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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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티아 피오니아 라 모니크 루블리스 카말루딘 샤나 카스티나 알렌디스 데 베리타 카르세인 데 라스 지은 그라스페 데 제나
- [ 주조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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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칸 루 샤나 카스티나 아르킨트 데 라스 에르니아 샤나 데 라스 루스 데 베리타 케이르안 라 모니크 제레미아 라 모니크 빅토르 데 제나 세쿤두스 리나 생명의 신 비타 엔테아 수 샤리아 하렌 수 디마르크 루나 레티샤 수 리안 일리아 세 제노아
- [ 조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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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칸 루 샤나 카스티나 Mircan Lu Shana Castina | |
현재 | 젊은 시절 |
프로필 | |
<colbgcolor=#144384><colcolor=#ffffff> 이름 | 미르칸 루 샤나 카스티나 |
가족 관계 | 여동생 에르니아 샤나 데 라스 아내 아리엘 루 샤나 카스티나 아들 루블리스 카말루딘 샤나 카스티나 며느리 지은 아이린느 샤나 카스티나 매부 아르킨트 데 라스 조카 카이시안 데 라스, 카르세인 데 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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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 카스티나 제국의 제 1황자 → 카스티나 제국의 황태자 → 카스티나 제국 33대 황제 |
재위 기간 | 제국력 934년~제국력 964년 1월 24일[1] |
사망일 | 제국력 964년 1월 24일[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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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버림 받은 황비의 등장인물.루블리스의 부친인 카스티나 제국의 황제이다. 작중 내내 성군으로 묘사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뿐인 후계자라는 이유로 루블리스를 가혹하게 교육시키고 냉대한 탓에[4], 그에게 뒤틀린 성격과 제나 공작가라는 폭탄을 물려주는 잘못된 뒷처리를 했고 이로 인해 회귀 전 모든 비극의 씨앗을 잉태시킨 암군이다. 비타가 지은을 소환하면서 비극을 일으켰다면 미르칸은 비극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비타, 루블리스와 더불어 회귀 전 아리스티아의 비극에 크게 기여한 만악의 근원.
2. 행적
2.1. 과거
외전을 보면 1황자로 태어났으나 모친이 한미한 귀족 출신이었고, 당시 카스티나 황실은 귀족들의 눈치를 볼 정도로 왕권이 약화된 상태였다. 당연히 제국은 막장 상태로, 내부로는 귀족들의 부패와 착취로 백성들은 들고 일어나기 직전이었으며, 외부로는 리사 왕국을 포함한 외세가 국경을 침범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미르칸은 라스, 베리타, 모니크 등 세 명의 인재를 비밀리 영입하여 황위에 오른 뒤에 부패한 귀족들을 숙청하고 황권을 강화하여 카스티나 제국을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아리스티아의 어머니 제레미아를 사랑했으나[5], 그녀가 모니크 후작 부인이 된 이후 홧김에 제레미아를 닮은 하녀와 동침해 루블리스를 낳는다. 작중 내에서는 멸망 직전까지 가던 제국을 부흥시킨 성군 소리를 듣는 모양으로, 치세는 꽤나 평탄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라스 공작가, 베리타 공작가, 모니크 후작가를 중심으로 한 황제파로 하여금 어마무시한 귀족파들을 숙청했다. 이들 중에 그나마 세를 유지한 건 제나 공작 정도. 당시 라스 공작가의 황제파 이적과 베리타 후작가[6], 모니크 후작가의 결집으로 당시 귀족파 대부분을 정계에서 쓸어버렸다.
미르칸이 숙청한 카이실, 하이델, 라우렐 공작가로 말할 것 같으면 세 가문 모두 개국공신 가문이었으며 서열에서도 1, 2, 4위를 가지던 최강의 귀족가였다. 현 라스 공작인 아르킨트의 언급에 의하면 그 당시에 라스 공작가도 서열 3위의 귀족파였으나, 미르칸 황제의 부탁을 받은 아르킨트가 황제파로 계파를 옮기고 귀족파 숙청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아르킨트 본인은 가문에서 축출당할 뻔 했다고. 이때 제나 공작가도 숙청하려고 했지만 제레미아와의 인척관계를 알고[7], 제나 공작의 역심을 알고도 그대로 방치하는 초대형 병크를 일으킨다. 미르칸 본인은 제나 공작에게 기회를 주면 그가 개과천선할 줄 알았으나, 아쉽게도 제나공작은 비밀리에 세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렸고 모니크 후작 부인이 된 제레미아를 독살한다.[8] 작중내내 루블리스를 보고 냉철하지 못하다고 야단치는 데 막상 본인은 제레미아 생각에 제나 공작의 역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방치했다.
