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69년 |
| 전라도 함평현 영풍면 항동 (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함평읍 읍내) | |
| 사망 | 미상 |
| 사망지 미상 | |
| 상훈 |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의병.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869년 전라도 함평현 영풍면 항동(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함평읍 읍내)에서 태어났다. 이후 전라남도 함평군 식지면 용두리[1]로 주소지를 옮겼다.[2]1907년 11월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에서 의병을 일으킨 심남일 의병장의 부대에 입대해 1909년 8월 25일부터 10월 21일까지 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전해산 의병대에 입대하여 중군장(中軍將)으로 부하 300명을 이끌고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이후 전해산이 의병대를 해산하자, 같은 해 8월부터 전라남도 함평군 대야면 복룡리[3] 출신의 이인국(李仁局)의 휘하에서 스스로 '제2의 전해산'이라고 칭하며 함평군, 영광군 부근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4]
그러나 1909년 11월 2일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의병장 심남일 및 그 휘하 부장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1910년 3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5] 복역하였다. 이후 대한제국 칙령 제325호에 의거해 형집행을 면제받아 출옥하였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201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