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외교관.2. 생애
1926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걸로 알려져 있는데, 나중에 방송에 나온 리인규의 말투를 들어보면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처럼 들린다. 월북자나 그 연고자 출신일 가능성도 존재.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이후 1956년 5월, 외무성 참사로 배치, 1965년 5월, 외무성 1국 국장으로 승진했다. 1971년 5월 19일, 콩고 대사로 부임하였으며 1976년 4월 13일, 앙골라와 수교 협정에 조인, 11월 13일, 앙골라 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1977년 11월에 오만석이 후임 앙골라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9년 10월 28일, 작별방문을 한 이후 무러 8년 넘게 있었던 콩고 대사에서 물러나서 귀국했다. 후임 콩고 대사로는 김봉곤이 임명되었다.
귀국 후 1981년 2월,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다가 1984년 3월 7일, 주창준의 뒤를 이어 유고슬라비아 대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1986년 9월 27일, 지재룡이 후임 유고 대사로 임명되면서 귀국, 정무원 외교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1988년 11월, 외교부 대표단장으로 폴란드를 다녀왔으며 80년대 후반 동유럽과 남한의 수교를 막기 위해서 똥꼬쇼를 했지만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4년 5월에는 외교부 대표단장으로 러시아를 다녀왔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외무성 부상에 유임되었다. 1999년 3월, 북러 우호친선협력조약에 가조인했고, 1999년 11월, 교황청 대표단 방북 시에 면담했다. 2000년 8월, 쿠르스크 함 침몰사건 때 조의 방문하기도 하였고 2000년 11월에 다시 외무성 대표단으로 러시아를 다녀왔다. 하지만 2001년 1월 15일, 2001년 신년 기념 러시아 대사관 모임 참석 이후 갑자기 동정이 끊어졌다.
하지만 숙청을 당하거나 한 것은 아닌지 김정은 시대에 박성철 소개편집물에 등장하여 박성철과의 외교일화에 대한 썰을 풀었다. 고령으로 은퇴해서 잘 지내는 것으로 추정.
3. 참고문헌
- 2003 북한의 주요인물(서울: 북한, 2003).