 문제점
한국일보 오미환 기자는, 이 책이 일본에서 히트한 까닭은 사토리 세대의 정서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면서, 책의 논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정적으로 평했다.#‘미움 받을 용기’에서 철학자는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며 결과가 어찌 되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한다. 하지만 그 용기는 극히 개인적이고 내향적이어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적 맥락의 정치적 결단과는 무관해 보인다.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하긴 하지만,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얻는 방법으로 권할 뿐이다. 그런 자존감이라면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거나 국제구호기구에 기부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딱 거기까지다. ‘미움 받을 용기’가 주는 위로가 허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6.1.1. 악질적인 아들러 왜곡
2023년 10월, 독서 유튜버 너진똑이 아들러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공론화 하였다. 작가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심리학자인 아들러의 이름과 이론을 가져와 전혀 다르게 과장·왜곡하는 사기를 쳐 온 자라는 것이다. 인용한 부분도 상당수가 전후관계를 자르고 문장을 짜맞춰 내용을 왜곡하고 거짓되게 일반화한 것들이다. 작가는 “아들러가 책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의 이론은 원래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이를 숨겼다.
프로이트가 원인에 집중했던 것은, 100년 전의 당시 유럽은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만이 전부라고 보았기 때문에 당연한 발전 방향이었다. 마음을 억누르고 '원인이 없다'고 믿으라는 기시미 이치로의 주장은 사실 의지드립 따위를 펼치는 100년 전으로의 퇴행인 것이다. 20년 넘게 아들러 전문가를 자처하며 아들러의 문장 하나하나를 왜곡해하며 이런 행각을 벌이는 기시미 이치로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7. 미디어 믹스
7.1. 드라마
후지 테레비 목요극장 | ||
2016년 4분기 | 2017년 1분기 | 2017년 2분기 |
Chef ~3성급 급식~ | 미움받을 용기 | 사람은 겉모습이 100% |
8. 후속작
2016년 5월 2일에 후속편인 미움받을 용기2[6]가 나왔다. 전편에서 3년 후의 이야기이며, 청년이 도서관 사서를 그만두고 교사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아들러의 사상에 대해 염증을 느껴 다시 철학자에게 찾아가는 내용이다.9. 관련 문서
10. 외부 링크
- 미움받을 용기 - (후지TV 드라마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