2.2. 회귀 전
아리스티아의 어머니 제레미아를 사랑했던 만큼, 제레미아의 딸이자 그녀를 많이 닮은 아리스티아를 늘 며늘아가라고 부르며 매우 예뻐했다. 아리스티아도 회귀 전의 황궁 생활이 힘들 때마다 미르칸을 많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했다. 아리스티아에게 있어서는 두려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황제였지만 자신을 보듬어주는 또 다른 할아버지와도 같던 인물. 결국 회귀 전의 루블리스가 자신이 아끼던 아리스티아와 모니크 후작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제나 공작의 손에 나라가 넘어간 걸 보면 어지간히도 아들 복이 없었던 인물.하지만 루블리스가 뒤틀린 성격을 가지게 된 근본적인 원흉이자 제나 공작을 내버려 둔 장본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미르칸도 마냥 억울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9] 실제로 미르칸의 냉대와 무관심으로 인해 성격이 뒤틀리게 된 루블리스는 명색이 아버지인 미르칸의 장례식에서도 슬퍼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 모습을 본 지은도 루블리스는 냉혹한 인물이라고 확신할 정도. 거기다 회귀 전의 루블리스가 제나 공작을 신임한 이유도 그가 자신에게 해준 따뜻한 몇 마디가 전부였다고 하니, 생판 남남인 제나 공작보다도 아들을 냉혹하게 대한 미르칸의 잘못이 엄청난 나비 효과로 발현된 셈이다.
2.3. 회귀 후
영애의 그 모습은 아주 이상적인 황후감이네.
사치세를 고안한 티아를 향해 마음이 따뜻하다며 해준 말.
회귀 후 아리스티아가 비타에게 황위 계승권을 의미하는 미들네임을 얻자, 아리스티아의 의중과 자질을 시험해본다. 원래는 아리스티아를 태자빈, 즉 황비로 삼으려고 했으나 황제로서는 부족하지만 이상적인 황후감으로 만족해한다. 또한 아리스티아의 능력과 인품이 너무 뛰어나 루블리스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한다. 회귀 전에 루블리스가 열등감에 빠져 저지른 만행을 보면 정확한 예측이다.[10]사치세를 고안한 티아를 향해 마음이 따뜻하다며 해준 말.
이후 아리스티아가 일정 기간 안에 해결책을 제시할 때까지 루블리스와의 약혼을 연기해 달라고 하자, 이를 승낙해주면서도 여전히 아리스티아를 황태자비로 삼고 싶어하며 그를 예비 황태자비로 대우한다. 아리스티아가 자신의 충신이자 친우인 모니크 후작과 사랑했던 제레미아의 딸이라는 이유도 컸지만, 그녀가 대표적인 황제파이자 충신인 모니크 후작가의 딸이기에 동맹을 맺어 더욱 황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귀 후에도 아리스티아가 거부함에도 어떻게든 약혼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바람에, 당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리스티아에게 정신적 고통을 증폭시켰다.
아리스티아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진심이기에 제나 공작을 비롯한 귀족파의 견제를 한몸에 받는 그녀의 입지를 높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건국제 당시 귀족파들에게 보란 듯이 황족과 왕족만이 쓸 수 있는 티아라를 아리스티아에게만 하사한 일이 대표적. 이때 당시 귀족파들이 추천한 태자빈 후보인 이트 왕녀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자, 황제파가 지지하는 황태자의 약혼자인 아리스티아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이 모습을 본 귀족파들이 황태자의 약혼자에 불과한 아리스티아가 황족만 쓸 수 있는 티아라를 썼으니 국법을 어긴 것이라며 트집을 잡자, 역으로 제나 공작이 이트 왕국에 재산을 유출하고 이트 왕국이 제국의 동맹국인 루아 왕국을 공격하는 것을 지원했으니 제나 공작 역시 국법을 어겼다며 몰아세운다. 또한 과거 자신이 숙청했던 카이실, 하이델, 라우렐 가문들을 언급하며 제나 공작을 협박한다. 여기에 더해 같은 자리에 있던 루블리스까지 이트 왕녀를 포함한 태자빈 후보들의 만행을[11] 폭로하며 그들 중 한명을 태자빈으로 삼는 것 자체를 거부하자,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루아 왕녀와 리사 왕녀를 제외한 왕녀들을 쫒아내다시피 고국으로 돌려보내면서 귀족파가 주도한 태자빈 간택을 무위로 만들고 황태자의 약혼녀인 아리스티아의 직위도 계속 유지시킨다.
아리스티아와 친한 알렌디스는 물론, 조카 카르세인도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두 가문에 압력을 넣는다.[12] 그래서 알렌디스와 카르세인이 아리스티아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도 아리스티아와 이어지지 못했다. 이런 점은 독자들이 답답하게 여긴 부분. 그래도 둘 다 희대의 천재들이라 아들 루블리스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바랬다.
