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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03:55:57

마르크도르프 철도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마르크도르프 열차 충돌.jpg

1. 개요2. 사고 내용3. 사고 이후

1. 개요

Eisenbahnunfall bei Markdorf

1939년 12월 22일 나치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마르크도르프에서 일어난 열차 충돌 사고.

2. 사고 내용

당시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라 역에는 직원들이 부족했다. 한 역에서 직원 한명이 자전거를 타고 역과 신호기를 왔다갔다 하며 관리하기도 했다. 마르크도르프 역도 이렇게 1명이 여러 근무를 하는 중이었다. 사고 전날 오후 8시, 마르크도르프역으로 22일에 특별 여객열차가 통과할 거란 전보가 왔다. 원래 스케쥴엔 없던 열차라 스케쥴에 새로 기입해야 했으나 어째서인지 역장은 하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스케쥴 노트에 따로 적어두지 않고 평상시 대로 행동했다. 밤이 되었으나 당시 폭격을 피하기 위해 등화관제가 실시중이라 역에는 불을 키지 않았다.

오후 10시 5분 경,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마크도르프 역 인근에서 머물고 있다가 역장에게 통과 해도 된다는 신호 받고 통과했다. 원래는 역에서 머물면서 특별 여객열차가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반대편에선 뮐하임(Müllheim)행 북행 여객열차가 승객 700여명을 태우고 운행중이었다. 여객열차에선 마크도르프역에 신호를 보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10시 15분이 되어서야 마르크도르프역에서 신호를 받았다. 그제서야 여객 열차가 온다는걸 깨달은 역장은 반대편에서 오던 화물 열차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안개가 낀데다 어둡고, 등화관제로 불을 다 끈지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등화관제는 열차에도 적용되어, 양쪽 열차 모두 헤드라이트도 꺼놓고'' 램프만 살짝 킨 상태였다. 뒤늦게나마 서로 발견해 두 열차는 긴급 제동을 했으나 10시 19분 경, 양쪽 열차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충돌 시 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에선 폭격음 또는 비행기 추락소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충돌로 타오름 현상이 일어나 피해가 더 커졌다. 구조 도중에도 등화관제가 적용되어 한밤중에 부상자와 시신들이 어딨는지도 파악 못했다. 너무 어두워 구조자들이 모르고 부상자를 건드리는 일도 많았다. 상황이 급해 자동차들을 끌고 와 헤드라이트로 주변을 비추며 사람들을 구조했다. 주변 마을에선 사고 소식을 듣고 이불과 짚단 등을 가져와 추운 날씨에 부상자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고 방공부대에서 토치를 가져와 구조가 조금 수월하게 진행됐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부상자를 전부 구조하고 사망자 시신도 전부 수습했다.

사고로 101명이 사망하고 47명이 부상입었다. 같은 날 나치 독일은 겐틴 철도 참사도 겪었는데, 이 때문에 독일의 역사학자들은 1939년 12월 22일을 독일 철도 역사상 최악의 날이라 말하기도 한다.

3. 사고 이후

나치 독일 정부에선 이 사고에 관한 사항을 최대한 숨기려 함 언론에선 사고가 보도 안되었다. 찍힌 사진들도 전부 사고 수습이 어느정도 된 뒤에 찍힌 사진이다.

크리스마스날, 마크도르프 마을 광장에서 공개 장례식이 열렸다. 나치 측에선 이 장례식을 프로파간다로 이용해 의방대와 군인들을 보냈다. 장례식엔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가득 세워졌다.

열차 스케쥴 제대로 관리 안한 역장들에겐 징역형이 내려졌다. 화물 열차 측에도 사고 원인이 있단 얘기가 나왔으나 화물 열차 승무원이 전원 사망해 처벌은 없었다.

사고 현장 인근엔 사망자들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