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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05 11:07:38

미디어의 이해



1. 개요2. 개념
2.1. 인간의 연장2.2.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

1. 개요

캐나다의 영문학자이자 미디어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이 1964년에 출간한 저서다. 맥루한의 미디어 사상을 담고 있다.

2. 개념

2.1. 인간의 연장

맥루한은 미디어는 인간의 연장(extension of man)이라고 한다. 인간의 오감, 오관, 오체의 연장이 다름 아닌 미디어라는 것이다. 가령 안경, 카메라 렌즈와 같은 미디어는 우리의 시각이라는 감각의 확장이며 눈이라는 기관의 연장이다. 바퀴와 같은 미디어는 우리의 발이라는 기관의 연장이다. 우리의 외피인 집이라는 미디어는 우리의 촉각이라는 감각의 확장이며 피부라는 기관의 연장이다. 바퀴가 달린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는?

그런데 이러한 맥루한의 미디어 개념에 따르면 우리 주변의 만물을 미디어 개념으로 포섭하여 다룰 수 있게 한다. 그러면 대체 미디어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미디어이고 미디어 아닌 것이 없으면 미디어 개념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의 만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개념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만물이 정보를 주고 받는 미디어가 되어가고 있다.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은 커뮤니케이션학이나 미디어학, 언론정보학 등에서 반드시 한 번은 소개되고 있다. 맥루한은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은 사실 사회과학의 한 분과학문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학에서 다루는 미디어 개념을 훨씬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맥루한은 커뮤니케이션학의 사조인 윌버 슈람 등을 비판하기도 했다. 윌버 슈람을 비롯한 소 효과 이론가들은 텔레비전 시청자 대상의 설문조사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당시의 뉴미디어인 텔레비젼이 갖는 설득효과가 과장되었다고 저평가했다. 그러나 맥루한은 사회과학자-커뮤니케이션학자들이 미디어 자체의 '효과'를 간과하는 맹목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텔레비젼 뉴스를 보고 사람들이 당장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에서 텔레비젼 뉴스 메시지의 설득 효과는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텔레비젼 자체의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연장으로서 텔레비젼이라는 미디어는 단지 메시지의 전달이 아니어도 수많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낳는다. 그런데 단지 설문조사 결과라는 단편만을 가지고 뉴미디어의 효과가 작다고 말한다면 이는 사회과학자 특유의 맹목이라는 것이다.

맥루한은 인간의 연장인 미디어가 범람하면서 도리어 미디어가 '우상'이 되고, 인간이 미디어에 '종속'되어 '마비'되는 현상을 우려하기도 했다. 현대인의 처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난파선 조각을 붙잡고 있는 뱃사람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뱃사람은 바로 그 소용돌이의 흐름을 역이용하여 빠져나갈 물길을 찾아낸다. 현대인은 바로 이러한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바로 이를 위해 (뉴)미디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각을 훈련해야 하며 그것이 맥루한이 추구하는 미디어의 이해라 할 수 있다.

2.2.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

맥루한은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의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핫'과 '쿨'은 '뜨겁다'와 '차갑다'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느냐', '얼마나 집중해서 들어야 되느냐'는 의미인데, '뜨거운 미디어'는 정보량은 많으나 특정 단일 감각기관을 고도로 확장시켜 커뮤니케이션을 왜곡시키는 반면, '차가운 미디어'는 정보량은 적지만 여러 감각기관을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우선 '정세도(精細度, definition[1])'가 높은 쪽을 '핫 미디어'라고 하는데, 정세도란 해당 미디어가 담고 있는 '정보'의 밀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진은 시각적인 면에서 고밀도이므로 '핫 미디어'다. 반면 만화는 제공되는 시각 정보가 적어 저밀도이므로 '쿨 미디어'다.

그리고 같은 정보량이라도 시각이나 청각 가운데 하나의 감각만 집중적으로 개입하면 '정세도'가 높아지며, 반대로 여러 감각들에 분산되어 개입하면 '정세도'는 낮아진다. 예를 들어 똑같은 정치 연설이라도 '라디오'를 통한다면 청각에만 신경쓰면 되기 때문에 메시지는 더욱 거칠어지는 반면, '텔레비전'을 통한다면 시각에도 신경써야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순해진다는 식이다.

한편 '참여도(參與度, participation)'가 높은 쪽을 '쿨 미디어'라고 하는데, 여기서 '참여도'란 직접 참여하는 것[2]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정세도로 인하여 수용자가 채워야 하는 빈틈' 또한 의미한다. 다시 말해 '상상의 나래'를 펼 여지가 얼마나 되느냐를 의미한다. 때문에 '정세도'와 '참여도'는 반비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정세도'가 높은 핫 미디어는 이용자가 몰입하는 대신 객관적으로 거리 두게 만든다. 반면 '참여도'가 높은 쿨 미디어는 그 여백을 이용자가 채워 넣게 함으로써 이용자를 몰입하게 하고 참여하게 만든다. 때문에 쿨 미디어는 그 특성상 2차 창작에 의존하는 요소가 많거나, 극성팬이 꼬이기 쉬운 경향이 있다.

또한 '핫 미디어'는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주입'하려고 하며, '쿨 미디어'는 양방향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같은 애니메이션이라도 교육적인 메시지를 담은 유아/아동용 애니메이션은 '핫 미디어'이며, 그렇지 않은 청소년층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은 '쿨 미디어'인 식이다.

주의할 점은 '쿨 미디어'와 '핫 미디어'는 어디까지나 정세도와 참여도에 따른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소설'은 '만화'에 비해 '뜨거운 미디어'이지만, 같은 소설이라도 피드백 없이 나오는 단행본 소설은 '핫 미디어'이고, 중간 중간 피드백을 받아 내용이 변경될 수 있는 연재 소설은 '쿨 미디어'인 식이다.

그리고 같은 미디어라도 매체환경이 바뀌면 메시지 구성방식도 변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과 같이 쿨미디어에는 그에 맞는 메시지 구성방식이 있다. 그런데 많은 장면에서 불필요한 자막을 지나치게 ‘보여’ 주어 ‘들을’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쿨'하지 못한 것이다. 마샬 맥루한은 이처럼 쿨 미디어에 핫 미디어의 메시지 구성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빗대어 “뒷거울 보면서 운전하기”에 비유했다.


[1] '정밀도'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때 맥루한이 말하는 정세도는 HD(High Definition)할 때 말하는 Definition과는 꼭 같은 개념은 아니다.[2] 예: 스포츠의 응원, 아이돌 공연의 떼창과 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