3. 평가
수많은 간신들을 숙청하여 황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왕이었으나,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제레미아를 생각해서[13] 제나 공작가는 계속 살려주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제레미아를 생각해서 계속되는 아리스티아의 암살 시도와 매국노 짓을 하는 제나 공작의 야심을 알고도 숙청하지 않고 경고하는 수준에 끝났는데[14] 결론적으로 이것이 제레미아가 제나 공작에게 독살당하고 그 후 티아와 루블리스가 비참하게 죽은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15][16] 결론적으로 냉정하게 보였으나 제레미아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하지 못했고, 본인도 인정할 정도로 후계자 교육을 잘못시켜서 제국이 망하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한 암군이다. 어떻게 보면 회귀로 인한 최고의 수혜자라고 봐도 될 듯.젊은 시절에는 명군이었으나 말기에는 제나 공작의 역심을 알고도 방치하고, 아들인 루블리스를 혹독하게 교육하여 루블리스가 뒤틀린 성격을 갖게 만들고, 이로 인해 카스티나 제국이 망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암군의 모습을 보인 것을 보면 실제 역사에서의 조선 영조를 연상시킨다.[17]
정작 제레미아가 제나 공작을 싫어했다는 것을 몰랐던 걸 보면, 이쪽도 루블리스와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4. 기타
- 작가가 인증한 바람둥이다. 정작 본인은 진심으로 제레미아를 사랑했고 죽을 때까지 그녀를 잊지 못한 게 아이러니하다. 다만 작중 묘사나 회상을 보면 정실 황후인 아리엘도 제레미아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황후로서 존중해준 듯 하다.[18]
[1] 아리스티아가 11세 때 즉위 25주년 기념 오페라가 열렸다.[2] 혹은 25일. 윤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3] 국장일은 5월 3일[4] 그나마 티아와의 대화와 외전에서 마음 속으로는 아들을 사랑했다고 나오지만 본심이 어찌 되었든, 미르칸이 루블리스를 자식이 아닌 후계자로만 대한 냉혹한 막장부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5] 사실 제레미아의 어머니인 제나 공작의 여동생이 한때 미르칸과 혼담이 오갔던 걸 생각하면, 제레미아와는 거의 부녀지간 수준의 많은 나이차이가 났음을 알 수 있다. 약 19살 차이.[6] 이후 베리타 공작가로 승격된다.[7] 제나 공작이 제레미아의 외삼촌이였다.[8] 작중 내용을 보면 제나 공작이 황궁과 모니크 후작가에 자신의 세력을 집어넣었다는 묘사가 나온다.[9] 아리스티아의 회귀 전이나 회귀 후에도 자신이 죽으면 정치적으로 미숙한 루블리스에게 제나 공작이 반역을 일으킬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저 "제나 공작가를 계속 살려두면 제레미아가 기뻐할꺼야!"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대비책 하나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10] 그러나 회귀 후의 아리스티아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칭찬 한 번 없는 교육 방식이 루블리스가 폭군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회귀 전의 제국에서 일어난 비극은 루블리스의 성격적 결함인 탓도 크지만, 미르칸이 자식 겸 후계자 교육을 제대로 못한 건 엄연한 사실.[11] 루아 왕녀, 리사 왕녀는 제외. 다만 리사 왕녀도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태자빈 후보가 된 것이기에, 카스티나 제국은 이를 빌미로 리사 왕국과 맞닿은 국경지역 영토를 일부 할량 받는다. 루아 왕녀는 처음부터 조국을 대표해 카스티나 제국과의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 온 것이기에 태자빈 자리에는 관심도 없었다.[12] 죽기 직전 아리스티아와 감정이 있던 두 사람을 경계하고 강제로 헤어지게 만든 것에 죄책감을 가진다.[13] 제레미아의 어머니가 제나 공작의 여동생이었다.[14] 작중 내내 결정적인 증거가 나와도 제나 공작의 범죄 행위를 묵살했다[15] 미르칸이 진정으로 루블리스와 제국을 생각했다면, 정치적 수완이 떨어지는 루블리스가 상대하기 힘든 제나 공작가를 숙청해야 했다. 조선 태종이 성군으로 평가 받는 이유도 자신의 처가와 아들 세종의 처가, 그 외 이숙번 등 외척과 권신들을 박살내어 세종이 성군이 되는 기틀을 다져놓은 공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르칸은 제나 공작가를 살려두면 제레미아가 기뻐할 거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가장 위험한 정적을 살려두었고, 심지어 그렇게 살려준 제나 공작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제레미아를 독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견제만 할 뿐 처형하지 않았다.[16] 소설에서는 제나 공작가를 필두로한 귀족파가 없으면 통치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계속 살려뒀다고 설명하는데, 소설에서 나오는 귀족파들의 부패, 무능, 매국 행위를 보면 차라리 이들을 숙청하는 것이 제국 통치에 더 이로웠다.[17] 다만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막무가내로 학대한 끝에 정신병에 걸리게까지 만들었지만, 정신이 망가진 사도세자를 냉정하게 처형하고 정조라는 후계자를 잘 키워내서 무사히 왕위를 계승시켰다. 적어도 사랑 타령에 빠져 공사도 제대로 구분 못하고, 제나 공작의 역심을 알고도 살려둔 미르칸보다는 영조가 훨씬 낫다. 영조가 아버지로서 부족했던 인물인 건 사실이었으나 왕으로서는 성군이었는데, 미르칸은 아버지로서나 한 나라의 황제로서나 둘 다 부족했던 인물이었다.[18] 아리엘도 연적이나 다름없는 제레미아와 친하게 지냈고, 그녀의 딸 아리스티아도 귀여워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아리엘도 루블리스만큼은 냉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