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93년 2월 1일 |
평안도 영변대도호부 읍내방 서부리 (현 평안북도 녕변군 영변읍) | |
사망 | 몰년 미상 (향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본관 | 서촉 명씨[2] |
상훈 |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893년 2월 1일 평안도 영변대도호부 읍내방 서부리(현 평안북도 녕변군 영변읍)에서 아버지 명두경(明斗璟, 1865.4.19. ~ ?)[3]과 어머니 진주 류씨(1866.9.1. ~ ?)[4] 사이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1922년 2월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5명의 동지와 함께 의용군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제국 경찰 2명을 사살했다. 이후 중화민국 동삼성으로 망명하여 1922년 8월 대한통의부에 입대하였다. 이후 대한통의부 산하 의용군에 배속되었고, 1923년 6월 평안북도 삭주군 수풍면 용흥동[5]에 군자금 모금차 이동하였으나 일본 제국 경찰에 발각되자 동지 홍학순, 한성찬(韓成贊), 김상순(金相淳), 김병규(金炳奎) 등과 함께 이들과 2시간 동안 교전하였다.
이후 다시 중화민국으로 피신하여 펑톈성 카이위안현(開原縣) 난산청쯔(南山城子)[6]에 거주하였다.[7] 1924년 8월 평안북도 영변군에 다시 잠입하여 영변경찰서 수사대와 교전했다.
이후의 경력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